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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마보 판결’ 30주년… ‘마보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주민들의 전통적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마보의 과감한 도전 앞에 연방 대법원이 ‘원주민에 의해 이룩된 3만년의 전통’ 자체를 부인했던 ‘테라 눌리우스’ 원칙을 뒤집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What is Native Title explainer NITV Eddie Koiki Mabo
Eddie Koiki Mabo and his legal team Source: National Museum of Australia

6월 3일 금요일은 역사적인 ‘마보 판결’ 3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원주민 ‘토착 소유권(Native Title)’이라는 세계사적인 법안이 호주에서 탄생되는 근거가  마련된 날이다.

일평생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 인정을 위해 정부와 호주 백인 역사를 상대로 싸웠던 원주민 지도자 에디 마보(1936-1992)는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역사적인 ‘마보 판결’이 내려지기 5개월 전인 1992년 1월 세상을 떠났다.

230년 전 호주 대륙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원칙을 선포했다. 이들은 “소유주가 없는 무주공산의 대륙을 발견했다”라는 원칙을 정하고 여기에 맞는 법적 당위성을 만들었다.

즉 “호주 대륙이 유럽의 백인들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점유된 적이 없다”라는 유명한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원칙이 선포되고 영국 최고의 법조인들에 의해 ‘법의 원칙’으로까지 적용된 것이다. 테라 눌리우스 원칙은 전 세계 영국 식민지에 걸친 식민 통치의 기본 원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법의 원칙은 토레스 해협 원주민 부락 출신의 에디 마보라는 원주민에 의해 무너졌다.

에디 마보는 누구인가?

호주 퀸즐랜드 주에 소재한 제임스 쿡 대학(James Cook University)의 정원사로 일했던 호주 원주민 에디 마보는 “4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과 실체적 존재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한 주인공”으로 평가된다.

정원사로 일하면서 그는 수시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뒤졌다. 동시에 그는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명제의 중요성을 실천하기 위해 법학 및 인류학 강의를 청강하기까지 했다. 다름 아닌 원주민들의 토지 소유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복잡하고 난해한 영국과 호주의 관습법 판례집을 송두리째 뒤지고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토레스 해협 메리암 부족 지도자 출신인 에디 마보는 1982년부터 토레스 군도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한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마보는 1982년 퀸즐랜드주 타운즈빌 컬리지 초청 강연에서 “만약 제가 죽는다면, 지금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마보는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군도민 연구소에 따르면 마보의 모국어는 메리엄(Meriam) 이었고 그는 메리엄 문화에 빠져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보와 함께 법정에 섰던 그레그 맥킨타이어 변호사는 SBS 뉴스에 “그는 원주민 법률 사무소를 설립했고 타운즈빌에 흑인 학교도 설립했다”라며 “타운즈빌에서 노동자와 함께 일했고,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군도민들이 술집에 출입할 수 없을 때도 술집에 들어가 난 술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마보의 딸인 게일 씨는 자신의 아버지를 “키는 작지만 목소리는 컸고 약자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었다고 묘사했다.

게일 씨는 “아버지의 모든 행동에서 경외감을 느꼈다”라며 “그가 한 모든 행동으로 인해 그는 멋진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했다.

1992년 연방 대법원 판결

원주민들의 전통적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마보의 과감한 도전에 연방 대법원은 마침내  ‘원주민에 의해 이룩된 3만년의 전통’ 자체를 부인했던 ‘테라 눌리우스’ 원칙을 뒤집는 역사적인 판례를 남겼다. 이로써 사실상 영국 식민지 역사 최초로 원주민의 존재 여부를 인정한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원주민들이 호주 인구조사에 정식으로 포함된 것은 1967년에 실시된 국민투표 이후이며, 그때부터 원주민들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한편 폴 키팅 당시 연방총리는 “200년 동안 원주민에 대해 자행된 약탈과 남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한 판례”라고 평가하며, 마보 판례에 근거한 원주민 토착 소유권 법안(Native Title Act)의 도입(1993년)을 주도했다.

당시 키팅 정부에서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군도민 담당 장관이었던 로버트 티크너 장관은 “그날 법정에 서서 이 같은 거대한 결정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호주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진정으로 획기적인 결정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앤소니 알바니지 노동당 정부에서 새롭게 임명된 린다 버그 원주민 장관 역시 “마보 판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Read the original English article at SB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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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SBS News

Presented by Justin Sungil Park

Source: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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