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아 PD: 모나시 대학 언론정보학과의 한길수 교수가 최근 집필한 저서 <한국의 계산적 민족주의: 21세기 민초들의 정치, 경제민주화 운동>에서는 더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민들의 지속적 노력을 보여주는 면면들을 주요 사건을 통해 분석하고 있으며, 자유, 평등, 평화, 화합과 인권 개선을 추구하기 위한 민중들의 외침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 책을 통해 현대 한국 사회의 진보적 시민들이 바라는 민족주의를 고찰해 보는 시간 마련합니다.
1부에 이어 다음 시간에 2부로 이어집니다.
다음은 한길수 교수와의 일문일답.
조은아 PD: 책 <한국의 계산적 민족주의: 21세기 민초들의 정치, 경제민주화 운동>은 한국학 중앙 연구원과 한국 교육부의 연구 지원을 받아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우선 프로젝트 배경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길수 교수: 먼저 제 연구에 관심가져 주시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년 호주대학의 학자 두 명과 미국대학의 학자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서 “세계화에 대한 로컬 에이전시와 국가의 대응”이란 주제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경제, 사회, 외교,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와 대응전략의 모습을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그 연구 결과 중의 하나로 출판된 것이 이 책입니다.
조은아 PD: 우선 책 내용을 깊이 있게 살펴보기 전에 이 책의 주요 컨셉인 ‘계산적 민족주의’ 혹은 ‘비용 효율적 민족주의’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길수 교수: 우리는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이미 ‘계산적 민족주의’나 ‘비용 효율적 민족주의’를 오래 전부터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한 가정의 일원으로, 동시에 한 국가의 일원으로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국가에 대한 의무도 있지만,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한국사회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 변화하면서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 따져보고 계산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조은아 PD: 이 책은 한국의 정치, 경제민주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6가지 주요 토픽을 선정해 현대 한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민족주의의 개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진보적 시민들이 바라는 미래 국가의 방향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데요, 책에서 선정된 6가지 주요 이벤트는 위안부 문제, 일본 보이콧 운동, 남북 통일,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 그리고 촛불집회에 반대한 태극기집회와 직장 내 괴롭힘 문화인데요, 이들 토픽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한길수 교수: 첨언할 것은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시민들이 원하는 삶엔 별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단지 보는 시각이 달라서, 접근 방법에 많은 차이를 가져오기는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큰 변화와 발전을 성취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한국의 개개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민족주의의 개념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나 자신보다는 국가가 잘 되어야 나도 국가의 일원으로서 번영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습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민족주의는 국가의 번영과 더불어 그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를 질문하고, 따져보고, 계산하는 민족주의입니다. 이것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귀기울이고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불평등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는 것이지요.
조은아 PD: 책 내용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싶은데요, 워낙 내용이 광범위해서 몇 가지 토픽은 좀 묶어봤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고요,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일본 기업이 져야 한다고 인정하자 일본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고,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까지 내렸었습니다. 이에 한국 국민들은 일본 보이콧 운동으로 맞섰다는 내용이 책에 담겼는데요,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말씀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요?
한길수 교수: 한국인은 오랜 세월동안 일본에 비하여 30년이 뒤떨어졌다는 등 열등의식에 묶여 살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는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입니다. 역사 속의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사과입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사실을 고발하기까지 50년이 걸렸는데 그 기간은 위안부로 착취당한 5년 못지않은 어려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수출규제를 보면 그렇습니다. 비즈니스하는 사람이 내가 당신한테는 물건을 안 사겠다고 하는 일은 있어도, 어디 되지도 않는 이유로 ‘나 당신한테는 물건 안 팔겠다’는 행패를 부립니까?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떠나서 전범국가이면서 큰소리치는 일본을 제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늦었지만 독일처럼 잘못을 시인하는 일본이 되길 원하고, 한국도 대담하게 사과를 요구할 시기가 벌써 지났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런 화해의 과정을 통해서 서로 협력하는 좋은 이웃나라가 되길 바라는 겁니다.
조은아 PD: 한국 국민의 일본산 제품 보이콧 운동을 보면 여전히 우리 민중들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가 잘 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교수님이 얘기한 계산적 민족주의와 과거에 보여진 종족적 민족주의가 현재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한길수 교수: 네, 정확하게 파악하셨습니다. 이 경우를 보면 젊은세대와 기성세대가 철저하게 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거시적인 측면과 미시적인 측면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일본 정부는 혼내줘야 할 대상입니다. 30년, 40년 전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본의 부당함에 맞선 겁니다. 종족적 민족주의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미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거국적인 싸움에서 이겨야, 나 개인적인 자존감, 자부심이 향상될 수 있다는 철저한 계산에 근거한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일본에 맞설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교적 측면에서 계산적 민족주의가 싹트기 힘들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은아 PD: 책에서 선정하신 주제, 남북통일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분단 이후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국민들의 통일의 열망은 한마음이었고, 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언급하셨는데요, 하지만 21세기 한국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하셨고, 이는 계산적 민족주의 혹은 비용 효율적 민족주의의 발현에 기인한다고 하셨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길수 교수: 과거에는 북한 동포를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보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이산가족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구요. 따라서 북한 동포들을 전체정치로부터 구하고, 남북한이 한 나라가 되어 번영하고 싶은 열망이 컸습니다. 우리와 같은 핏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6.25가 끝난 지 70년이 되고 세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추세에 대한 제동이 걸린 겁니다. 그래서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을 이루고 싶은데, 나 개인이나 나라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고려하면 우리가 얻는 게 뭔지에 대한 철저한 계산적 태도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요즘에는 지금 이대로도 좋고, 내가 사는 데 지장 없고, 비용 지불은 싫고, 통일이 된다면 북한,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기차 여행을 하고 싶은데 그에 대한 비용은 최소만을 지불하겠다는 경제법칙에 의한 계산을 하고 있는 거지요.
조은아 PD: 남북통일의 가능성에도 이 같은 계산적 민족주의가 적잖은 영향을 미치겠네요?
한길수 교수: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통일을 비롯해서 특히 나 개인에게 어떤 도움을 주느냐가 대한민국의 선거 결과에 반영됩니다. 호주에서도 그런 것처럼, 때로는 국민들이 너무 단기적인 이득을 기대하며 선거에 임하기도 합니다. 북한에 대하여 강경한 접근을 취하는 한국 정부가 들어섰는데, 국민들까지 첨단의 계산적 민족주의를 추구한다면, 국민들의 생각은 정부의 통일 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계산적’이라는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통일에 관해서는 과정을 좀 어렵게 그리고 지연시킬 수는 있습니다.
조은아 PD: 한국의 나이든 세대보다는 젊은 세대들이 비교적 실질적 이득을 추구하고 계산적 민족주의의 극단적 형태를 보인다고 책에서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중심 세대가 될 터인데 계산적 민족주의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면 향후 어떤 민족주의가 나타나게 될까요?
한길수 교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종족 민족주의가 약화될 것으로 학자들이 내다봤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세계화를 추구하다 보니까 득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된 거지요. 한국의 계산적 민족주의의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이미 어떤 면에서는 서양 사회 못지 않게 계산적입니다. 공동체의 득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득세하는 메마른 사회로 가는 것은 제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서양화될 것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한국의 계산적 민족주의는 한국의 정서와 역사를 반영하는 독특한 계산적 민족주의를 창출해 낼 것으로 전망합니다. 한 가지만 첨언하면 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얼마나 서로 돕고 사는 분위기를 이끄느냐에 따라서 민족주의의 성격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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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계산적 민족주의…현대 한국 사회 달라진 민족주의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