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풋볼의 전설, 한국계 피터 벨을 아십니까?

Peter Bell (Freemantle) March 15, 2006. (AAP Image/Glenn Hunt)

Peter Bell (Freemantle) March 15, 2006. (AAP Image/Glenn Hunt) Source: AAP

서부 호주주 최고의 풋볼 선수로 손꼽히는 피터 벨은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로 입양 된 한국 입양아로 2006년 친 어머니와 재회했다.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계 인사 누가 있을까요? 가수 임다미 그리고 저희 SBS PopAsia의 호스트 케빈 김, 배여진 디자이너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요. 사실 2000년대 초반만해도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계 인사는 서부 호주주의 풋볼 플레이어 피터 벨이 유일했습니다. 1976년 한국에서 태어난 피터 벨은 호주 가족에게 입양된 한인 입양아입니다. 서부호주주의 코조넙이라는 시골에서 자랐는데요. 너무 어릴 때 입양돼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고 한국이나 한인 사회에서는 생소한 풋볼 선수인 만큼 한국과 호주 한인 사회에서도 피터 벨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부호주 풋볼계에서 피터 벨은 역사와 같은 인물입니다.

노스 멜번 클럽과 서부호주 프리멘틀 클럽에서 선수로 뛰었던 피터 벨은 두 차례나 호주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올렸고요. 2008년 은퇴 한 뒤 2015년에는 AFL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피터 벨은 2016년 부터는 퍼스 ABC에서 아침 출근길 라디오쇼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ABC 라디오의 토크쇼인 The Conversation에 출연해, 풋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생모와의 상봉 등에 대해 털어놨습니다.

한국에서 선교활동 중인 호주부부에게 입양된 피터 벨

서부 호주주를 대표하는 풋볼 선수 피터 벨은 한국에 대해서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포대기에 업혀 있을 때의 그 포근한 그 기분만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업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피터 벨의 양 부모인 조와 케빈 씨는 수의사로 당시 한국에 선교활동을 떠났습니다. 이 부부는 1970년대 중반 한국 사회의 많은 고아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태어난지 몇일 된 피터 벨을 만납니다. 이후 몇년 더 한국에서 지낸 벨 가족은 서부호주주 퍼스와 알버니 사이에 있는 코즈넙이라는 목축 지역에 정착하고 피터 벨은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풋볼을 접하자 마자 공을 사랑하게 된 피터는 잠을 잘때도 풋볼공을 안고 자고 일어나서도 제일 먼저 공을 찾을 정도로 풋볼에 매료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부상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풋볼 커리어를 이어갑니다.

"넌 이 가족에 속하지 않아"

피터 벨이 처음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게 된 것은 9살 경이었다고 하는데요. 남자 형제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동네 불량배들을 만나게 됐는데요.

그때 “넌 이 가족에 속하지 않는데 여기서 뭐하냐?” “넌 너네 가족들과 다르게 생겼다”라는 얘기를 들었고, 그 말에 대해 옆에 있던 형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것을 보고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거울을 열심히 보니 자신이 금발인 가족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인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양 부모님이 피터 벨에게 입양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친 어머니 경애씨의 전화

운동 선수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으면서 늘 부모님은 친 부모를 찾아보라고 제안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피터 벨은 매일 그 생각을 했지만 늘 용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번 거부 당했던 경험이 또 다른 거절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2006년, 피터 벨은 자신의 친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당시 친 어머니 경애 씨는 미국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아이를 입양할 때 도움을 준 수녀에게 연락을 해서 아들의 연락처를 찾아, 피터 벨의 양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시 그 수녀는 입양된 아이가 호주에서 유명한 운동 선수가 됐다고 말을 전했는데요. 이때 호주에서 유명한 한국계 운동선수로는 피터 벨이 유일했습니다.

아이를 입양시킬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

어머니 경애씨는 입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이혼한 경애 씨는 엔지니어였던 미국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남자는 이미 미국에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임신한 경애씨와 함께 하기 위해 부인에게 이혼 합의서를 보냈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 갈라질 것을 선언했던 부인은 막상 이혼 합의서가 날라오자, 세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와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고, 그는 곧장 가족들과 미국으로 가 버립니다.

임신한 경애 씨는 도와줄 가족이 없었고, 혼혈아를 혼자 키울 수 없어 입양을 시키게 됐는데, 당시에는 호주의 수의사 부부가 아닌 미국의 의사 부부가 아이를 맡을 것이라고 들어서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경애씨는 입양 직후 부터 이를 후회했는데요. 그래서 아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인구 2400만의 도시 미시건에서도 아들 또래의 혼혈아를 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미국에서 꽤 성공하고 다시 결혼도 한 경애씨는 늘 아들을 잊지 못해 울적해 지는 시간들이 자주 있었고 이를 안타깝게 본 남편이 이제라도 아들을 찾자고 해서 정보를 취합했는데, 피터 벨의 양 어머니가 이들을 이어준 수녀에게 늘 연락처를 남겨 놓은 탓에 남은 인생을 다 바칠 줄 알았던 아들 찾기는 10분 만에 해결이 됐다고 합니다.

한인 입양아들의 롤 모델 피터 벨

이들 모자는 미국에서 재회했고, 어머니 경애 씨는 호주를 방문해 피터 벨의 경기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터 벨이 2015년 AFL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시상식에도 참석해 아들을 축하했습니다.

호주의 대표적인 풋볼 선수 피터 벨, 사실 과거 인터뷰에서는 자신인 태어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요. 최근 몇 년 동안은 친 어머니와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밝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는데요. 앞으로 호주 사회에서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하는 것으로 많은 한인 입양아들에게 힘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상단의 팟 캐스트를 통해 전체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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