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린 번역가 안톤 허가 첫 장편소설 <영원을 향하여(Toward Eternity)>를 출간했습니다. 안톤 허는 정보라의 '저주 토끼', '너의 유토피아',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신경숙의 '바이올렛' 이성복의 시집 '무한화서' 등을 영어로 옮기며 한국 문학을 세계 문단에 널리 알렸습니다. 또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르는 등 성과를 거두며 번역가로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영원을 향하여>는 번역가로 활동해온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언어로 써낸 작품입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소설은 인간과 인공지능, 언어와 예술, 삶과 죽음을 아우르며 인간다움의 본질을 묻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넘어서는 시대, 문학은 다시금 우리가 누구인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번역가는 제2의 작가다'
작가의 섬세한 문체와 고유의 세계를 충실히 전달하고 다른 언어로 옮겨주며 낯선 나라의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창작자.
그동안 작가 뒤에 가려 번역가가 중심 조명된 적은 많지 않은데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이후 번역의 힘이 새삼 주목받았습니다.
문학의 국경을 허물고 언어의 경계를 넘어, 한국 문학을 세계에 전하는 이들이 비로소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의 저자 안톤 허 역시 그 한가운데 있는 이름입니다.
정보라의 '저주 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신경숙의 '바이올렛' 등 한국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을 세계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한 주역 안톤 허. 그가 이번에는 번역가가 아닌 소설가로서 그의 첫 장편소설 <영원을 향하여>를 내놓았습니다.
“번역은 내게 발판이었지만, 내 언어로 쓰고 싶었다.”
작가의 고백처럼, 번역가에서 소설가로. 언어를 건너는 자에서 언어를 창조하는 자로. 그의 변신은 문학이 지닌 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안톤 허 '영원을 향하여'
이 사건을 조사한 말리 비코 박사가 일기 형식으로 남긴 기록은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와 겹쳐집니다.
나노봇 치료로 불멸을 얻은 인간들, 사랑과 감정을 배우는 인공지능 '파닛', 그리고 파닛의 정신을 계승한 클론, '이브 D'.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묻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으로 영혼을 이어가는가?'
안톤허의 세계에서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시를 읽고 음악을 연주하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존재.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얻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있을까?'
그의 소설은 독자를 이 모순적 질문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특히 소설은 사랑을 다양한 결로 보여주는데요.
인간과 인간, 인공지능과 인간, 그리고 언어와 언어 사이의 사랑까지.
소설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마무리됩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은 '언어와 예술'입니다.
텍스트 AI가 시와 음악을 배우며, 물질적 감각을 익히고, 그 감각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매우 독특하고 신선합니다.
이야기 곳곳에서 우리는 시 한 편씩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 한 줄 한줄이 이야기 속 세계로 끌어들이며 감정과 사유를 더욱 깊게 이끕니다.
바람을 본 자가 누구인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그러나 나무들이 고개를 숙일 때면,
바람이 지나가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의 한국어판을 정보라 작가가 번역했다는 사실입니다. '저주 토끼'를 영어로 옮긴 안톤 허. 영어로 쓰여진 그의 첫 장편 <영원을 향하여>를 한국어로 옮긴 정보라.
서로의 작품을 번역하며 서로의 문학 세계를 이어주는 교차점은 언어와 문학이 어떻게 서로를 비추며 확장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안톤 허 작가는 말합니다.
“저는 언어의 비서일 뿐, 소설은 언어가 스스로 쓰는 것이다.”
이 책은 언어가 우리를 대신해 써 내려간 사랑과 기억, 그리고 영원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고백처럼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에 닿게 되는데요.
나노봇으로 대체된 몸, 끝내 죽지 않는 존재, 복제된 개체는 여전히 인간일까요? 반대로 시를 읽고, 음악을 연주하며, 사랑을 느끼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될 수 없을까요?
<영원을 향하여>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인간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새삼 마주하게 합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린 번역가 안톤 허가 번역가에서 소설가로 새로운 길을 열며 첫 장편으로 선보인 <영원을 향하여>를 함께 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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