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피터 말리나우스카스 남호주 총리, 오도노휴 박사 위해 주 정부 장례식 개최
- 호주 역사상 원주민 인식에 가장 큰 변화 가져온 오도노휴 박사, 91세 나이로 자택서 별세
- 원주민 소유권법 통해 원주민 토지 소유권 인정토록 키팅 정부에 로비
- 러드 총리,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들에 사과하도록 조언
피터 말리나우스카스 남호주 총리는 지난 4일 91세의 나이로 사망한 원주민 선구자 로위자 오도노휴(Lowitja O'Donoghue) 박사를 위해 주 정부 장례식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호주 역사상 원주민 인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원주민 권리의 선구자 오도노휴 박사는 애들레이드 자택에서 별세했다.
이 윤쿤자라(Yankunytjatjara) 족 원주민 여성은 1967년 국민투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키팅(Keating) 정부가 원주민 소유권법을 통해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도록 로비 활동을 벌이고 약탈당한 세대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조카인 뎁 에드워즈(Deb Edwards)는 그녀가 일요일 애들레이드의 카우마 컨트리(Kauma Country)에서 직계 가족들이 곁에 있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에드워즈는 "이모는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들의 권리, 건강, 복지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며 "그녀가 만든 모든 길, 그녀가 열어준 모든 문, 그녀가 정면으로 부딪힌 모든 문제, 그녀가 앉았던 모든 테이블, 그녀가 싸워서 이긴 모든 논쟁 등 그녀가 해낸 모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오도노휴 박사는 1954년 로열 애들레이드 병원에서 간호사 훈련을 받은 최초의 원주민이 된 후 두각을 나타냈다.
원주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거부당했던 그녀는 성공적인 로비 활동을 통해 평등을 위해 싸우는 삶을 시작하게 됐다.
앤소니 알바니지 총리는 오도노휴 박사를 호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칭송했다.
알바니지 총리는 "오도노휴 박사는 더 단합되고 화해된 호주의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며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호주 원주민과 비원주민 간의 의미 있고 지속적인 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은 오도노휴 박사의 믿음으로 구체화됐다"고 설명했다.
린다 버니 호주 원주민부 장관도 오도노휴 박사와의 경험을 회고했다.
버니 장관은 "리더십과 끈기는 저를 포함한 여러 세대의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들에게 영감을 줬다"며 "저는 1997년 전국원주민화해위원회에 임명됐을 때 로위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큰 영광과 특권을 누렸다"고 이야기했다.
또 "그녀는 정말 특별한 지도자였다"며 "그녀를 아는 우리들만의 거인이 아니라 우리 조국의 거인이었다"고 치켜세웠다.
오도노휴 박사는 두 살 때 어머니와 헤어져 보육원에 맡겨졌을 때 약탈당한 세대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보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녀는 차별적인 상황에 도전하며 간호사 경력을 쌓았다.
60년대에는 남호주 원주민 권리 단체에 합류한 후 같은 주 원주민 부서의 간호사이자 복지 담당관으로 일했다.
그녀는 1967년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을 인구에 포함시키고 이들을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국민투표 캠페인을 벌였다.
오도노휴 박사는 계속 이러한 활동을 펼쳤고 1977년 호주 훈장(Order of Australia)을 받았다.
그녀는 전국 원주민 회의의 창립 의장이었으며, 1984년에는 올해의 호주인으로 선정됐다.
오도노휴 박사는 1990년 원주민 및 토레스 해협 섬 주민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 됐다.
그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원주민 소유권법을 통해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도록 키팅 정부에 로비를 벌인 것이다.
또 다른 업적은 2008년 당시 케빈 러드 총리가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들, 특히 약탈 당한 세대에 대한 사과를 하도록 조언한 것이다.
로위타 오도노휴 재단은 그녀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2022년에 비영리 단체로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