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신조어는 시대 감수성과 문화 흐름을 반영하는 언어 코드
- ‘트럼프 TACO’처럼 정치적 비판과 사회 맥락 담은 표현도 등장
- 1920년대부터 등장한 신조어, 사회적 공감대와 지속적 사용 여부가 생존 좌우
최근 "TACO"란 단어가 외신의 화제에 올랐습니다. 처음 들으면 타코? 멕시코 음식 아니야? 생각하실 텐데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TACO는 Trump Always Chickens Out, 즉,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말도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컬처 IN에서는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서 신조어들이 왜 생기고, 어떤 시대 정서를 담고 있는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문화로 세계를 여는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합니다.
홍태경 PD: 요즘 SNS나 뉴스 댓글을 보다 보면 처음 듣는 단어들이 꽤 많은데요. 이른바 신조어죠.
유화정 PD: 맞아요. 요즘은 정말 '말을 알아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아는 시대'라고 할 만큼 이런 신조어 단어들 속엔 기발한 재치와 유머, 때론 분노나 풍자도 들어 있어 놀랄 때가 많습니다.
홍태경 PD: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TACO 밈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지며 화제가 되고 있는데, 먼저 이 신조어 TACO,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유화정 PD: 지난달 2일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암스트롱이 처음 쓴 표현인데요.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강경한 관세 정책을 예고하다가도 시장 반응이 나빠지면 금방 철회한다는 점을 비꼰 겁니다. 즉, 강하게 말하지만 결국 물러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Trump Always Chickens Out', 줄여서 TACO라는 말이 나온 거죠.
홍태경 PD: 말장난 같지만 말장난이 아닌 뼈있는 신조어이네요.
유화정 PD: 실제로 트럼프 지난 1월 취임 이후 관세 협상에서 수십차례 말을 바꾸며 유예와 철회, 번복을 반복하고 있는데요.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2기 취임 후 새로 부과하거나 바꾼 관세 정책만 50회 이상입니다. 이러한 학습 효과로 이제는 더 이상 트럼프의 엄포성 발언을 믿지 않는다는 분위기에서 ‘타코’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홍태경 PD: 트럼프도 이 표현을 직접 들었을 때 반응을 보였다고요?
유화정 PD: 보도에 따르면, 한 기자가 백악관에서 TACO에 대해 묻자 트럼프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고, 기자가 “항상 관세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자 “불쾌한 질문이다”며 해당 기자를 몇 차례나 질책하면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홍태경 PD: 트럼프가 직접 TACO에 대해 반응을 보인 직후,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반향이 나온 거군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트럼프를 조롱하는 인공지능(AI) 생성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닭 복장을 한 트럼프, 멕시코 전통 음식인 타코 속에 있는 트럼프, 혹은 타코와 닭이 합쳐진 '닭 타코 트럼프' 이미지까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달구었습니다.
예전 영상도 다시 회자됐는데요. 2004년 코미디 프로그램 SNL에서 닭 복장을 한 출연진과 함께 춤추던 장면, 2016년 멕시코 명절을 기념해 뉴욕 트럼프타워 식당에서 타코볼을 들고 웃고 있는 사진까지 다시 소환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을 풍자한 일명 타코(TACO) 티셔츠. 아마존 홈페이지
유화정 PD: 닭의 습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닭은 굉장히 경계심이 많고, 조금만 위협을 받아도 금세 도망치는 동물로 알려져 있죠. 닭의 이런 행동에서 유래해 겁에 질려 꽁무니를 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chicken이라고 부르게 된 건데요. 실제로 15세기부터 hen(암탉)이 소심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였고, 셰익스피어 작품에도 닭을 겁쟁이에 비유한 표현이 나옵니다.
홍태경 PD: 그럼 미국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chicken game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건가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1950년대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 게임이죠. 두 대의 차가 서로를 향해 달리다가 먼저 피하는 쪽이 chicken, 즉 겁쟁이가 되는 게임인데요. 이후엔 정치·외교에서도 극한 대치를 의미하는 말로 확장됐습니다.
홍태경 PD: 그렇군요. 한편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TACO에 맞서 다른 의미를 붙이기도 했다죠?
유화정 PD: 네, TACO를 Trump Always Crushes Opposition 즉, '트럼프는 언제나 반대세력을 짓밟는다'는 정반대 뜻의 약자로 만들어 트럼프를 옹호하고 나섰습니다.그러나 TACO의 조롱성 이미지가 워낙 크게 확산되며 효과는 미미한 상황입니다.
홍태경 PD: 사실 TACO 같은 신조어는 비단 미국 정치권만의 얘기가 아니죠. 우리 주변에서도 정말 자주 등장하잖아요. 특히 짧고 임팩트 있는 단어일수록 더 빨리 퍼지는 것 같아요.
유화정 PD: 그렇죠. 요즘은 SNS를 하다가, 내가 모르는 단어인데 다들 아는 분위기? 이런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신조어가 많이 생기고 빠르게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와 콘텐츠가 너무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시대이기 때문인데요.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전하고, 공감을 끌어내야 하다 보니 짧고 강렬한 단어가 필요한 거죠.
게다가 밈(meme) 문화, 그리고 AI 생성 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이제는 누구나 쉽게 단어 하나로 유머, 풍자,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홍태경 PD: 그리고 이게 단순한 유행어라기보단, 어떤 때는 그 안에 꽤 진지한 사회 비판도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국 사회의 높은 경쟁, 취업난, 불평등 등을 비판적으로 비추는 ‘헬조선’ 같은 신조어도 있죠?.
유화정 PD: 지옥같이 고통스런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신조어 '헬조선'은 2010년에 처음 등장한 단어입니다. 젊은 층의 공감을 얻으며 널리 확산되면서 헬조선을 떠난다는 '탈조선'이란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폭발적인 유행을 거쳐 2014년을 기점으로 2017년부터는 사용 빈도가 차츰 줄면서 줄어들어 이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고요. 이후 등장한 신조어로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이들을 뜻하는 단어 '금수저'가 있죠.
홍태경 PD: '금수저' 역시 시대의 불평등을 농축한 말이죠. 결국 신조어는 그 사회가 처한 상황이나 분위기, 동 시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집단 감정의 지도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유화정 PD: 정확한 표현입니다. 신조어는 단순히 웃고 넘길 말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징후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요즘처럼 공식적인 언어보다 비공식적인 말이 더 힘을 가질 때 신조어는 일종의 저항, 혹은 새로운 표현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신조어를 잘 살펴보면 사람들이 무엇에 웃고,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공감하는지를 알 수 있죠. 그걸 읽는게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 되는 거고요.
홍태경 PD: 네 컬처인은 그 창을 소개하는 안내 역할이고요. 그런데 신조어가 너무 많아지고 너무 빠르게 바뀌다 보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따라가야 하나? 이런 고민이 생기기도 해요.
유화정 PD: 저도 이번 주제를 다루면서 처음 알게 된 신조어로 '갑통알'이란 말이 있어요. 단순히 갑통알이라고 들으면 웃음부터 나오지만 사실은 청년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한 신조어입니다.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해야겠다'의 줄임말이더라고요.
실제로 기성세대와 MZ세대 사이의 언어 단절을 이야기할 때 신조어가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문화 이해의 간극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기성세대는 신조어가 보여주는 시대 감정, 이런 변화에 대해 너무 걱정만 하기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보는 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태경 PD: 그런데 이렇게 많은 신조어가 생기면 그중 몇 개나 살아남을까요?
유화정 PD: 사실 신조어라는 게 지금만 생기는 건 아니라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 전시된 1920년대 사전을 살펴보면 '모뽀'와 '모껄'이라는 말이 있는데 각각 'Modern Boy'와 'Modern Girl'의 줄임말입니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뒤를 돌바줄 수 있는 힘·사람을 뜻하는 '빽'이나 '전업주부' '신세대' 같은 단어들 역시 각각 1950년대, 60년대, 90년대에 등장했던 신조어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조어의 70%는 10년 안에 소멸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널리 쓰지 않거나 특정 세대·커뮤니티 안에만 머무르면 금방 사라지는 거죠. 거부감이 적어 널리 사용되고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가 있을수록 오래 살아남는데, 예를 들어 '엄친아' 같은 표현은 비교적 오래 살아남은 편에 속합니다.
홍태경 PD: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말들은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고 있을텐데요. 신조어가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건 문화의 흐름이지만, 공적 언어로 자리 잡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신조어를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유화정 PD: 네, 한국 국립국어원은 우리말샘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신조어도 포함해 다양한 새말을 아카이빙하고 있습니다. 언어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인식 아래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두려는 노력의 일환인데요.
2016년 국립국어원은 표준어 이외에 다양한 단어를 포함한 '우리말샘사전'을 공개했습니다. '꿀피부'나 '꽃중년'처럼 표준어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신조어나 전문용어, 방언 등 50만 개 단어를 수록했고요. 인터넷 디지털 사전의 형태로 공개되는 만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삽화, 사진, 영상자료도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홍태경 PD: 한번 방문해 봐야겠네요. 신조어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과 문화를 담아내는 코드이기도 합니다. 오늘을 기록하는 언어의 힘, 우리가 함께 지켜봐야 할 또 하나의 문화이겠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