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책갈피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유년의 기억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고 박완서 작가의 대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웅진지식하우스

고 박완서 작가가 61세에 펴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유년의 기억과 시대의 격변을 한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낸 자전적 성장소설이자, 한국 현대사의 증언문학입니다.


작가 박완서는 1970년, 마흔의 나이에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40여 년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해 왔습니다. 1992년, 61세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을 거친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아낸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내면과 격동의 시대를 함께 비추며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이 작품은 2009년, 미국 콜롬비아대학출판부에서 <Who Ate Up All the Shinga?: An Autobiographical Novel>이라는 제목으로 영어 번역·출간되었으며, 후속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이어지는 연작 자전소설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 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6.25가 없었어도 내가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전쟁이 없었으면 선생님이 되었을 수도 있다. 힘든 시기를 겪고, 남다른 경험을 하면서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것을 글로 쓰리라.”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소설로 그린 자화상 유년의 기억, 한국 문학의 거목이라 불리는 고 박완서 작가의 대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만나봅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황해도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같은 유년기부터 1950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의 스무 살까지 작가 자신의 기억과 상상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담담하면서도 치열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연작 자전소설의 시작점으로 후속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이어지며 한 사람의 삶과 한 시대의 풍경을 깊이 있게 증언합니다.

소설의 초반 배경은 싱아가 지천으로 자라는 산골 마을 ‘박적골’.
그곳에는 독불장군으로 소문났어도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읜 손녀딸에게만은 유독 자애로운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밭과 들판 푸른 자연과 각별한 사랑 속에서 따뜻한 유년기를 보내던 주인공 ‘나’는 일곱 살 무렵, 엄마의 강한 교육열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오게 되는데요.

“계집애 공부시켜 뭐 하냐”는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서울로 데려온 엄마의 단호함은 책 전반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삶은 결핍 그 자체였습니다. 산동네 문밖 단칸방,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엄마. 그리고 어떻게든 자식들을 공부시키려는 그 끈질긴 의지.

‘나’는 서울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곧잘 했고, 결국 서울대 국문과에 진학하게 되죠. 하지만 그 여정 속엔 숱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창씨개명, 오빠의 이념 활동, 6.25 전쟁.
휘몰아치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나’는 세상을 객관적이고 당돌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만의 언어로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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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te Up All the Shinga?' / Columbia University Press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이 구절.
싱아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자연의 풍요, 유년의 기억,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어떤 것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이야기 속 ‘나’는 세상과 가족을 냉정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자신은 약하므로 동네 애들과 싸우면 꼬집고 할퀴고,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오빠는 한때 돼지 잡는 걸 본 이후 고기를 입에 대지 못할 만큼 예민하고 섬세했지만, 창씨개명은 단호히 거부할 정도로 자기 소신을 지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해방 이후, 일본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게 되고 학생들은 조선말과 글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혼란의 시대, 개인의 성장과 시대의 변화는 나란히 겹쳐지며 하나의 서사로 이어집니다.

책의 말미, 6.25 전쟁이 터지고 다리에 부상을 입은 오빠 때문에 피난도 가지 못한 가족은 서울 산동네 현저동의 빈집에 숨어 지냅니다. 그 텅 빈 서울을 내려다보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이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 글로 남기리라.”

그리고 그 다짐은 훗날 박완서라는 이름으로 늦깎이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씨앗이 됩니다. 1970년 <나목>으로 등단한 박완서는 이후 40년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문단에 수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작품은 61세에 발표한 대표작으로 산문과 소설의 경계를 허문 한국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이 책을 “기억에 기대어, 생각나는 대로 쓴 소설”이라고 했죠.
하지만 그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상처와 성장, 그리고 잊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어집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글이 되는 순간, 다시 살아납니다.
그 많던 싱아처럼요.

오디오 책갈피.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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