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책갈피: 제주 4.3, 그리고 문학의 위로…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we do not part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영문번역본 We Do Not Part)'

메디치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과 개인사를 배경으로, 끝내 꺼지지 않는 사랑과 기억을 되살리며 말하지 못한 역사를 마주하게 하는 문학적 위로를 전합니다.


Key Points
  •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 미국 영어번역본 'We Do Not Part' 2025년 출간
  • 제주 4·3과 개인사,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랑과 기억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
  • 시드니 한국문화원·호주국립대학 공동 주최 한국문학주간 ‘어울림’ 19일부터 캔버라 개최
  • '작별하지 않는다' 번역가 Paige Morris 초청 북토크, '식물적 낙관' 김금희 작가도 참여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오늘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2021년 작품을 만나봅니다.
한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우선 읽기를 권했는데요.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을 통해 국제적 인정을 받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5년 1월 미국에서 영어 번역본 <We Do Not Part>로도 출간돼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지만 이 책은 서두는 자신이 꾸었던 꿈을 소설 속 주인공 경하를 통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경하는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심긴 산을 거닐다, 그것들이 묘비 같다고 느낍니다.
밀물이 밀려들며 통나무들이 잠기자, 땅속의 뼈들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죠.

이 꿈은 곧 제주 4·3 사건의 기억과 겹쳐집니다.
소설가 경하는 K 도시에 관련된 소설을 쓴 후 극심한 악몽에 시달립니다.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 한강과 경하가 자연스럽게 일치하죠.
고통 속에서 수취인 없는 유서를 쓰고 찢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경하는 몇 년 만에 친구 인선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데요. 인선이 제주산간 목공예 공방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로 급히 병원으로 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반려동물 앵무새를 돌봐달라 부탁합니다.

신경이 살아 있도록 봉합 수술 부분을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인선.
제주집에 홀로 남겨진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경하는 폭설과 강풍 속, 인선의 집으로 향하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여정을 걷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을 때에는 앵무새 아마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 아마를 하얀 무명으로 감싸 마당의 나무 밑에 묻습니다.
폭설로 전기가 끊기고 난방도 되지 않는 인선의 집에서 경하는 인선의 가족사가 담긴 기억과 마주합니다.

제주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고, 남은 생을 오빠의 행적을 찾아 헤맨 인선의 어머니, 정심.
차가운 얼굴 위로 쌓인 눈을 한 사람 한 사람 닦아가며 확인했던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그 기억을 딸 인선에게 전하지 않았던 어머니 정심의 이야기가 눈 내리는 밤 인선에게서, 경하에게로, 다시 독자에게로 쌓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힘은, 폭설로 고립된 집 안 어둠 속에서 희미한 촛불처럼 다시 살아납니다.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 사랑은 죽음과 폭력에도 끝내 꺼지지 않는 기억, 말하지 못한 역사를 대신 말해 주는 문학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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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의 작가 한강 /해외홍보문화원제공
책을 읽으며 저 역시 문득, 마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78쪽, 인선이 경하에게 말하죠.
“엄마의 하나뿐인 언니의 손녀딸, 지금 호주 가 있는—.”
너무도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장에, 저도 모르게 ‘혹시 호주 어디쯤일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 순간, 역사의 아픔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소설과 이어지는 자리가 호주에서 마련됩니다.
주시드니 한국문화원과 호주국립대학이 함께 준비하는 한국문학주간 '어울림', 그 특별한 만남이 9월 19일과 20일, 캔버라에서 이어지는데요.
<작별하지 않는다>의 영어 번역본을 옮긴 페이지 모리스(Paige Morris) 번역가가 북토크를 통해 작품과 번역의 여정을 들려줄 예정입니다.

또 최근 영문 출간이 확정된 <식물적 낙관>의 김금희 작가와 번역가 클레어 리처즈(Clare Richards)가 독자들과 만나 문학과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문학은 이처럼 국경을 넘어 우리를 같은 기억과 위로의 자리로 불러 모읍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끝내 외면해 온 기억을 불러냅니다.
이 책은 울부짖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그날을 되살립니다.

“말하지 않는 슬픔은 말하는 슬픔보다 오래간다.”
작가는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심스러운 애도를 보여줍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책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남은 이들의 침묵 속에서, 말하지 못했던 고통과 사랑을 느끼게 하고, 그 한 줄, 한 문장이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흔적을 남깁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만나봤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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