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로 배우 윤여정이 102년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습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이후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수상은 한국인의 예술적 감성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됐습니다. 2021 아카데미 시상식과 오스카의 역사, 재미있는 뒷얘기도 살펴봅니다.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Highlights
- 미나리의 K- 할머니…아카데미 유리 천장 뚫어
- 연기부문 후보에 9명이 유색인종…다양성 확대 의지
- 감독상 최초로 '아시아계 여성'… ‘화이트(So White)’ 탈피
- 남우 주연상은 84세로 역대 최고령 수상자
진행자: 세계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영화제 한국 배우 첫 수상자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은 모두가 예상했던 쾌거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아카데미 예측 전문 사이트에서 일찌감치 여우 조연 1위를 점칠 만큼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거의 모든 여우조연상을 휩쓸다시피 했죠?
유화정 PD: 윤여정 배우가 상을 못 받을 거라고 누구도 생각을 안 했을 겁니다. ‘미나리’는 모든 미국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아메리칸 이야기를 다룬 만큼 미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며 여러 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전미비평가위원회·영화기자협회· 미국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상까지 여우조연상만 총 38번을 수상했고, 미국의 권위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각국 언론, 심지어 도박 사이트에서까지 압도적인 수상 후보로 꼽혀 왔습니다. 특히 ‘아카데미의 예고편’이라 불리는 미국배우조합상에서도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여우조연상을 받았는데,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아카데미 수상에 실패한 경우는 이변이 없는 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행자: 이번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다섯 명의 후보 중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더 파더(The Father)’의 올리비아 콜맨과는 막바지까지 접전을 벌였죠?
유화정 PD: 올리비아 콜맨은 2019년 ‘더 페이버릿’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저력을 가진 배우죠. 버라이어티와 골드 더비 등 미국 유력 매체들의 예측에서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와 1~2위를 다투며 유력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후보로 거론됐었고요. ‘힐빌리의 노래’의 노장 연기자 글렌 클로스,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대중적 인지도와 연기력을 갖춘 할리우드 스타들입니다.
진행자: '힐빌리'는 미국의 백인 노동자 계층을 가리킨다고 하죠. ‘힐빌리의 노래’에서 글렌 클로스도 할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윤여정 배우와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겠어요..
유화정 PD: ‘힐빌리의 노래’에서 글렌 클로스가 가장 미국적이고 보편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윤여정 배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결집시키기 위해 애쓰는 한국의 전통적인 할머니이면서, 개성 있는 할머니 '순자'의 따스한 연기를 통해 동 서양의 문화의 벽을 넘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글렌 클로스는 공교롭게도 윤여정 배우와 같은 나이 1947년생입니다. 윤여정 배우는 수상 소감에서 마치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거장 마틴 스콜세지에 존경을 표했듯이 글렌 클로스를 콕 집어 언급했는데요. “저는 사실 경쟁을 믿지는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와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습니까? 글렌 클로스의 훌륭한 연기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요. 저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해 감동을 주었습니다.
글렌 클로스는 올해로 8번째 아카데미 도전으로 필연적으로 윤여정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되었지만 윤여정의 이름이 수상자로 불린 순간 가장 뜨겁게 환호를 보낸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Glenn Close smiles... during one of the Oscars' moments Source: NYPOST
진행자: 여우조연상 시상에는 영화 ‘미나리’의 제작자이기도 한 할리우드 명배우 브래드 피트가 직접 나서 눈길을 끌었죠?
유화정 PD: 브래드 피트는 지난해 남우조연상 수상자 자격으로 시상 무대에 오른 것인데요. 92회 아카데미에서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배우 인생 34년만에 첫 오스카를 손에 쥐었습니다. ‘미나리’의 여우 조연상 수상이 남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윤여정 배우는 “우리가 (고생하며) 영화 찍을 때 도대체 어디 계셨던 거예요” 라고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던져 시상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기생충’이 없었다면 오늘의 ‘미나리’가 있었을까 많은 분들이 하는 생각인데,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권위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의 영예를 안았지만 연기상은 못 받았던 터라, 이번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은 한국 배우들의 국제 경쟁력에서의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유화정 PD: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도, 후보에 오른 것도 물론 처음입니다. 한국 영화계는 윤여정 배우 개인의 영광을 떠나서 한국 영화 산업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반응입니다.
한국어로 대사를 전달하더라도 외국인들에게 충분히 감정적인 전달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고, 이는 한국에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면 미국에 진출해서 나름의 어떤 정서적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는 겁니다. 아마도 앞으로 할리우드의 많은 감독이 한국의 배우들을 눈여겨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MINARI_00003_RC.Alan S. Kim & Yuh-Jung Youn. Director Lee Isaac Chung Source: A24
진행자: 30년 전 미국의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 ‘미나리’는 결국 같은 이민자로서의 미국인의 한 가족 형태를 보여준 영화이기도 한데요. 대사의 대부분을 한국어로 연기를 하더라도 정착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민의 굉장한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고요…
유화정 PD: ‘미나리’는 압도되는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잔잔히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처럼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감싸주는 영화입니다. 가난한 이민자로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보듬는 가운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와 문화를 반영하면서도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더불어 가족의 언어는 팬데믹의 한 복판에서 더 가슴 깊이 다가오는 언어였습니다. 2020년을 통과하며 수많은 미국인이 가족을 잃었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사를 달리 한 이들은 가족의 얼굴을 대면하지 못한 채 외롭게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는데요. 순자는 그런 힘겨운 시기를 통과한 미국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안기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진행자: 자, 최근 몇 년 사이 인종과 성별 등 다양성을 향한 변화의 기로에 선 아카데미상이 올해 연기상 부문의 20여 명 가운데 9명의 유색인종을 후보로 올려 ‘인종 다양성’ 측면에서 최고의 성과를 냈다는 시각인데요?
유화정 PD: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는 특히 아시안 커뮤니티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후보인 '미나리'의 스티븐 연과 '사운드 오브 메탈'의 파키스탄 출신의 리즈 아메드,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 '노매드랜드'의 중국계 클로이 자오 감독 등 아시아계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많이 후보에 오른 해였습니다.
2021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아시아계와 흑인 등 ‘비백인’과 여성의 수상이 두드러지면서 백인 남성 중심주의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는데요. 특히 미국 사회의 인종 혐오 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화이트 오스카’라는 오명을 썼던 아카데미가 다양성 확대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아카데미는 지난 2015년부터 2년 연속으로 연속 남녀 주·조연상 부문 20명을 전부 백인 배우들로 채워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2021 is Oscar's most diverse year Source: AAP
진행자: 영화를 통해 다양성에 대한 포용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음을 본보기로 확인시켜 준 것이 바로 올해의 작품상, 감독상, 여우 주연상까지 3관왕을 차지한 ‘노매드랜드’인데요..
유화정 PD: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Nomadland)’는 총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려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시상식의 꽃으로 불리는 여우 주연상까지 차지했습니다. 특히 클로이 자오 감독의 이번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은 아카데미 역사상 여성 감독으로는 역대 두 번째이며,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최초의 감독상이라는 의미가 큽니다.
‘노매드랜드’는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도 세계 유수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220개가 넘는 상을 받으며 ‘최초’ ‘최대’ ‘역대’라는 수식어를 쌓아온 바 있습니다. ‘노매드랜드’는 밴을 타고 일정한 거처 없이 유목민처럼 떠도는 삶을 택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유목민(nomad)의 땅(land)’입니다.
진행자: 이번 시상식에는 84세의 앤서니 홉킨스가 역대 최고령 배우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노장을 과시했는데, 정작 시상식에는 나오지 않아 많은 아쉬움을 남겼어요. 불참 이유가 본인의 수상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요?

Chloé Zhao on Making Oscar History as the First Woman of Color to Win Best Director Source: ABC Australia
유화정 PD: 베테랑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더 파더( The Father)'에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 앤서니 역을 맡아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린 이후 6시간이나 지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행적을 밝혔는데요.
“좋은 아침이다. 나는 지금 내 고향 영국 웨일스에 있다” “84세에 이 상을 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후보로 경합한 고 채드윅 보즈먼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라고 전했습니다. 블랙 팬서(Black Panther)의 채드윅 보즈먼은 대장암 투병 끝에 지난해 향년 43세로 사망했습니다. 한편, ‘미나리’의 스티븐 연은 첫 아시아계 미국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됐습니다.
진행자: 아카데미상의 수상자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이뤄지고 있죠. 먼저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심사대상을 특정하고, 가장 많이 표를 얻는 작품과 후보를 가려내는 방식인데, 전체 회원 수가 만 명에 가깝다고요?
유화정 PD: 2019년 기준, 전체 회원은 9천500여 명이지만 투표권은 8천400여 명에게 있습니다. 이 중 한국인 회원은 임권택·박찬욱·홍상수 감독, 이병헌·하정우 배우, 이미경 CJ ENM 부회장 등 기존 회원과 지난해 ‘기생충’ 주역들을 포함해 약 4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는 이미 지난 2015년 회원 자격을 얻은 바 있습니다.
진행자: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비교해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은 대중성이 더 부각된다는 점, 또 미국에서 제작 혹은 상영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등에서 성격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죠?
유화정 PD: 칸 영화제,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등은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우수 영화를 후보로 올려 그 작품성과 창의성, 예술성, 가치와 철학 그리고 시대를 조명하는 작품인지를 평가하는데 반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에서 제작되거나 미국 내에서 일정 기간 이상 상영된 영화만을 대상으로 시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권위와 명성이 낮다고 말할 수 없는 세계적인 영화 축제인 것이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이고, 여기에서 인정받은 영화와 배우들은 세계 정상을 의미합니다. 아카데미상의 후보에 오르고 수상한다는 것은 세계 최고라는 명성과 권위를 거머쥠과 동시에 세계 각국 극장가로 수출, 배급되는 엄청난 효과가 보장되는 것이죠.
진행자: 영화인들이라면 누구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을 손에 쥐고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꿈꾸리라 봅니다. 아카데미상의 또 다른 이름 오스카는 수상자들에게 주어지는 황금빛의 트로피에 ‘오스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죠?
유화정 PD: 아카데미가정싱 명칭이지만 보통명사에 가가운 느낌이 있어 미국에서는 흔히 오스카 (Oscar)로 부르고 있습니다. 오스카 트로피는 남성이 중세 기사처럼 칼을 앞에 세우고 있는 황금 도금의 나상 모형으로 받침대는 배우·감독·프로듀서·기술 스태프·작가를 상징하는 5개의 바큇살로 구성된 영화 필름의 릴 모양을 하고 있고요. 34cm 높이에 4kg 정도의 무게로 의외로 작습니다. 이 트로피를 오스카라고 부르게 된 데는 그 모습이 자신의 “오스카 삼촌을 닮았다”라고 했던 아카데미 관계자의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진행자: 영화제의 역사가 90년을 넘어서니 화제의 기록도 많습니다. 끝으로 기억에 남을 사건 사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유화정 PD: 197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대부’의 말론 브랜도가 수상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영화 ‘대부’에서 뉴욕 마피아 대부 돈 콜레오네를 연기하며 메소드 연기를 펴친 말론 브랜도는 영화에서 묘사된 인디언의 모습이 부당하다며 수상을 거부한 것인데요. 이 일화는 오스카 역사상 다시없을 반란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제 72회 시상식이 열렸던 2000년에는 시상식을 일주일 남겨두고 다급하게 트로피를 다시 만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오스카 트로피를 몽땅 도난당한 것인데요. 도난당한 트로피들은 시상식 며칠 전 LA 한인 타운 쓰레기통에서 발견됐습니다.
2017년에는 작품상 수상작이 잘못 발표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이미 시상을 끝낸 여우주연상 봉투를 건네 받아 ‘라라랜드’로 발표했지만 실제 수상작은 ‘문라이트’였습니다. 10분 동안 대혼란이 벌어진 후 ‘라라랜드’ 팀은 ‘문라이트’ 팀을 응원하며 무대에서 내려가며 마무리됐습니다. 오스카 시상식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자: 네. 오늘 컬처 IN에서는 또 한 번의 아카데미 쾌거를 이뤄낸 2021 아카데미 시상식과 오스카의 역사 이모저모 살펴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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