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IN: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붉은 악마"...세계적 문화 코드 부상

South Korea defeating Spain at 2002 World Cup

South Korea defeating Spain at 2002 World Cup Source: Getty / Getty Image

월드컵 4강 신화와 W(월드컵) 세대라는 신인류의 탄생을 가져온 '붉은 악마'는 단순한 응원 집단을 뛰어 넘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화 키워드가 됐다.


Key Points
  • 재외동포 및 국민통합 이룬 4강의 신화… 2002 FIFA 월드컵
  • 온 국민 붉은 물결 연출…'붉은 악마' 세계적인 문화 코드로
  • W(월드컵) 세대의 틀을 깬 태극기 사랑…온몸 두르고 환호
  • 2002 한·일 월드컵이 남긴 키워드…"꿈★은 이루어진다"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이 마침내 개막했습니다. 초록 잔디를 가르는 공 하나에 전 세계인이 울고 웃는  지구촌 축제,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인 응원전은 경기 못지않게 치열합니다.

한국에는 그야말로 유명한 응원 구호가 있죠. 저희 SBS 한국어 프로그램 월드컵 특집 보도의 시그널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

호주에도 이런 응원구호가 있습니다. 한쪽이 "Aussie Aussie Aussie"를 외치면 다른 한쪽이 "Oi Oi Oi"를 외칩니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경기가 전략·전술과 체력의 싸움이라면, 응원전은 아이디어 싸움에 또 단결력이 중요하죠. 결전의 90분 동안 축구팬들의 심장도 함께 뜁니다.

전 세계 한인 동포를 포함 한국인들의 통합을 이뤄낸 지난 2002 한·월드컵 4강의 신화, 컬처 IN에서 재조명해 봅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주양중 PD(이하 진행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태극전사'는 12명입니다. 그라운드의 베스트 11과 더불어 한 명의 선수가 더 있죠. 바로 '붉은 악마'입니다. 붉은 악마 시작은 2002 월드컵 그 전부터 시작됐다고 해요?

유화정 PD: 우리가 '축구'하면 떠올리는 3대 아이콘, 태극전사· 태극기· 그리고 붉은 악마를 꼽죠. '붉은 악마'는 90년대 말 당시 크게 유행했던 인터넷 통신의 축구 관련 동호회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아시아 지역예선이 한창이었는데, 한국내에서도 대표팀 응원의 조직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정식 명칭이 공모되면서 1997년 8월 '붉은 악마'라는 이름이 탄생된 겁니다.

이후 붉은 악마는 1983년,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멕시코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 4강 신화를 작성할 당시 붉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을 '붉은 악마'라고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Son Heung Min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캡틴 손흥민; 카타르 월드컵은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손흥민의 세 번째 월드컵이다. Source: Getty / Getty Images
진행자: 2002년 FIFA 월드컵 (한·일 월드컵)은 전 국민의 '붉은 악마'화를 이끌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는데, 월드컵 기간 동안 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한국에서 벌이지고 있는 여러가지 특이한 현상에 크게 주목했잖습니까?

유화정 PD: 월드컵 본선 출전 6회 만에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4강 진입에 성공한 한국팀의 선전도 경이로운 사실이었지만, 그것보다 세계를 놀라게 한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한국인들의 통합된 모습이었습니다.

월드컵 기간 내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파도처럼 일렁이는 붉은 물결은 전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켰는데요.

아시다시피 2002 FIFA 월드컵은 21세기에 열린 첫 번째 월드컵이자 아시아에서 열린 첫 월드컵이었습니다. 월드컵 사상 첫 양국 공동개최 대회였죠.

당시 조셉 블래터 FIFA 회장은 "공동 개최의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낸 성공적인 대회였다."라고 극찬했는데요. 이 발언이 입증하듯 대회 초반 한국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던 외국의 언론들은 일제히 새로운 한국의 모습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그야말로 우리 민족성에 속에 내재돼 있던 역동성이 분출된 빅뱅이었습니다. 월드컵 열풍은 수많은 '현상'을 이곳저곳에 남겨놓았고, 이들은 한·일 월드컵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굳어졌는데, 구체적으로 짚어보죠.

유화정 PD: 한·일 월드컵이 한반도에 남긴 사회·문화적 족적은 깊고도 넓었습니다. 그 영향은 메가톤급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2002 월드컵이 남긴 대표적인 키워드는바로 "꿈★은 이루어진다"입니다. 준결승전인 독일전에 '붉은 악마'가 내걸었던 구호로 여기서 ★은 월드컵 우승을 의미하는데요. 우승국은 유니폼의 국가 마크 아래 ★을 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키워드로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입니다. 이 응원 구호는 월드컵 기간 내내 국민들의 공식 인사말로 굳어졌는데요. 거리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한민국"을 외쳤고, 마침내 국제적인 유행어로까지 번졌습니다.

진행자: 그렇죠. 당시 한국 대 터키전 3·4위 전을 생중계한 미국의 스페인어 방송 유니비전의 아나운서는 한국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대~한민국"을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국호'를 응원구호로 외쳤는가 하면 '태극기'는 응원 도구로 전국민이 그야말로 전국이 태극기로 뒤덮였잖습니까?

유화정 PD: 월드컵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응원을 위한 도구들도 다양하게 선을 보였습는데요.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태극기'였습니다.

3·1절이나 현충일 등 국경일 때나 장롱 밖으로 나올 법한 태극기들이 거리로 거리로 흘러나왔죠. 깃대에 달고 흔드는 것은 기본이고 망토처럼 어깨에 두르거나 두건, 심지어 치마처럼 허리춤에 묶는 등 거침없이 사용되면서 태극기가 갖는 금기와 권위주의가 급격히 해체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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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Brazil World Cup Credit: Getty image
진행자: 예전 같으면 국기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졌을 일인데, 대한민국 국호를 응원 구호로 외치는가 하면, 신성의 대상이던 태극기를 응원 도구로 탈바꿈시킨 이들이 당시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젊은 층, 이른바 'W' 세대(월드컵 세대)였어요.

유화정 PD: W세대들은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재발견해 국호는 응원 구호로 태극기와 붉은색은 패션 소도구로 삼는 발랄함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는 기성세대들의 금기를 일시에 깨는 놀라운 발상이자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에너지의 분출이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발적이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자발성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유지된 질서와 청소 같은 뒷정리에서도 발견됐는데, 그 중심에는 W세대들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과도한 승부욕에서 벗어나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여유와 유연성, 그리고 창의성을 발휘한 W세대의 이러 모습을 두고 훌리건들의 난동에 익숙해 있던 외국의 축구팬들과 외신들은 앞 다투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2002 월드컵 기간 동안 길거리 응원에 나선 한국 국민 수가 연인원 약 2천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당시 560만 해외 동포들에게도 너무도 가슴 벅찬 잔치였잖습니까, 연일 이어지는 승전보에 호주 동포들도 열광의 도가니가 됐었는데요.

유화정 PD: 2002년 당시만 해도 호주의 한인촌 하면 캠시였죠. 2002 월드컵이 열렸을 때 시드니 캠시에서 저희 SBS 한국어 프로그램 주관으로 캠시 시계탑 광장에서 단체 응원전이 펼쳐지기도 했음을 많은 호주 한인동포 1세대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전 세계에 분포돼 있는 이민 1세대들은 조국의 자랑스러운 변화에 눈물을 흘렸고, 민족적 정체성을 모르던 2·3세대들도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세계 곳곳에서 거리 응원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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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AFC 아시안컵 결승전 대한민국 대 호주 경기; 손흥민이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린 뒤 '붉은 악마'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Source: AAP
진행자: 정말 기억이 새롭습니다. 벌써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후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시드니 붉은 악마의 단체 응원은 호주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잖습니까?

유화정 PD: 호주 한인 동포로 결성된 붉은 악마의 존재는 특히 시드니 아이콘인 달링 하버 등에서 단체 응원이 펼쳐지면서 호주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6 독일 월드컵은 붉은 악마의 단체 응원에 한 획을 긋는 계기였는데요. 태극전사의 첫 경기였던 토고전의 단체 응원전은 시드니 엔터테인먼트 센터(현 ICC 시드니)에서 1만여 명의 한인들이 운집한 가운데 K-Pop 축제와 함께 펼쳐졌습니다. 당시 이 행사는 개인기업인 소피아스포렌이 외부 후원을 일절 받지 않고 행사비용 20만여 달러 전액을 부담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어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역시 달링 하버 등에서 붉은 악마의 단체 응원전이 펼쳐졌고요. 이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시드니의 한인 밀집지역인 도심과 스트라스필드, 이스트우드의 클럽이나 식당 등에서 대형 TV 스크린으로 호주 공영 SBS의 생중계를 지켜보며 대한민국을 힘차게 외쳤던 기억들이 새로우실 겁니다.

진행자: 호주의 공식 월드컵 중계사인 저희 공영 SBS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2022 카타르 월드컵 전 경기를 TV와 Radio로 호주 전역에 독점 생중계합니다. 많은 시청과 응원에 힘입어 한국과 호주 모두 좋은 결과를 기대해봅니다. 계속해서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대해 짚어보죠. 이번 한국 대표팀의 응원 슬로건 '더 뜨겁게, the Reds'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됐다고 하던데요?

유화정 PD: 대한민국의 카타르 월드컵 응원 슬로건 ‘더 뜨겁게, the Reds’는 대한축구협회와 ‘붉은 악마’가 공동으로 지난 8월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SNS 공모전을 통해 선정됐습니다.

SNS를 통해 진행한 공모에는 총 4만 2천여 개의 문구가 접수됐는데, 이는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의 응모작 3천6백여 개보다 무려 12배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축구팬들의 높은 기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고요.

그동안의 월드컵 응원 슬로건들을 보면 Be the Reds (2002), Reds go together(2006), 승리의 함성, 하나된 한국(2010), 즐겨라 대한민국(2014), 지난 러시아 월드컵 때는 We, the Reds가 채택돼 응원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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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 한국 대표팀 공식 응원 슬로건 : “더 뜨겁게 the Reds” Credit: KFA
진행자: 2022 카타르 월드컵 응원 슬로건은 '더 뜨겁게, the Reds'인데 여성 축구팬의 아이디어였다고요?

유화정 PD: 네. 붉은 유니폼의 태극전사들이 중동의 뜨거운 사막보다 더 불타오르는 투혼을 그라운드에서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잘 표현됐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는데요.

당선작을 제출한 여성 축구팬 임수정 씨에게는 카타르 월드컵 한국대표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우루과이전을 현장에서 관전할 수 있는 항공권과 숙박, 티켓이 제공됐습니다.

진행자: 고국에서는 최근 이태원 참사 영향으로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아쉽게도 '거리 응원'이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초록 잔디를 가르는 공 하나에 전 세계인이 울고 웃는 지구촌 축제, 모두 한 마음으로 뜨겁게 맞이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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