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오디세이] ‘금녀의 악기’ 해금시킨 첼리스트 ‘귀예르미나 수지아’

Historic cellist Guilhermina Suggia

Historic cellist Guilhermina Suggia Source: Getty Images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활약했던 포르투갈 태생의 첼리스트 귀예르미나 수지아(1885~1950)는 첼로 음악을 음반으로 남긴 최초의 여성 첼리스트로, 그의 유언에 따라 수지아 상이 제정됐다.


서양음악사 속에 수많은 위인들이 등장하지만, 여성 음악가의 이름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수많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아마추어라 낮춘 채 제한된 영역에서 활동했고, 자신의 재능을 온당히 발휘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습니다.

여성의 정숙함을 대표하는 악기 ‘하프’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 균열이 생긴 건 여성 참정권 운동이 본격화한 19세기 말이었습니다.  그나마 악기 연주가 여성들에게 허용되었지만 모든 악기가 권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성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육중하거나 강력한 악기는 기피되었습니다.  호른과 첼로, 바순과 트럼펫 같은 악기는 전형적인 남성의 악기로 간주되었습니다.  반면 양쪽 발을 다소곳이 모으고 손가락만 움직여 연주하는 피아노나 하프는 연주하는 동안 우아한 여성의 자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적극 권장된 대표 악기였습니다. 

하프와 피아노는 여성 특유의 정숙함을 표현하는 악기로 평가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에 비해 몸값도 비쌌는데, 그만큼 고상한 문화생활을 추구하며 교양을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기에 더 없이 좋은 악기였습니다.

여성 음악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입니다.  오늘날에는 독주 악기나 오케스트라에서 여성연주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피아노와 바이올린, 플루트와 오보에 같은 악기들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집니다.

금녀의 악기’ 첼로

바이올린과 달리, 첼로는 많은 악기들 중에서도 특히 오래도록 ‘금녀의 악기’로 여겨졌습니다.  다리 사이에 끼고 연주하는 모습이 여성답지 못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는데,  그 잘못된 터부를 허물어뜨린 것은 20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포르투갈 태생의 첼리스트 귀예르미나 수지아(1885~1950)였습니다.

귀예르미나 수지아는 첼로 음악을 음반으로 남긴 최초의 여성 첼리스트입니다. 영국의 화가 어거스트 에드윈 존이 그녀의 연주 장면을 회화 작품으로 남겨놓았는데, 그림 속의 수지아는 약간 매부리코에 팔다리가 아주 긴 체형으로, 첼로라는 악기에 걸 맞는 참으로 당당한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는 ‘첼로의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이 따라붙기도 합니다.

음반으로 남긴 최초의 여성 첼리스트 ‘귀예르미나 수지아’

수지아는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팔아서 대영제국 예술위원회가 관리하는 수지아 재단의 기금으로 쓸 것, 국적에 관계없이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스물 한 살 미만의 첼리스트에게 수지아 상을 수여할 것.’

포르투갈 태생의 수지아가 영국의 예술위원회에 기금을 맡긴 것은 자신이 연주자로서 큰 성공을 거둔 곳이 영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956년, 수지아 상의 첫 번째 수상자는 열한 살의 꼬마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é1945-1987)였습니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여류 첼리스트로 꼽히는 뒤 프레는 그렇게 ‘신동 첼리스트’로 세상에 등장합니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는 이 두 명의 여성 첼리스트들이 즐겨 연주했던 레퍼토리이자, 특히 재클린 뒤 프레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됐습니다.

'
프레의 엘가' 불리는 엘가 첼로 협주곡 e 단조 

자클린 뒤 프레는 남성 연주자들 못지 않는 힘찬 연주와 뛰어난 테크닉, 풍부한 음악성, 무엇보다 왕성한 창조력을 지닌 천재 첼리스트로 각광받았습니다. 1965년 BBC 교향악단과의 미국 연주 여행 때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해 선풍을 일으킨 후부터 엘가를 장기로 하며 '뒤 프레의 엘가'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그리고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 첼리스트 뒤 프레.  그러나 1971년 만 스물 일곱의 나이에 찾아온 다발성 뇌척수 경화증이라는 희귀 증상으로 급기야 모든 연주활동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14년간 병마와 싸우다 42세로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비운의 천재 첼리스트입니다. 

독일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 미푸너는 자크오펜 바하의 미발표 곡에 ‘자클린의 눈물(Jacqueline's Tears)’이라는 제목을 붙여 헌정했습니다.


올해는 클라라 슈만(1819~1896) 탄생 200주년을 맞아 남편 로베르트 슈만(1810~1856)과 제자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가 사랑하고 존경한 뮤즈를 넘어 그녀의 선구자적 음악적 삶과 걸작 작품을 재조명하는 시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졌습니다.  클라라는 그 자신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으며, 출판가이자 작곡가였습니다.

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 맞아 재조명

컬처 오디세이,  보수적인 클래식계의 유리천장을 깨고 근대 서양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대표 여성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유화정이었습니다.

상단의 팟캐스트를 통해 전체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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