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뜨거운 피>로 K-스릴러의 세계적 가능성을 보여준 김언수 작가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호주 등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습니다.
김언수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문체가 돋보이는 <캐비닛(The Cabinet)>은 2006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습니다.
SBS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을 우리는 종종 “소설 같다”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오히려, 현실을 매개로 한 상상력은 더 깊은 공감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그 공감은, 우리를 다시 소설로 이끕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 함께 펼쳐볼 책은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입니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고, 혀 밑에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세계.
하지만 그런 기이한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피로와 무기력을 건드릴 때, 그건 더 이상 허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캐비닛>은 문서 보관함 13호에 담긴, 기묘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돌연변이들의 박물지 같은 기록을 읽어 내려가는 30대 직장인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혹시 요즘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몇 날 며칠 푹 자고 싶다”
그런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소설 <캐비닛>엔 그 생각을 실제로 실현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름하여, 토포러(torporer).
어느 날 갑자기 아주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인데요.
그들은 꿈을 수집하고 그 꿈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깨어났을 땐 전과는 전혀 다른, 몰입적이고 긍정적인 존재가 되어 돌아옵니다.
소설 속 곽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가족들이 장례까지 치렀지만, 몇 달 뒤 다락방에서 멀쩡히 걸어 나옵니다.
“밥은 먹었냐”는 듯 아주 평온한 얼굴로요.
연이은 사업 실패와 이혼, 자살 충동 끝에 잠든 허 사장 역시
잠에서 깨어난 뒤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삶의 리듬을 재정비한 것이죠.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토포러는 불안과 피로에 짓눌린 현대인들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깊은 잠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구성하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 나갑니다.
마치 다른 차원에서 위로와 회복을 받고 돌아온 사람들처럼요.
김언수 작가는 말합니다.
“늘 잠에 쫓기고, 일에 쫓기며 사는 게 우리들 현실이니까요.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한 6개월 정도는 푹 자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써 봤어요."

김언수 장편 '캐비닛'
소설 속에선 그들을 ‘심토머(symptomer)’라고 부릅니다.
새끼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문방구 주인아저씨,
남성과 여성의 생식 기관을 모두 지닌 채 태어난 스스로 임신이 가능한 인간,
입속에 도마뱀을 키우다 도마뱀 혀를 갖게 되는 키메라,
곰처럼 몇 달간 잠만 자는 남자, 앞서 소개해 드린 토포러죠.
그리고 시간을 잃어버리는 타임스키퍼.
생물학과 인류학이 말하는 ‘정상 인간’의 기준에서는 조금씩 벗어난 이 인물들.
처음엔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묘하게 공감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어디 한 군데쯤은 조금씩 이상하니까요.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심토머들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현대인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소설 <캐비닛>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 사회의 단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비추게 합니다.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 오늘 우리가 겪는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 이야기입니다.
sbs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살며시 남겨드렸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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