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오디세이] '명동 백작' 박인환과 '목마와 숙녀' 박인희

Park In-hwan, Korean poet and author

Park In-hwan, Korean poet and author Source: Getty Images

서른한 살의 나이로 요절한 시인 박인환은 사후 20년 만인 1976년 시집 출간으로 재조명됐다. 박인희의 낭송 시로 대중화된 '목마와 숙녀'는 70년대 대학가 낭만의 대명사였다.


박인환 시를 노래한 <세월이 가면>, 감성을 자극하는 샹송풍의 멜로디와 박인희의 청아한 음색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노래입니다. 1970년대 초반 혼성 듀엣 뚜아 에 무아로 활동하던 가수 박인희가 불러 널리 알려진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 시인이 31세로 요절하기 1주일 전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1956년, 전후 폐허가 된 명동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고 음악다방과 술집이 하나 둘 생기던 시절, 명동의 한 선술집에서 박인환이 즉흥적으로 시를 읊고, 함께 술잔을 나누던 극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여, 동석했던 가수 나애심이 불렀다는 영화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1950년대 모더니즘을 대변하는 박인환 시인은 ‘명동백작’ ‘댄디보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영화배우 못지않은 준수한 외모에 군용 바바리코트가 멋지게 어울리는 당시로서는 극 세련된 멋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을 읊을 무렵 그는 무척이나 황폐해 있었습니다. 

26세로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을 사랑했던 박인환은  ‘이상 추모제’에서 폭음한 날, 잠든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못 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채였다고 합니다.

‘세월이 가면’ 최초 음반 나애심

2015년 <세월이 가면> 최초 음반이 발견됐습니다.  박인환 시인 사망 2개월 뒤인 1956년 5월 신신 레코드가 제작한 나애심의 유성기 음반이 그것인데요.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음반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습니다.

<세월이 가면>은 이후 현인, 현미, 조용필을 비롯 박인희, 이동원, 이은미, 최백호, 적우, 임태경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습니다.

뚜아 에 무아 시절 부른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은 이필원의 읊조리는 듯 절제된 화음과 투명한 통기타 반주가 더해져 7080세대에게 크게 어필하며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뚜아 에 무아 '세월이 가면'


자유분방함과 낭만을 사랑했던 시인 박인환은 프랑스 파리와 파리의 예술가들을 동경했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가을, 시인의 나이 20세 때 서울 종로구 낙원동 입구에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열었는데, ‘마리’라는 이름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여류 화가이자 시인 ‘마리 로랑생’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몽마르트르의 연인’이라 불렸던 마리 로랑생은 동시대를 살던 천재 화가 피카소를 비롯 로댕, 장 콕도 등으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마리서사’에는 하루도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들이 모여들지 않는 날이 없었고, 술과 문학과 낭만, 예술, 인생을 주제로 끝없는 토론과 열띤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박인희 낭송 시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영국의 여류 작가가 우리의 귀에 친숙하게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일 겁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 상황과는 다르지만 박인환 역시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희망조차 보이지 않던 시대에 20대를 보내며 어두운 절망을 노래했습니다.

<박인환 선시집> 한 권을 남기고 1956년 서른 살의 나이에 요절한 시인 박인환은 사후 20년 만인 1976년,  박인환 선시집에 수록된 시와 유작 등 미수록 시 7편을 넣어 모두 61편의 시가 실린 시집 <목마와 숙녀> 출간으로 크게 재조명됐습니다.

찻집마다 단골 메뉴로 애잔한 음악과 함께 낭송되던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는 70년대 대학가 낭만의 대명사였습니다. ‘목마와 숙녀’는 박인희 낭송 시로 그 시절 그렇게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박인환의 시인의 고향 강원도 인제에 시인의 문학혼을 기리는 박인환 문학관이 있습니다. 문학관 안에는 ‘명동백작’ 박인환의 생전의 모습과 여러 시인과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서점 ‘마리서사’ 그리고 당시  명동의 선술집, 다방 등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해마다 10월이면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박인환 문학제’도 열립니다.

[상단의 팟캐스트를 통해 전체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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