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20년 전 발리 폭탄 테러로 호주인 88명을 포함해 202명 사망
- 호주인 부상자 60여 명, 로열 다윈 병원으로 공중 이송
- 작은 지방 병원에서 국가 재난 대응병원으로 전격 탈바꿈
발리 폭탄 테러 생존자인 피터 휴스 씨. 그에게는 테러 20주년이 그 어느 해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폭발로 건물이 마구 흔들릴 당시 패디스 바(Paddy’s Bar)에 있었고 이를 가스 폭발로 여겨 다른 사람과 함께 거리로 대피했다.
휴스 씨는 “폭탄인 줄 알았다면 첫 번째 때 도망쳤을 텐데... 두 번째 차량 폭탄이 터졌을 때는 재빨리 피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일어섰을 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고, 두 곳 정도 화상을 입었는데 그때는 불이 많이 난 상태였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한다.
당시 42세였던 그는 몸의 50% 이상에 화상을 입고 현지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도움 없이는 본인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언급한다.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 게 정말 행운이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20주년이 나한테는 중요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에게도 잊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발리 테러 생존자 피터 휴스 씨
첫 번째 발리 폭탄 테러로 202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다쳤다.
현지 보건 서비스가 압도당하자 군을 이용해 호주인 부상자를 다윈으로 이송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당시 로열 다윈 병원 원장이던 렌 노타라스 교수는 “서류를 보면 ‘세상에... 여기서 그런 일을 하려 하지는 않겠다’라고 생각할 텐데, 옛날 로열 다윈 병원 응급실은 보잘것없다는 단어 외에 달리 더 적당한 말이 없는 상태였다.”라고 말한다.
이어 “소생실 병상 두 개, 화상 병상 네 개, 화상을 치료할 수 있는 일반 외과의 한 명, 모든 부문의 업무가 가능한 여러 명의 일반의, 간호사, 보건의료인이 있었을 뿐이다. 이곳이 생명을 살리는 경로였음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덧붙인다.
로열 다윈 병원은 발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주요 병원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소생시키고, 남부의 더 큰 병원으로 이송 가능한 환자를 분류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당시 응급실장이던 디디어 파머 부교수는 “로열 다윈 병원이 당시에는 지방 병원이었고, 응급실이 작았는데 응급실 얘기를 하면 병원 전체 얘기를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단순한 응급실이 아니라 병원 전체이고, 당시 서너 명의 고문 의사를 둔 비인가 응급실이었다.”라고 설명한다.
로열 다윈 병원을 국가 재난 대응병원으로 이용하도록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상자 수가 몇 명인지에 대한 정보도 없었는데 파머 부교수는 병원이 사이클론 대응 목적으로 설계해두었던 재난 대응계획을 활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재난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파악할 시간이 없고 사람들이 무의식 상태인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신원 미확인 환자를 위한 대응 방법을 개발했다. 이것은 이들에게 특정한 신원과 병원 번호를 할당하고 이를 이용해 혈액을 채취하고 모든 조사를 하고, 전 과정 걸쳐 그들을 추적하는 시스템으로 처음부터 이 시스템을 이용했다.”라고 설명한다.
부상자 수십 명이 다윈으로 공중 이송됐는데 이들은 폭탄 테러 후 거의 24시간 만에 다윈 병원에 도착했다.
한 명은 이송 중 사망했다.
심한 화상을 입은 한 남성이 도착 직후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다이앤 스티븐스 교수에 따르면 가장 먼저 이송된 부상자는 모두 생명이 위험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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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스 교수는 “환자가 도착했을 때 팔다리를 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수술을 즉시 해야 했는데, 팔다리에 화상을 입으면 팔다리가 부어올라 혈액 공급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화상을 입은 팔다리를 살리려고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해야 했다. 애들레이드에서 올라온 화상 외과 의사가 중환자실에서 수술했고, 다른 수술실에서도 수술이 이뤄졌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스티븐스 교수는 병상 여덟 개의 중환자실을 책임지고 있었고 이 중환자실은 위독한 환자 20명을 치료하기 위해 확장됐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환자가 집에서 가까운 더 큰 병원으로 공중 이송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분주한 72시간을 보냈다.
당시 로열 다윈 병원 원장으로 이 대응을 지휘했던 렌 노타라스 교수는 현재 국립 중환자 치료 및 트라우마 대응 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이후 다윈에 설립된 이 센터는 그때 그 사건의 유산이라고 노타라스 센터장은 말한다.
생존자 피터 휴스 씨는 “발리에서 다윈으로 이송한 것이 나와 많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했고,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