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최고령 탈북자 고 김병녀 님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실존과 허구를 잇는 장편소설
-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의 격랑을 조명
- 피해자로만 남기를 거부하며 사기꾼·스파이·테러리스트로 변신해 생존한 여성의 서사
- 한국인 최초로 미 윌리엄 사료얀 국제 문학상 수상(2024), 영국 여성문학상 롱리스트 후보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오늘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분단과 냉전의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조명하는 작품.
이 미리내 작가의 장편 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원제8 Lives of a Century-old Trickster)>을 만나봅니다.
한 세기를 살아온 여성, 세 개의 국적, 여덟 개의 얼굴. 그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근현대사의 격동,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지난 100년의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펼쳐집니다.
요양원의 치매 환자 구역. 흙을 먹는 기이한 습관을 가진 93세 노인, 묵 할머니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요양사에게 자신의 부고를 써달라 부탁하며 인생을 요약하는 여덟 개의 단어를 들려줍니다.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어머니.
요양사가 여덟 개가 아닌 일곱 개뿐이라고 되묻자, 묵 할머니는 비어 있는 숫자를 채우기 위한 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난 일본 사람으로 태어나서 북한 사람으로 살았고, 이제 남한 사람으로 죽어가고 있지.”
묵 할머니는 90평생을 살면서 가졌던 세 개의 국적과 살아남기 위해 바꿔야 했던 여덟 가지 정체에 대해 고백합니다.
일제강점기 평양 근교 작은 마을, 가난한 어부의 딸로 태어난 그녀.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가족의 상처를 견디며 성장합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실명 위기에 놓인 엄마의 눈을 고쳐주겠다는 거짓말에 말에 속아 끌려간 곳은 인도네시아 스마랑의 일본군 위안소.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곧 한국전쟁이 터지고. 부산의 미군 부대 근처 ‘낙검자 수용소’, 멍키하우스에서 또 다른 생존을 이어갑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이자 어머니로 잠시 평화를 맞이하지만, 10년의 실종 끝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북한의 공작원으로 남한에 파견되며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작품 속에서 묵 할머니의 삶은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지 않고, 여덟 가지 인생의 단편들이 퍼즐처럼 얽히며 펼쳐집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개인의 고백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남북 분단과 이념 갈등 속에서, 피해자로만 기록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로 올려 놓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 미군 부대 멍키하우스의 성매매 여성, 전쟁 속에서 겁탈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들, 정치적 공작원으로 살아간 여성들. 그들은 모두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역사의 변두리로 밀려나 착취당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여성들은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이 되고, 살인자가 되고, 테러리스트이자 스파이, 게릴라가 됩니다. 마치 삶 자체가 트릭스터(Trickster)의 방식처럼, 끝없이 다른 얼굴을 쓰고 거짓말을 하며 생존을 이어갑니다.

이 미리내 '얼굴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표지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한 세기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대기의 나열이 아니라, 한 여성의 고백을 통해 드러나는 시대의 폭력과 억압의 얼굴입니다.
묵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세기를 살아온 여성의 강인함과 끈질김, 그리고 인간의 내면의 깊은 그림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역사의 변두리에서 지워졌던 목소리들.
그 목소리들을 세상 한가운데로 불러내는 일,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 아닐까요>
문학은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됩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이름 없이, 그러나 여덟 개의 얼굴로 꿋꿋이 시대를 건너온 한 여성의 이야기.
이 미리내 작가의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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