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ction Spectrum] 연방총리 직을 향한 모리슨-쇼튼의 ‘진검 승부’

Prime Minister Scott Morrison (left) and Opposition Leader Bill Shorten (right)

Prime Minister Scott Morrison at a press conference at St Mary's in Sydney. Australian Opposition Leader Bill Shorten speaks to the media in Gosford. Source: AAP Image/ Mick Tsikas/ Lukas Coch

2019 연방총선을 이끌고 있는 자유당연립의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는 ‘어부지리 총리’라는 일각의 시각이 여전하고, 노동당의 빌 쇼튼 노동당 당수는 ‘얼굴없는 실세’라는 오명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 스펙트럼 두번째 시간, 오늘은 이번 연방총선의 두 선장이라할 수 있는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와 빌 쇼튼 노동당 당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주양중 책임 프로듀서와 함께 합니다.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와 빌 쇼튼 노동당 당수에 대한 지지율부터 좀 살펴볼까요?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자유당 연립을 앞서고 있지만 총리 선호도에서만은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가 빌 쇼튼 노동당 당수를 앞서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뉴스폴 조사 결과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는 빌 쇼튼 노동당 당수를 11% 포인트차로 앞질렀습니다.

4월 8일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당시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의 지지율은 한 달만에 3% 포인트나 상승해 46%를 기록했으나 노동당의 빌 쇼튼 당수의 지지율은 1% 포인트 떨어진 35%에 머물렀고, 그 구도가 변동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 어부지리 총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올해 51살인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는 지난해 8월의 자유당 연립 당권 파동의 소용돌이 속에 호주의 제30대 연방총리가 됐습니다. 말콤 턴불 당시 총리와 피터 더튼 내무장관의 격돌 속에 사실상 어부지리로 당권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어부총리라는 별명 외에도 최근 10년 동안 여섯번째 연방 총리라는 달갑지 않은 수사가 늘 따라붙게 됐죠.  정적 빌 쇼튼이 ‘얼굴없는 실세’라는 부정적 시각이 여전하듯, 스콧 모리슨은 ‘어부지리 총리’라는 꼬리표가 달라붙게 된 이유입니다.

시드니 토박이로 알려져 있죠?

 ‘스코모’라는 애칭을 소유한 모리슨 총리는 시드니 동부 브론트 해변가 출생이며 아버지는 경찰간부 출신에 지역 카운슬 시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고 합니다. 어려서 잠시나마 아역배우로 활동하면서 TV 광고에도 다수 출연한 바 있는 모리슨 총리는 대학에서 경제지리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호주부동산연구원에서 정책연구원으로서 사회 첫 발을 내디뎠고, 이후 호주관광청의 고위 임원직을 거친 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복음주의 펜타코스탈 교회에 출석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널리 알려진 스콧 모리슨은 종교 자유의 중요성을 매우 중시여기며, 지난 2017년 동성결혼 국민설문조사 시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는 2007년 연방총선에서 시드니 남단 쿡 지역구에서 당선돼 연방의회에 진출했는데요… 이후 승승장구했죠?

네. 2010년 재선과 함께 당시 야당의 예비장관으로 발탁돼 당내 핵심 인사로 그부상했고 지난 2013 연방총선 승리 후 토니 애벗 당시 총리에 의해 이민장관으로 발탁됐습니다.

스콧 모리스의 강경 난민 정책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렇습니다. 이민장관 시절 그는 강경밀입국난민봉쇄정책을 이어갔고, 그의 집무실에는 “(밀항선을) 내가 멈춰 세웠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트로피가 놓여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보진영으로부턴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됐지만 그의 난민정책이 보수층을 결집시킨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사실상 그의 난민정책이 2016 연방총선 재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모리슨 총리 자신도 이점에 강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는 비겁하거나 소심한 자세를 용납하지 않으며 결단의 짐을 떠안아야 한다.  때로는 무릎을 꿇어야 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해야하고 때로는 거친 파도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2016 총선 직전 이민장관에서 재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겼죠?

네. 이민장관에 이어 2015년에는 조 호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연방재무장관으로 한계단 뛰어올랐죠.  총리, 부총리에 이은 3인자 자리에 오른 것이죠. 

아무튼 이민장관 시절 ‘국경보호’라는 문구 하나로 호주의 이민정책 이미지를 뜯어고친 모리슨은 재무장관 시절에는 ‘일자리와 경제성장’이라는 표어로 정국을 주도해나가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일자리와 경제성장의 표어 아래 정부의 재정적자 폭은 점차 좁혀졌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8월 그는 총리직에 등극했습니다. 

총리 등극 후 그의 첫 일성은 “당 내분에 마침표를 찍고 당에 대한 신뢰 회복을 이루겠다”였습니다.

총리 취임 후 모든 각료에게 호주국기 뱃지를 패용토록해 화제가 됐는데요

네. 당의 화합과 국론통합을 위한 조치라고 합니다.  그는 “정말 오랜 세월동안 호주 국기 뱃지를 패용해왔는데, 이 뱃지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늘 상기시켜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방총리 직무는 순탄치 않았죠..  특히 전임자 ‘말콤 턴불의 저주’가 녹록치 않았기 때문인데요.. 스콧 모리슨이 5월 18일 이후에도 연방총리로 잔류하게 될 것인지는 국민들만이 알고 있는 정답입니다.

이어서 얼굴없는 실세라는 별명을 가졌던 노동당의 빌 쇼튼 당수에 대해 알아보죠. 나이는 모리슨 총리보다 1살 많죠?

네. 1967년 생입니다.  만 52살인데요… 현재 킴 비즐리 이후 노동당 최장수 당수의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다음 단계는 연방총립니까?

역시 국민들만이 알 수 있는 정답이죠. 하지만 가능성은 그 어느때보다 높다는 것은 각종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부유층 때리기와 서민층 떠안기 정책으로 민심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부유층 혜택 축소 정책을 발표했다는 것은 저희 뉴스와 시사 정보를 통해 여러차례 소개해드렸는데요…  노조 지도자 출신이죠..

주양중:  네.  첫 직업은 변호삽니다.  굴지의 로펌 모리스 블랙번의 변호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빌 쇼튼은 1994년부터 호주근로자노조(AWU)의 조직가로서 노조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단 7년만인 2001년 노조 지도자 최고의 지위인 AWU 전국사무총장 직에 등극하면서 정치권에 직간접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빌 쇼튼이 전국구 인사로의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호주2006년 발생한 타스마니아주 비콘스필드 광산 붕괴사건입니다. 광산 붕괴 직후 14명은 즉각 구조되고 1명이 숨졌지만 2명의 광부가 지하 1km의 갱도에 갇히면서 2주간에 걸친 구출작전이 시작된 바 있죠.

당시 빌 쇼튼은 갇힌 광부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국민들을 감동시켰고, 보수성향이 뚜렷한 데일리 텔레그라프지가 1면 헤드라인으로 “빌 쇼튼을 연방총리로”(Bill for PM)라는 문구를 내걸었을 정도였습니다.

전국구 노조 지도자가 되고 나서 곧바로 노동당의 러브콜을 받은 거군요

주양중: 그렇습니다. 전국구 인사가 된 빌 쇼튼은 2007년 연방총선에서 멜버른 서부 ‘마리버농’(Maribyrnong) 지역구에서 노동당 공천으로 출마해 손쉽게 의회에 진출했습니다.

강성 노조 지도자에서 한때 노동당의 숨은 실세 킹메이커를 거쳐 야당 당수에 등극했고 지금은 연방총리 직에 성큼 다가섰군요.  얼굴없는 실세라는 별명의 유래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동계나 진보진영은 빌 쇼튼이 연방의회에 입성한 직후 초선이지만 당중진(frontbencher)으로서 중책을 맡게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권탈환을 이끈 케빈 러드는 그의 등용을 배제했습니다.  그 때 이미 거리를 뒀던 것이죠.  하지만 비록 한직에 머물렀지만 그의 정치적 역량은 ‘밀실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당내 좌파 계파 보스로서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습니다.

숨은 실세로서 그의 영향력은 2010년 연방총선 직전 발생한 케빈 러드 축출 사태에서 진가를 발휘했고, 당권파동 사태를 계기로 그의 별명은 ‘얼굴없는 실세’가 된 것이죠.

그런데 케빈 러드 몰락을 주도했던 빌 쇼튼 당수가 다시 줄리아 길라드를 축출하고 케빈 러드를 재옹립하는 주역이 됐었는데, 당시 상황이 생생합니다..

한 마디로 얼굴없는 실세의 영향력이 3년만에 데자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죠.

그는 줄리아 길라드가 축출되고 케빈 러드가 다시 당권 장악을 통해 연방총리에 재등극하는 ‘막장 정치 드라마’의 연출자였던 겁니다. 아무튼 막후 실세였던 그는 당시 재정장관, 노사부장관, 교육 장관 등의 요직을 두루 걸쳤고요, 결국 충분히 예상된대로 2013년 총선 패배 직후에는 자신이 직접  연방 노동당 당수에 등극했습니다.

2016년 연방총선을 이끌었지만 말콤 턴불의 자유당 연립에 패했는데요.. 빌 쇼튼은 3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2019 연방총선에 임하게 됐는데 이번에는 과연 연방총리가 될 지 궁금해집니다.

2016 연방총선 때보다는 노동당의 승리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언급드린대로 총리 선호도에서는 여전히 스콧 모리슨 총리에게 뒤지고 있다는 것이 걱정거리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빌 쇼튼 전략적 판단력이나 정책 개발력은 탁월하다는 것만은 진보 진영이나 보수 진영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죠. 

분명합니다.  저희가 총선 스펙트러 이 시간 첫 순서에서도 언급 드렸듯이 지난 2016 총선에서 악명높은 ‘메디케어 겁주기 정책’과 교육 개혁 정책으로 의석을 14석이나 늘렸잖습니까.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빌 쇼튼 노동당 당수는 ‘부유층 때리기, 서민층 떠안기’ 원칙 하의 ▶네거티브 기어링 혜택 축소 ▶증여세 감면 혜택 축소 ▶배당세액공제혜택 축소 등 다양한 세제개혁안을 선보이면서 서민층 끌어안기에 나름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최근 12개월 동안에 실시된 다양한 여론조사에서도 노동당의 정권 탈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점쳐진 바 있습니다.

다수의 정치 평론가들에 따르면 국민 다수가 이제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도 빌 쇼튼 노동당 당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언급하신대로 그럼에 불구하고 빌 쇼튼 노동당 당수가 총리 선호도에서 스콧 모리슨 연방총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중요한 점은 호주의 유권자들은 지역구 후보나 당수에 대한 선택보다는 원하는 정당에 표를 찍는 정당 투표 추세가 지배적이라는 점을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 잘알겠습니다.  연방총선 특집 총선 스펙트럼 두번째 순서에서는 이번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여야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봤습니다.

 

[상단의 팟 캐스트를 통해 전체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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