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Examines: ANZAC 개척자들을 기리는 니우에 섬 커뮤니티

CROPPED Maori and Niue Soldiers Swim at Narrow Neck Beach AWNS-19160120-39-02.jpg

1915년, 니우에 섬에서 새로 모집된 ANZAC 병사들이 오클랜드에서 서부 전선으로의 파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Credit: Auckland Public Libraries

태평양 니우에 섬의 잊혀진 ANZAC 병사들. 후손들은 외딴 열대 환초에서 출발해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로 내몰린 150명의 자원병들이 겪은 비극으로 점철된 여정을 회상합니다.


1915년, 전 세계에 전쟁이 격화되던 당시 ANZAC 부대는 갈리폴리(Gallipoli)의 언덕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에 뉴질랜드는 전사자 보충을 위해 태평양 섬 식민지들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뉴질랜드는 전쟁 수행을 위해 병력을 제공하겠다는 니우에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150명의 신병들은 니우에의 고향과 가족을 뒤로하고, 라로통가인(Rarotongan)과 마오리족 증원 부대에 합류해 노무와 참호 굴착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들이 겪어온 일을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어 헤어라기 투타우카(Mohelagi Tutoka) 목사

자원병 중 17명이 복무 중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은 많은 이들도 귀국 후 앓던 질병과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상단의 오디오를 재생하시면 뉴스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호주 공영방송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한국어 프로그램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세요.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SBS Audio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매일 방송되는 한국어 프로그램 전체 다시듣기를 선택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SBS 한국어 프로그램 팟캐스트는 여기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열대의 낙원. 니우에 섬은 뉴질랜드 북동쪽, 비행기로 약 3시간 반 거리에 있습니다. 약 15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니우에는 뉴질랜드와 자유연합 관계를 맺고 있는 자치 국가입니다.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지만, 외교와 국방은 웰링턴, 즉 뉴질랜드 정부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1915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갈리폴리 언덕에서는 ANZAC 군이 큰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에 뉴질랜드는 태평양 식민지들로 눈을 돌려 전사자와 부상자로 생긴 병력 공백을 메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니우에는 전쟁 지원을 위해 병력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모어 헤어라기 투타우카 목사의 조상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뉴질랜드군에 복무하기 위해 니우에 섬을 떠난 150명의 지원자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병사들은 훗날 자신들이 겪게 될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전혀 모른 채, 자원입대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투타우카 목사는 전했습니다.

이 150명의 지원병들은 니우에의 집과 가족을 뒤로한 채, 라로통가인들과 마오리 증원군에 합류해 노무와 참호 굴착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그들의 첫 목적지는 오클랜드의 훈련소였습니다.

투타우카 목사는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처음 내로우넥 비치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군화를 신는 일부터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혹독한 추위를 겪는 것도 처음이었고, 어떻게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하는지 몰라 추위로 병에 걸리기도 했다”며 “실제로 우리 마을 출신 한 명은 내로우넥 비치 훈련 초기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질병은 뉴질랜드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이집트로 향하는 여정에서도 이들을 계속 괴롭혔습니다. 이번에는 배 안에서 홍역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니우에 문화와 기독교 신앙에서 힘과 회복력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은 원래 150명 가운데 두 명의 증조부를 둔 타갈로아 마타기 씨가 전한 이야기에도 담겨 있습니다.

"제 할머니는 그들이 성경에서 홍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곳을 보게 되기를 기대했다고 말씀하셨다"며 "또 늘 음식 이야기도 했는데 원래 생선을 먹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데 적응해야 했다고 전했다"고 마타기 씨는 말했습니다.

니우에에서 프랑스 서부전선, 그리고 결국 영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마가렛 포인터 역사학자가 쓴 두 권의 책에 담겨 있습니다.

포인터 역사학자는 "당시 섬 인구는 약 4000명 정도였는데, 이 젊은이들이 한데 모아져 끌려가듯 떠나게 됐다"며 "대부분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평생 맨발로 살았기 때문에 군화는 그들의 몸을 심각하게 망가뜨렸다"며 "유럽 질병에 대한 면역도 전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폐렴과 홍역 같은 질병에 걸렸다"며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누구도 설명해 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저 이 젊은이들이 완전히 낯선 황무지 같은 곳에 놓여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마무리했습니다.

그 젊은이들 가운데 17명은 현역 복무 중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귀향한 많은 이들 역시, 귀국 후에도 이어진 질병과 호흡기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은 릴리 파비히 같은 후손들에게 큰 영감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다"며 "제가 호주에 와서 이곳에 살고 있지만, 제 증조할아버지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파비히 씨는 말합니다. 이어 "감정이 북받치기도 하지만, 정말 자랑스럽다"며 "이 이야기를 제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매년 이곳 ANZAC 추모식에는 아이들도 꼭 함께하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사우스웨일스 니우에 ANZAC 콜린 마카니 회장에게 있어, 니우에 병사들이 ANZAC 전설 속에서 맡았던 역할에 대한 인정은 그들이 남긴 유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마카니 회장은 "평화와 자유"라며 "우리가 자유롭게 여행하고,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 뉴질랜드와 호주, 그리고 이 지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희생 덕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희생으로 태어난 유산. 그들은 늙지 않으리니 우리 남은 자들이 늙어가듯.

나이는 그들을 지치게 하지 않을 것이며 세월도 그들을 꺾지 못할 것이다.

해가 질 때에도 그리고 아침이 올 때에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END OF TRANSCRIPT

Share

Follow SBS Korean

Download our apps

Watch on SBS

Korean News

Watch it onDemand

Watch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