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오디오 책갈피. 한국어와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오디오 책갈피.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어느덧 2026년의 세 번째 달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력 설이 지난 지는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지요. 그래서인지 지금이야말로 진짜 새해가 시작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2026년은 말의 해입니다. 힘차게 달리는 말처럼, 더 멀리 나아가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는 때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바쁘게 달려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곁에 있는 존재의 온기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SF 문학의 보석 같은 작품이자, 영어로는 <A Thousand Blues>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입니다.
경마장에서는 더 이상 인간 기수가 말을 타지 않습니다. 대신 가볍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 기수들이 말 위에 올라 트랙을 질주합니다.
그중 하나인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는 제작 과정에서의 작은 오류로 인해 다른 로봇에게는 없는 학습 능력과 감정을 갖게 됩니다.
콜리는 자신이 탄 경주마 투데이와 교감하며 깨닫습니다. 투데이의 관절이 소모되어 이제 더는 달릴 수 없다는 것, 계속 달린다면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요.
여기서 콜리는 로봇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을 합니다. 스스로 말 위에서 떨어져 자신의 다리를 부수고 운행을 멈춤으로써 투데이의 질주를 멈춰 세운 것입니다.
부서져 가는 경주마 투데이를 위해 스스로 낙마를 선택하는 콜리의 모습은 기술이 차가운 계산이 아닌 '다정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리고 그 폐기될 위기에 처한 경주마와 로봇 콜리를 구한 건 휠체어를 타는 소녀 은혜와 그녀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신체가 불편한 은혜, 로봇 수리공인 엄마 보경,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언니 연재.
이들은 모두 사회가 정한 정상의 궤도에서 조금씩 비껴나 있는 어쩌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소외된 존재들입니다. 부서진 로봇 콜리와 늙은 말 투데이,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연대하는 과정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천선란 작가의 철학은 영어권 리뷰어들로부터 '차가운 기술 미래를 다루면서도 가장 뜨거운 심장을 가진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제목인 '천 개의 파랑'은 무슨 의미일까요?
소설 속에서 콜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깨닫습니다. 세상의 파란색은 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요. 구름에 가려진 파랑, 노을에 물들기 직전의 파랑, 그리고 투데이의 눈동자에 비친 파랑까지.
네, 세상에는 수천 수만 개의 서로 다른 파랑이 존재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영어판 서평 중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이 책은 당신이 어떤 빛깔의 파랑을 가졌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성공의 빛깔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경주로를 벗어나 비로소 자유롭게 풀을 뜯는 투데이와 그 곁을 지키는 콜리의 모습은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통해 '말의 해'가 주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늘 말합니다. “더 빨리, 더 힘차게 달려라.” 하지만 가끔은 소설 속 콜리처럼 잠시 멈춰 서서 곁에 있는 이의 눈을 맞춰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나만의 푸른빛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오늘도 여러분 마음 한켠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리며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이었습니다.
상단 오디오에서 오디오 책갈피 팟캐스트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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