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토크] 인생이 연주하는 불협화음 '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 directed by Yaron Zilberman

'A Late Quartet' directed by Yaron Zilberman Source: Getty Images

25년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현악4중주단 ‘푸가’의 정신적 멘토 피터(크리스토퍼 월켄)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멤버들의 삶과 음악이 기로에 서게 된다. 영화는 현악 4중주에 삶을 빗대 관객들의 인생을 위로한다.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영화로 소통하는 코너 수요일 시네마 토크

현악기가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실내악.  제1, 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4대의 현악기가 조화와균형을 이루는 현악 4중주를 일컬음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한 네 명의 음악인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화, 야론 질버른 감독의 '마지막 4중주' 입니다.

영화는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는 현악 4중주잔 ‘푸가’의 최고 연장자이며 연주단의 정신적 지주인 70대의 첼리스트 '피터' 교수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피터 역에 영화 '디어헌터'로 널리 알려진 명배우 크리스토퍼 월켄입니다.  

파킨슨 병은 신경계통의 만성 퇴행성 질환으로 떨림과 경직이 오고 운동이 느려지며 자세가 불안정해지는 병. 관절의 움직임이 불편하니 손가락을 써야 하는 첼리스트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단원들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병을 알리는 피터. 약물로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테지만 앞으로 연주는 힘들 것 같다며 ‘푸가’의 미래를 위해 대체할 첼리스트까지 소개합니다. 팀의 앞날에 대한 고민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서히 단원들 간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데...

만년 제2 바이올린이었던 로버트가 새 멤버가 들어오면 이제는 자신이 제1 바이올린을 맡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 25년간 드러나지 않고 수면 아래에 잠재해 있던 팀원들간의 억눌렸던 감정의 골들이 폭발합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제1바이올린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는 제2바이올린주자 '로버트'와 남편보다는 팀의 하모니를 더 중시하는 아내이자 팀의 비올라 주자 '줄리엣'. 이 상황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 1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은 로버트와 줄리엣 사이의 딸이자 제자인 알렉스와 연인사이로 발전합니다.

그들이 25년간 호흡을 맞춰온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조화 뒤에는 오랫동안 숨겨온 불협화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풍비박산 일보직전이 되어버린 ‘푸가’를 어떻게든 지키기위해 고뇌하는 피터…그리고 그에게 나타난 아내의 죽은 아내의 환상.
영화에서 1년 전 세상을 떠난 피터의 아내로 특별 출연한 안네 소피 폰 오터는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메조 소프라노입니다. 그가 부른 오페라 삽입곡 '사자(死者)의 도시(The City of Dead)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한 나머지 어딜 가든지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마지막 4중주’ 영화의 스토리와 잘 매치됩니다.

파킨슨 병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삶의 변화를 맞이한 와중에도 피터는 슬럼프에 빠져 있는 제자들을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격려하며 지혜로운 스승의 모습을 보입니다.

강의 시간 중 전설적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의 일화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는데.. ‘학생 때 카잘스를 만나서 최악의 연주를 선보였으나 뜻밖의 칭찬을 들은 후 그가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해 더욱 화가 났지만 이후 다시 만나 이유를 들으니 ‘단 한 소절일지라도 즐겁고 고마웠으니 칭찬을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과 대사로 손꼽히는 이 장면은 전설적인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가 겪은 실화입니다. 러시아 출생의 미국 첼리스트로 베를린 필의 수석 연주자를 지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는 그의 자서전 ‘첼리스트’에서 20세기 첼로의 거장으로 불린 파블로 카잘스와의 인상 깊었던 두 번의 만남에 대해 술회했고, 야론 질버만 감독은 이에 영감을 얻어 피터와 카잘스의 에피소드로 구성했습니다.

삶과 음악에 있어 최대의 기로에 선 4중주단의 위기 속에서 피터가 마지막 무대의 연주곡으로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 C# 단조를 을 제안합니다. 총 7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쉬지 않고 전곡을 이어서 연주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곡입니다.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보이던 단원들의 갈등은 우여곡절 끝에 봉합의 실마리가 보이고 네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영화 속 현악4중주단 ‘푸가’는 세계적 명성의 과르네리 현악4중주단 (Guarneri String Quartet)과 이탈리안 현악4중주단을 모델로 했습니다. 

과르넬리 스트링 쿼텟은 40년 동안 함께 연주한 세계 최고의 현악4중주단으로 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첼리스트 데이빗 소이어가 은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 나머지 팀원들은 팀을 해체할지 유지할지 고민했지만 소이어의 수제자인 첼리스트 피터 와일리가 합류하면서 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안 현악4중주단(Italian String Quartet)으로 3명의 남성 단원과 1명의 여자로 구성됐고, 이들은 모두 곡을 암기해서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야론 질버먼 감독은 이러한 팀들의 특징을 고루 살려 영화 속 현악 4중주단 ‘푸가’를 탄생시켰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15분은 이들이 함께 연주하는 25주년 기념공연장을 비춥니다. 총 7악장이 연결된 음악으로 40분 동안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는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

마지막 7악장을 남기고 연주를 중단한 피터는 청중을 향해 "더 이상 멤버들의 속도를 맞출수 가 없습니다."라고 고별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자리를 이어갈 젊은 첼리스트 니나를 소개합니다. 푸가 현악 4중주단은 새 멤버와 함께 마지막 악장을 이어가는데, 제1바이올린 주자 다니엘의 주도로 모두 악보를 덮고 암보로 연주를 시작합니다

영화는 네 사람이 25년간 쌓아왔던 감정을 골을 헤치는 과정을 통해 인생 자체가 혼자 연주하는 독주가 아니라 화음을 맞춰가는 협주이고, 그 불협화음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라는 점을 ‘조용하고 느린 방법’으로 보여줍니다.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한 4인의 음악인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화, 야론 질버먼 감독의 <마지막 4중주>였습니다.

상단의 팟캐스트를 클릭하면 전체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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