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책갈피: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I Went to See My Father by Shin Kyung-Sook

I Went to See My Father by Shin Kyung-Sook

'엄마를 부탁해'로 세계 독자의 마음을 울린 신경숙 작가가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다가섭니다. 딸의 시선으로 평생 그늘에 가려져 있던 아버지의 삶과 사랑을 차분하게 비춘 작품. 한 가족을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아버지들의 얼굴을 오래 생각하게 합니다.


SBS 오디오 책갈피. 한국어와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한 아버지의 삶을 딸의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이 허구가 정교하게 엮인 반자전적인 요소가 포함된 소설로2023년 미국에서 <I Went To See My Father>로 번역 출간 됐습니다.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문학 최초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신경숙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품어온 고독과 침묵, 그리고 그 너머의 사랑을 섬세한 문장으로 펼쳐보입니다.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우리는…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고 있을까요.
아버지, 아빠라고 불렀던 그 이름 뒤에 숨어 있던 한 존재의 삶과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있었을까요.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엄마를 부탁해>로 한국문학 최초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던 신경숙 작가가 이번엔 ‘아버지’라는 존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 작품,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만나봅니다.

2021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그동안 한국 소설에서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던 '아버지'라는 존재의 내면을 깊이 있게 긴 호흡으로 응시합니다.

엄마의 부재로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족 누구도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희생과 고독, 그리고 그 시대가 남긴 상처들을 조용히 되짚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한 사람의 생에 남기는 흔적, 그리고 세월 속에서 변해가는 가족의 관계가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집니다.

소설은 어느 날, 어머니가 서울의 병원에 입원하면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나, 여섯 남매 중 넷째인 딸 헌은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고향 J시로 무려 5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가족들은 늘 엄마에게만 자연스럽게 시선을 두고 살았습니다. 늘 조용하고 큰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버지는 언제나 괜찮은 사람으로 치부되며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 드물었죠.
오랜만에 마주한 아버지는 예전보다 한층 작아지고, 말수가 부쩍 줄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 앞에서 헌의 마음엔 뒤늦은 후회와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부모와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이죠. 특히 고국을 떠나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사는 이민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작품 속 아버지의 인생은 한 개인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초상입니다.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열두 살에 해방을 맞이한 아버지. 장손이 군대에 끌려가지 않도록 집안 어른들이 그의 검지 손가락을 잘라야 했던 참혹한 선택..

한국 전쟁 후 돈을 벌기 위해 올라간 서울. 그곳에서 마주한 4·19 혁명. 자식 여섯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평생을 품어온 소 값이 폭락하자 그 소를 끌고 나갔던 80년대 소몰이 시위까지.

아버지가 지나온 시간은 한국 현대사의 굽이굽이를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그 세월의 흔적이 딸 헌의 시선으로 조용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밤마다 반복되는 몽유병.. 꿈속에서 여전히 과거의 자신이 되어 떠도는 아버지. 헌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연민을 느낍니다.

헌은 아버지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그동안 몰랐던 것들, 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과 하나씩 마주하게 됩니다. 6남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각기 달랐지만 그 사랑만큼은 누구에게나 같았다는 사실도.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아둡니다. 어느 밤, 잠들어 있던 아버지가 헌을 불러 말합니다.

“내 말 좀 받아 적어라.”
아버지는 삶의 마지막 ‘정리’를 시작합니다.

첫째에게는 외투와 오랜 편지가 든 궤짝
둘째에게는 북과 전축
셋째에겐 오래된 시계와 술 한 병
넷째 헌에겐 헛간에 숨겨둔 3년 된 새 자전거
다섯째에게 선글라스
막내에게는 우사를, 아내에게는 통장을 남깁니다.
이 소박한 유품들은 아버지의 삶 전체가 고스란히 스며있는 보물입니다.

신경숙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아버지를 쓰기까지의 마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격변의 시대에 겨우 목숨만 살아남아
그토록 많은 일을 해내고도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하는
이 말수 적은 익명의 아버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먼지 한톨로 사라질 이 익명의 아버지에게
가장 가까이 가서 이제라도 그가 혼잣말로 웅얼거리는 소리까지
죄다 알아듣고 싶었습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
한 시대를 온몸으로 버텨낸 우리 아버지들이 남기는 가장 담백한 고백입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 신경숙 작가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한켠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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