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가슴 벅찬 사랑을 그린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2021년 영어 번역본 <My Brilliant Life>로 출간돼 해외 독자들에게도 소개됐습니다. 아이를 통해 성숙해지는 부모의 이야기이자, 조로증이라는 남다른 삶을 유머러스하게 끌어안는 한 소년의 성장기는 동명의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로 한국일보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애란 작가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누군가의 짧은 인생이 얼마나 길고 깊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눈부신 성장기, 김애란 작가의 장편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만나봅니다.
이 작품은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소년과 소녀,
태어나자마자 급격한 노화를 겪어야 했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부모는 그 아이와 함께 어른이 되는 길을 조금 일찍 걷기 시작하고,
부모와 자식, 모두가 서툴지만 가슴 뛰는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열일곱의 소년과 소녀 사이, 아이가 생겼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전교 1등, 공부 잘하고 똑 부러진 소녀 미라,
태권도 특기생으로 체고에 진학했으나 대회에서 부당 판정에 항의 하다 소란을 피워 정학을 맞은 소년 대수.
살아온 환경, 삶의 목표 등이 너무 달랐지만, 남몰래 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으며 어느새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이 자라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열일곱 철없는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가진 두 사람.
아이는 낳을까, 말까. 미라는 아이를 낳았을 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책에 적어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혼난다
학교에서 잘린다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다
돈이 없고 돈 벌 능력도 없다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점은 끝도 없이 늘어가지만, 늘어만 가지만, 장점 칸은 아무것도 적을 것이 없습니다.
대수는 몰래 기도합니다.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하지만 아이를 가진 미라는 임신성 고혈압과 단백뇨가 생겼고, 최선의 치료법은 ‘분만’이라는 의사의 말에 엉겁결에 출산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아이를 낳기까지 했던 고민이 무색하게, 두 사람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아이의 첫 울음소리에 두려움 대신 벅찬 사랑이 밀려오는 순간.
“아름아, 엄마야….”
그러곤 미라는 이유 모를 대성통곡을 시작합니다.
대수는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게 미안해, 더 크고 오래 오열합니다.
그 순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감정.. 슬픔과 기쁨, 긍지와 수치, 후련함과 서러움, 헛헛함과 충만함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총체를 경험한 겁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아름’, 한아름.
하지만 아름은 미처 자라기도 전에 늙어버리는 ‘선천성 조로증’이라는 희귀성 난치병 진단을 받았고, 열일곱이 되던 해에는 병이 악화돼 입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열일곱 소년의 마음과 부모보다 훨씬 늙은 여든의 몸을 지닌 아름.
그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웃의 예순살 할아버지가 유일한 친구입니다.
늘 고통과 죽음을 늘 곁에 둔 채 상대적으로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겪어야 하는 아름은 그만큼 인생을 더 깊이 배우고 느낍니다.
부모는 왜 아무리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지닐까.
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그리고 스스로 답합니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자식을 통해서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소설 속에서 특히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력을 잃은 아름이 맞이한 첫눈. 얼굴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차가운 감촉에 엄마에게 어떤 눈인지 묻습니다. 엄마는 가진 어휘를 총 동원해 설명하죠.
"눈송이가 제법 크고... 보송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조용하게 내려."
“아, 함박눈이구나.”
이어 아름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혼잣말을 합니다.
금세 사라져버릴 눈송이가, 굳이그렇게 아름다울 이유가 있을까요. 금세 사라질 아름의 인생과 닮아 있어 가슴 아린 대목입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두근두근 내 인생' 포스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나는 무럭무럭 늙는다
누군가의 한 시간이 내겐 하루와 같고
다른 이의 한 달이 일년쯤 된다
이제 나는 아버지보다 늙어 버렸다
아버지는 자기가 여든 살이 됐을 때의 얼굴을 내게서 본다
나는 내가 서른 넷이 됐을 때의 얼굴을 아버지에게서 본다
오지 않을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두군두군 내인생 소설속 프로로그 대사 중에서-
아름은 부모님을 위해 써뒀던 글을, 아름의 상상 속에서 열일곱 미라와 대수의 첫 만남을 적어 놓은 소설을 그들에게 줍니다. 그러면서 부족하지만 이게 당신들을 기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더 쓰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세상의 많은 말들을 다 느끼고 다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시간 17년. 삶의 마지막 순간 아름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살아있는 것.”
오늘 오디오 책갈피에서는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펼쳐보았습니다.
짧지만 뜨겁게 살아낸 한 소년의 시간, 그리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얼굴에서 발견한 사랑을 함께 나눠봤습니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아름의 마지막 고백. 그 짧은 문장 속에 담긴 묵직한 여운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 한 켠 작은 책갈피로 남길 바라며, 오디오 책갈피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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