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책갈피: ‘연탄 시인’ 안도현, K-Poet 시리즈로 만나다

안도현 시인

K-Poet 시리즈 '안도현 시선'

K-포엣 시리즈 ‘안도현 시선’은 시인의 대표작 20편을 한글과 영문 번역으로 담은 시집으로, 소외된 것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타인을 위한 고요한 헌신을 묵직한 언어로 그려냅니다.


한국 근현대 시단을 수놓은 시인들의 대표작을 영문 번역과 함께 담은 ‘K-Poet’ 시리즈. 그 두 번째 권인 <안도현 시선>에는 시인이 직접 고른 대표작 2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연탄 시인’으로도 불리는 안도현은 연탄과 소외된 것들의 비유를 통해, 타인을 위한 조용한 헌신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풀어냅니다.

한글과 영문이 나란히 실린 이 시집의 번역은,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해 35년 넘게 한국 문학을 영어권에 소개해온 번역가이자 영문학자인 안선재 교수가 맡아 세계 문학의 언어로 시의 울림을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오늘 오디오 책갈피는 따뜻한 온기를 지닌 ‘연탄 시인’ 안도현의 시 한 줄 마음 한 켠에 놓아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너에게 묻는다'

이 문장,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오늘 오디오 책갈피는 따뜻한 온기를 지닌 연탄 시인 안도현의 시어들을 마음 한 켠에 놓아 봅니다.

단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시 '너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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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과 ‘너’라는 상징을 통해 삶과 사랑,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을까요?
시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소외된 자리, 낮은 곳, 따뜻한 마음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에는 연탄이 자주 등장합니다.
불이 옮겨 붙으면 하염없이 자신을 태워 따뜻함을 건네는 존재.
산산이 부서진 뒤에도 미끄러운 겨울 길에 뿌려져 누군가의 걸음을 지켜주는 존재.
바로 그 삶을 노래한 시 ‘연탄 한 장’입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중략)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연탄 한 장'

이 시는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낭송 장면으로 소개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다시금 깊은 울림을 전하기도 했지요.
2025-06-07_16-52-06 안도현.png
이번엔 시인의 시선이 한 마리 꽃게에게 닿습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중략)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스며드는 것'

간장게장 그릇 속,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이야기.
시인의 시선은 먹을거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꽃게를 맛있게 먹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을 덮치는 간장의 무게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새끼를 감싸 안는 어미 꽃게의 마음을 향합니다.

 “얘들아, 저녁이야. 이제 불 끄고 잘 시간이란다”
껍질 속 알을 끌어안은 어미의 마지막 애정, 그 따뜻한 장면을 시인은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엔 이 시를 읽고 간장게장을 더는 먹지 못하겠노라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안도현 시인은 언제나 작고 낮은 것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시선은, 우리들의 마음 방향을 조용히 바꾸어 놓지요.

시인은 말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보다, 시를 열심히 읽는 분들이 더 시인에 가깝다”고.

오늘 시를 읽는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연탄 한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디오 책갈피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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