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교육대해부] 도서관 없는 신설학교.. 혁신인가 유행인가?

Arthur Phillip High School Learning Hub – Tiered Seating

Arthur Phillip High School Learning Hub – Tiered Seating Source: Getty Images

시드니 지역에 새로 건립된 17층 규모의 한 하이스쿨에 전통적인 도서관 시설 대신 디지털 공간만이 설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보화 시대, 디지털화…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우리 아이들의 학교 공간까지 바꿔 놓고 있습니다. 교과서 대신 컴퓨터로, 책 대신 타블렛 피씨로 수업하는 것도 그리 낯선 일은 아닌데요. 최근 시드니 지역에 새로 개교한 하이스쿨에, 도서관 시설이 아예 지어지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오늘 호주 교육대해부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이수민 리포터 함께 합니다.

유화정 PD (진행자): 이수민 리포터, 해당 학교가 얼마 전에 문을 열었죠? 2억 2500만 달러를 투자해 17층 규모의 고층 건물로 지어진 걸로 알고 있어요.

이수민 Reporter (리포터): 네, 이 학교는 지난 주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처음 수업을 시작한 파라마타의 아서 필립 하이스쿨인데요. 전통적인 형식의 도서관 시설 대신, iHub 라고 불리우는 시설이 각 학년별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진행자: 아이허브라 하면, 일단 디지털 기반의 공간일 것 같은 느낌은 확 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인가요?

리포터: 네, 쉽게 말하면 디지털 리소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각 iHub는 디지털 기반의 자료들을 중심으로 일부 인쇄본 형태의 책들을 보유하고 있고요. 학생들은 사서들을 통해 각 iHub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료들에 접근이 가능합니다. 사서들은 디지털 자료와 인쇄본 도서 두 가지 형태의 학습 자료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전통적인 인쇄본 도서들을 제공하는 도서관에다가 디지털 자료 관리를 통합한 형태의 새로운 공간인 셈이네요.

리포터: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각 층마다 제공되는 일종의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도서관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진행자: 사서들의 입장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본인들의 일터가 다른 방식으로 재조정되는 거니 반발이 있을 법도 한데요.

리포터: 네, 실제로 우려의 목소리가 거듭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서들은 이러한 디지털 리소스 위주의 자료 제공이 학생들의 사고력 발달을 제한하고 교사들에게도 비효율적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학교의 학습 문화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 사서는 해당 학교에 대해 “교육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실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존 도서관 시설이 아닌 아이허브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사실 교육에서 이러한 기술 발달이 융합된 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데요. 기존에 이러한 비슷한 시도가 전혀 없었을 것 같진 않아요.

리포터: 그렇습니다. 아서 필립 하이스쿨의 사례 외에도 공교육에서 종이책을 배제하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는데요. 브리즈번에 새로 설립된 포티튜드 밸리 스테이트 컬리지에서도 종이가 없는 학습 방식을 도입했고, 빅토리아주의 한 학교에서도 사서들을 이 같은 디지털 중심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로만 교체한 전례도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번 아서 필립 스쿨의 설계를 허용한 교육부에서는 어쨌든 이런 방식의 디지털화가 교육적으로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봤으니까 허용을 했을 거 같은데요. 구체적인 교육부의 입장은 어떤가요.

리포터: 네, 자세히 말씀을 드리자면 해당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각기 다른 층을 사용하게 되는데, 층별로 설치된 iHub가 각 학년에 적합한 디지털 자료들과 도서 인쇄본을 제공하게 됩니다. 뉴사우스웨일즈 주 교육부 대변인에 따르면 이 같은 조치가 전통적인 도서관의 장점에 디지털이 주는 장점이 합쳐져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거라는 입장인데요. 여기서의 교육적 향상은 해당 학년별로 필요한 정확한 자료들을 타겟팅 해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의 맞춤형 교육 제공 가능을 의미하고 있는데요. 학년별 인지발달과 커리큘럼 맞춤식 자료를 제공함과 동시에 풍부한 디지털 자료로 통합적인 학습 콘텐츠를 함께 제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진행자: 그렇죠, 아무래도 종이책을 하나 하나 찾는 것보다는 컴퓨터 검색으로 맞춤형 자료를 받아볼 수 있으면, 훨씬 편리한 점이 많을 테니까요.

리포터: 네, 맞습니다. 대변인은 또 아서 필립 하이스쿨의 이번 시도가 기존의 도서관에서 한 단계 나아가 유동적이고 기술친화적인 학습 공간을 제공할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문제는 현재 반발하고 있는 사서들의 비판적 여론을 어떻게 통합해 앞으로 나아가느냐에 있겠어요. 사서들의 반대 입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전해 준다면요?

리포터: 네, 현재 뉴사우스웨일즈 주 사서 연합회 측에서는 이와 같은 결정이 도서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실패를 드러낸다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데요. 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피상적인 공간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이처럼 디지털 자료를 공급한다는 목적만으로 제대로 된 도서관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현실적인 반대 이유로는, 디지털과 인쇄본 자료가 섞여서 제공될 경우 사서들이 훨씬 자료를 찾기가 까다로워 지며, 맞춤형 자료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학생들의 독해력을 단정지어 버리는 한계를 부과한단 비판입니다.

진행자: 그것도 일리가 있긴 하네요. 사실 학생들 개개인별로 읽기 능력이나 독서에 대한 이해도는 다 제각각일 수 있으니까요.

리포터: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학년별로 정해진 자료 위주로 미리 선별을 해서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오히려 학생들의 상상력과 사고력 발달을 제한한다는 지적입니다.

진행자: 생각해보면 도서관 자체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도 있잖아요. 도서관에서만 맡을 수 있는 책 냄새도 있고… 교육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도서관이 학생들에게 주는 문화적인 영향도 무시 못할 부분인 것 같은데요.

리포터: 네, 도서관 자체가 주는 학습분위기, 독서 조성 분위기 같은 건 사실 디지털 공간이 대체하기 힘든 영역이죠. 또한 학교의 전반적인 독서 문화 형성에도 중요한 것도 맞고요. 또 학생들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것 외에도 본인의 숙제나 공부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교실 밖에서 만나고 토론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도서관이라는 건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사회적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진행자: 그렇죠.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요?

리포터: 네, RMIT대학교의 정보관리학 강사인 수 레이놀즈는 기존 도서관 대신 iHub를 설치한 학교의 조치가 흥미롭고 혁신적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이미 회사나 대학들이 이처럼 사서들이 디지털 자료들을 통해 정보 콘텐츠를 교사들 대신 수집하고 정리하는 방식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는 데에서 분명한 추세라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 도서관은 회사나 대학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교육적인 목적이 추가로 존재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현대 시대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방향성을 고려했을 때 이와 같은 전통적인 도서관의 붕괴는 분명히 기술적 관점에서의 혜택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기존의 도서관이 학생들에게 주던 교육적인 핵심 가치가 이와 같은 디지털 위주의 시설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지적이군요.

리포터: 네 그렇습니다. 우리도 현실에서 흔히 어린 자녀들에게 스마트폰 보여주면 뇌가 안 큰다, TV가 상상력을 저해한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분명히 활자만이 줄 수 있는 교육적인 혜택이 있다는 거죠.

진행자: 그러게 말이에요. 이러한 도서관 공간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궁금해 지네요.

리포터: 네, 그래서 일부 사서들은 이 같은 조치가 제대로 된 교육적 관점에서의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 아닌, 단순한 유행에 입각한 조치라고 비판하기도 하는데요. 전통적인 도서관과 디지털 리소스 위주의 자료 제공 공간이 주는 장단점에 대한 명확한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네, 그렇네요. 아서 필립 하이스쿨은 뉴사우스웨일즈 주 내에서 처음으로 설립되는 고층 건물 학교로,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학교 시설이기도 한데요. 과연 전통적인 도서관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 교육적인 혁신인지, 아니면 단순한 유행에 입각한 시기상조인지,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교육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이 보다 치열하게 의견을 모아서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수민 리포터,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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