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부모 세대의 부가 자녀 세대로 이전되면서 자산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호주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기 어렵다며 상속세나 토지세 도입을 포함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Key Points
- “부모의 부가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커지는 ‘부의 대물림’ 격차
- 집값 폭등에 부모 찬스가 ‘계층 사다리’로…상속세·토지세 논쟁 재점화
- ‘공정한 기회’ 사라지나…호주, 부의 대물림에 칼 빼드나
호주에서 부모 세대의 부가 자녀 세대로 이전되면서 자산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사이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전문가들은 호주가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기 어렵다며 상속세나 토지세 도입을 포함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호주가족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전달되는 경제적 지원은 최근 호주의 불평등을 키우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2018년 사이 상속을 받은 호주인의 비율은 4.8%에서 7.2%로 증가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은 사람의 비율도 같은 기간 10.5%에서 15.8%로 높아졌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돈을 언제 받느냐입니다.
주택 구입이나 교육,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기에 가족의 지원을 받을 경우 개인의 경제적 기회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속은 금액이 큰 경우가 많지만, 대개 주택 구입과 같은 중요한 결정이 이미 끝난 뒤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주가족연구소의 조디 휴즈 박사는 모든 가정이 자녀를 지원할 수 있는 동일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누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누가 그렇지 못한지를 이해하는 것이 세대와 계층 간 불평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주택 소유자의 약 30%가 집을 구입할 때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전문가 리처드 위튼은 이른바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호주 부동산 시장에서 점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지원이 다시 부의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주택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호주에서는 상속과 부의 이전에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호주는 지난 1979년 상속세를 폐지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은 상속이나 자산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세금을 부과하고 있어 호주는 상대적으로 이례적인 국가로 꼽힙니다.
자선단체 앵글리케어의 케이시 챔버스 대표는 호주의 상속세 부재와 비교적 관대한 슈퍼에뉴에이션 관련 세제 혜택 때문에 부가 계속 축적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부가 세금 부담 없이 다음 세대로 넘어갈 경우 소수 가정에 부가 집중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상속세가 이 문제에 해법이 될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호주국립대학교의 세금정책연구소 로버트 브루니그 교수는 상속세가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예상만큼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속세가 도입되면 오히려 갑작스럽게 사망한 중상위층 가정이 가장 큰 부담을 질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초고액 자산가들은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미리 다른 형태로 이전하거나 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브루니그 교수는 현재 호주의 불평등을 단순히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핵심적인 격차는 부모로부터 상당한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역시 주택입니다.
시드니에서 첫 주택을 마련한 30대 부부 미리암과 그의 파트너는 10년 넘게 주택 구입을 위해 저축해 왔습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며 임대료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등 생활비를 아껴왔습니다.
그럼에도 약 140만 호주달러에 달하는 타운하우스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두 사람은 주택 가격의 약 40%에 해당하는 금액을 파트너의 가족에게 빌렸습니다.
미리암 씨는 가족의 도움 없이는 계약금을 마련하거나 대출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브루니그 교수는 상속세보다는 부동산 자체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호주에서 전체 부의 약 40%가 자가 거주 주택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급격하게 상승한 부동산 가치에 세금이 충분히 부과되지 않은 것이 불평등 확대의 핵심 원인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토지세입니다.
상속이 발생했을 때 한 번 세금을 부과하기보다는 토지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 그 가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연방정부 차원의 전국적인 토지세 도입 요구에는 여전히 정치적인 저항이 큰 상황입니다.
결국 문제는 세금을 어디에, 얼마나 부과할 것인가 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호주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공정한 기회’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지, 그리고 부의 대물림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떻게 과세할 것인지가 호주 사회의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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