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W 스탠모어의 사이프러스 클럽, 애쉬필드의 폴리쉬 클럽... 이민자들에 의해 설립된 이들 소셜 클럽은 한 세기가 넘도록 호주에서 커뮤니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자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자정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호주 내 이민자 커뮤니티 클럽의 역사와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짚어봅니다. 홍태경 프로듀서 나와있습니다.
주양중 PD: 호주에 사는 사람 중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인구 비율이 무려 51.5%를 차지하는 만큼 호주에서의 다문화 커뮤니티는 이 사회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1세대 이민자들은 자신의 출신 국가의 문화와 풍습을 그대로 갖고 있는 만큼 그들만의 문화를 다음 세대를 통해 보존해 오고 있는데요, 그 중심에는 호주 내 이민자 소수 민족 클럽(Ethnic Clubs)들이 있죠?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호주 내에는 RSL 클럽과 스포츠 클럽, 레저를 위한 장소 등을 포함해 6,500개 이상의 등록된 클럽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이민자들의 '소수 민족 클럽(Ethnic Clubs)'이 얼마나 되는지 혹은 호주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설립된 클럽이 어떤 것들인지 추정할 수 있는 센서스 조사 자료는 없는 실정입니다. 모든 클럽이 라이센스를 받은 곳들은 아니며, 일부 클럽들은 단순히 지역사회 단체가 소유한 장소이거나 집인 반면, 어떤 클럽들은 노인 돌봄 서비스나 교육 제공업을 하는 공간으로 진화했습니다.
1968년 당시 정부 정책 담당이었던 제임스 휴스턴 고문의 조사에 따르면 1,000개 이상의 소수 민족 클럽과 단체 및 협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했지만 그 이후 얼마나 많은 단체들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많은 클럽 단체들이 역사를 이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만 봤을 때, 클럽 오스트레일리아(Clubs Australia)에 따르면 소규모 클럽들 중 33%는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현재 존재하고 있는 많은 클럽들은 과거 축구 클럽에서부터 시작된 곳이 많았죠?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클럽 마르코니(Club Marconi, Hakoah), 하코아 화이트 시티(White City), 킹 토미슬라브 크로아티아 클럽(King Tomislav Croatian Club)은 항상 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형태로 운영되면서 동시에 그러한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이민자들을 위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디킨 대학교의 아카데믹 스포츠 역사가인 로이 헤이 교수는 이들 클럽들이 새로운 이민자들이 호주에 정착하는 것을 돕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도착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이민자들은 지역 축구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종 이민자들은 그 축구 클럽을 통해 직장을 구하거나 집을 얻고 때로는 가족을 만들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같은 민족 사람들끼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에 상부상조를 해나간다는 것이 바로 소수 민족 클럽의 최대 장점이죠.
홍태경 PD: 1929년에 설립된 NSW의 사이프러스 공동체는 대표적으로 한때 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소수 민족 클럽입니다. 축구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더 이상 클럽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클럽 내 식당의 오후 모습을 묘사해보면4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그리스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곤 합니다. 그리스 신들과 여신들의 조각상들이 계단에 늘어서 있고, 과거 멤버들의 오래된 사진들이 파란색 벽과 흰색 벽 사이에 걸려 있습니다. 지하층에는 70, 80, 90대 남성 50여 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모습은 사이프러스와 그리스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카페니오(카페)와 다를 바 없습니다. 남성들이 자주 드나드는 이들 장소는 여전히 그리스와 사이프러스의 마을에서 사회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진한 블랙커피와 함께 자원봉사자들이 집에서 만들어 온 간식들이 제공됩니다. 이제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사회적 건강 문제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사이프러스 클럽의 단골 고객인 아밀리오스 씨는 시드니 서쪽 펜리스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왕복 120km 거리에도 불구하고 찾아갑니다. 아밀리오스 씨는 그리스-터키 전쟁이 발발했을 때 거의 50년 전에 사이프러스를 떠났다고 하는데요, 전쟁 중에 친구들과 친척들을 잃었다고 얘기합니다.
"전쟁에 참전하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직접 보았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습니다.” 아밀리오스 씨는 사이프러스 클럽이 자신의 과거 시절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연결고리를 제공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있는 것을 즐깁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로는 좋은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슬픈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문화에 둘러싸여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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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많은 이민자 커뮤니티에 안식처가 되어주는 클럽이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명맥을 간간이 이어오고 있는 곳들도 많을텐데요.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클럽은 고령화된 회원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시스템, 클럽의 위치, 그리고 그 지역의 변화하는 인구 통계 때문에 침체를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또한 많은 소규모 클럽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사이프러스 클럽의 앤드류 코스타 회장은 "포키 궁전(pokie palaces)’이라고 불리는 것과 별도로, 대부분의 커뮤니티 클럽들은 운영이 매우 어려워졌으며 사이프러스 클럽도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전통적인 댄스 수업과 그리스어 수업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사업을 유치하기 위한 방안들을 찾고 있고 개발만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개선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진행자: 건설적인 방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대표적인 민족 클럽은 폴리쉬 클럽이죠?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시드니 이너웨스트 애쉬필드에 있는 폴리쉬 클럽은 이미 개발업체와 협력 하에 88채의 아파트와 새로운 클럽 건물을 건설 중입니다. 리처드 보리시에비치 클럽 회장은 이사회가 이미 오래 전부터 클럽을 개발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단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현실을 바라보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창업 세대의 자녀, 손자, 증손주 등 다음 세대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 왔다고 전했습니다.


또 뱅크스타운에는 현재 시드니에서 운영되는 유일한 폴란드 클럽인 또 다른 폴리쉬 클럽이 있는데요, 노란색 벽돌로 된 단층 건물에는 폴란드식 작은 식당과 폴란드 노인 단체, 그리고 이 지역의 나이든 그리스계 호주 여성들을 위한 운동 단체를 포함해 다양한 지역 사회 단체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진행자: 폴리쉬 클럽이 오래 전부터 지역 사회에서 활성화된 모습을 보여왔었죠. 한때 시드니 애쉬필드에는 한인들이 많이 밀집해 살았거든요.
홍태경 PD: 앞서 언급한 두 폴리쉬 클럽 모두 아시아와 중동 등 이민자 인구로 인해 급격히 인구 증가를 겪은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애쉬필드 클럽의 재무 담당 이사이자 NSW의 슈터스 앤 피셔스 파티(Shooters and Fishers Party)대표인 로버트 보르삭 이사는 소규모 클럽들을 위한 개발은 초기 클럽 설립자들의 비전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환상의 도피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다각도 사업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호주에는 폴란드 공동체 조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그것으로 이익을 창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뱅크스타운에 있는 폴리쉬 클럽은 그 지역의 새로운 이주자 그룹들에게 장소를 임대하면서 작은 규모를 유지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클럽의 자원봉사자이며 클럽 회장의 아들 미하엘 루비에니에츠키 씨는 클럽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언제나 틈새시장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소수 민족 클럽들은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라며 여전히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홍태경 프로듀서와 함께 민족 클럽의 역사와 그 중요성 짚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