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피해여성들의 삶을 담은 <에움길>이 6월 20일 한국에서 개봉과 동시,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래된 화면 속 중국 장강, 당시 일본군 위안소라 불리던 공간의 내부를 비추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1991년,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를 다룬 영화들은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발표돼 왔고,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위안부의 아픔을 꾸준히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굽이 굽이 멀리 에워서 돌아가는 길이란 뜻의 영화 <에움길>은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입니다.
<나눔의 집>에서 20여년간 생활해 온 할머니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영상일기로, 지금까지의 관련 영화와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무겁고 가슴 아픈 역사 호소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 할머니들이 걸어온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과거 영상과 현재 모습을 교차하여 보여주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더해가는 방식입니다.
평화인권운동가로서 당시를 증언하며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이옥선 할머니가 이야기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사과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던 일본 총리의 만행, 2015년 한·일 두 나라 정부가 피해 당사자와 협의 없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일방적으로 합의해버리고 설립한 화해치유재단문제 등도 함께 짚어냅니다.
영화 에움길은 <귀향>에서 일명 ‘착한 일본군’으로 불린 ‘다나카’역으로 호평을 받았던 이승현 배우가 메가폰을 잡은 감독 데뷔작입니다. 2016년 영화 <귀향>으로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은 이승현 감독은 할머니들의 기록이 담긴 오래된 영상 자료를 발견하고 이를 함께 나누고자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합니다.
<에움길>에는 무거운 역사를 내려놓은 할머니들의 정겹고 활력 넘치는 일상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담겼습니다.
할머니들의 일상은 여느 할머니와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흥이 나면 노래 하고 춤도 추고. 봄나들이를 나가서는 꽃을 보고 소녀처럼 좋아하고, 정치적 상황이 할머니들의 일상을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금세 다시 돌아옵니다.
이옥선 할머니가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을 맡았습니다.
이옥선 할머니 외에도 ‘행복전도사’ 김군자 할머니, ‘노래는 잘 못하지만 부르기 좋아하는’ 박옥선 할머니, ‘항상 분주한’ 강일출 할머니, ‘누구보다 용감하고 말 잘하는’ 이용수 할머니, 그리고 김순덕 할머니, 지돌이 할머니, 박옥련 할머니, 배춘희 할머니 등 30여 명이 등장합니다.
그 땐 젊었으니까 좋지..
영화에 등장하는 30여 명 할머니 중 현재 살아계신 분은 이제 네 분 뿐입니다. 할머니들의 기록을 정리한 것만으로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꽃도 있고, 웃음도 있고, '나눔의 집'에는 각양각색의 할머니들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할머니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이 따뜻한 울림으로 전해집니다.
영화 <에움길> 씨네마 토크에서 만나봤습니다. 유화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