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가는 길>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군인, 빈센트 힐리의 어머니 텔마 힐리 여사가 아들의 마지막 길을 찾아, 10년 만에 브리즈번에서 부산까지 약 15,000킬로미터를 오가며 걸었던 애끓는 여정을 담은 책입니다.
손녀 루이스 에반스가 외할머니의 일기를 바탕으로 펴낸 이 작품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넘어 국경과 세대를 잇는 감동적인 우정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책은 2015년 호주에서 <Passage to Busan>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됐으며, 주시드니한국문화원, 호주 공영 SBS·ABC 등 주요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한국에서도 <부산으로 가는 길>로 번역 출간돼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한국과 호주를 잇는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SBS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 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 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오늘 오디오 책갈피는 6.25 한국전쟁 75주년을 맞아 특별한 책을 함께 펼쳐봅니다.
<부산으로 가는 길 Passage to Busan>
이 책은 6.25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군인 빈센트 힐리의 어머니 텔마 힐리 여사가 아들의 죽음 이후 10년만에
아들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 브리즈번에서 부산까지 무려 15,000 킬로미터를 오가며 걸었던 애끓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빈센트 힐리는 1950년 영연방 27여단 산하 호주 왕립 제3대대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그리고 1951년 3월 강원도 원주 매화산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습니다.
당시 매서운 한파로 고지에 투입된 유엔군 병사들은 필수적인 기관총 보급조차 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고 부상자도 속출했습니다. 빈센트 힐리 병장은 부상당한 전우들을 들것에 실어 언덕 아래로 나르던 중 401고지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1951년 3월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문산리에서 중공군 공격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사랑하는 엄마에게,
며칠 전 한국에는 많은 눈이 내렸어요. 지금 여긴 정말 몹시 추워요. 이곳보다 더 추운 곳은 아마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퀸즐랜드 주 브리즈번 샌드게이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빈센트 힐리. 4남 6녀의 맏이였던 그는 큰 키와 잘생긴 외모로 호주 육군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던 집안의 자랑이었습니다. 도박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했고, 동생들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죠.
1951년 청천벽력 같은 맏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어머니 텔마 힐리. 그녀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죽기 전까지 꼭 아들의 무덤을 찾겠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가난은 높고도 단단한 벽이었습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 대신 텔마는 아홉 자녀를 홀로 키워야 했습니다.파인애플 통조림 공장에서의 10년. 억척같이 일하며 한국으로 가는 뱃삯을 모았습니다.
어머니는 강했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스러져 간 맏아들의 자취를 찾아, 여객선 삼등칸에 몸을 싣고 브리즈번 항을 출발해 일본을 거쳐 15,000 킬로미터 장장 2주간의 긴 항해 끝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 유엔군 묘역에 잠든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요, 소지품도 아들의 그 어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텔마 힐리 여사는 6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는 아들과 영혼의 재회를 이뤘다'며
아들의 묘역에서 가져온 흙 한 줌과 작은 돌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 흙과 돌은 힐리 여사가 세상을 떠날 때 함께 묻혔습니다.
이 이야기는 텔마 힐리 여사의 외손녀인 호주 저널리스트 루이스 에반스 씨가 할머니의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루이스 씨는 할머니의 여정을 따라 2015년 <Passage to Busan>을 펴냈고 이 책은 한국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Louise Evans: Author of ‘Passage to Busan’ Source: SBS / SBS Korean Program
텔마 힐리 여사의 사연을 우연히 신문에서 접한 김창근 여사는 아들의 무덤조차 찾지 못한 채 10년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힐리 여사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한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친애하는 힐리 여사께,
나는 당신의 아들과 같은 젊은이들의 희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 늘 기도합니다.
당신이 빈센트의 묘에 두고 간 묵주는 여전히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어요.
아들의 생일과 전사일을 알려주세요.
엄마인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의 묘에 꽃을 둘게요.
김창근 여사는 실제로 어머니인 힐리 여사를 대신해 빈센트의 기일이 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 평생 무덤에 꽃을 놓았습니다.
전쟁의 아픔이 맺어준 두 가족의 인연은 국경과 세대를 넘어 한국과 호주를 잇는 우정의 고리로 빛나고 있습니다.
<부산으로 가는 길>.
여러분의 마음 한 켠,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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