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인: 감옥에서도 멈추지 않은 카메라…황금종려상 이란 반체제 감독

Cannes - Palme D'Or Winners Photocall

Iranian director and screenwriter and producer Jafar Panahi poses with the trophy during a photocall after winning the Palme d'Or for the film "Un simple accident" (A Simple Accident) during the closing ceremony at the 78th edition of the Cannes Film Festival in Cannes, France, on May 24, 2025. Source: ABACA / Niviere David/ABACAPRESS.COM/PA/AAP Image

제78회 칸 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구금·징역 등 탄압 속에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온 이란의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It Was Just An Accident'에 수여되었습니다.


2025 제78회 칸 황금종려상
  • 이란 반체제 감독 자파르 파나히(Jafar Panahi), 'It Was Just An Accident' 78회 칸 황금종려상 수상
  • 베를린·베니스 이어 칸까지…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석권한 아시아 감독 첫 사례
  • 구금과 징역 등 이란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자유와 진실을 향한 창작 멈추지 않아
  •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조국의 자유”…황금종려 수상 소감에서 울림 전해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변화를 이끄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이번 칸영화제에서 그 진면목을 보여준 감독이 있습니다.

24일 폐막한 제 78회 칸 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이란의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It Was Just An Accident>에 돌아갔습니다. 정부 비판을 이유로 수차례 투옥되고도 영화를 멈추지 않았던 감독이죠.

금지된 상황 속에서도 몰래 작품을 찍어 세계에 알린 그의 행보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습니다. 이란 영화의 상징이자 표현의 자유를 지켜온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와 삶,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문화로 세상을 보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홍태경 PD: 먼저 이번 황금종려상 수상작 <It Was Just An Accident>,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데요. 문자 그대로 정말 ‘우연’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어떤 영화인가요?

유화정 PD: 영화는 이란의 평범한 시민 다섯 명이 과거 감옥에서 자신들을 고문했던 가해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과 현실, 그리고 침묵과 저항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흔들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개인 서사가 아니라, 이란 정부의 폭력성과 통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긴 작품으로 '국가 폭력의 일상화'를 비추고 있습니다.

영화는 부분적으로 감독 자신의 수감 경험을 담고 있는데요. 감옥에서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들은 이란 정부의 폭력성과 잔혹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매체 할리우드와의 인터뷰에서 파나히 감독은 감옥에 가기 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알게 되기 전, 그들의 이야기와 배경을 듣기 전, 내 영화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은 완전히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홍태경 PD: 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실화 기반이라니 더 충격적이고, 또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유화정 PD: 그리고 놀라운 건 이 영화는 정부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촬영됐다는 점인데요. 현재 파나히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인해 다시 기소될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영화제가 끝나면 곧바로 테헤란으로 돌아가 새 작품을 준비하겠다”고 밝혀 더욱 큰 울림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이란의 사회·정치 문제를 다룬 작품을 주로 선보인 파나히 감독은 반정부 시위, 반체제 선전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체포됐습니다. 지난 2010년 20년 동안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몰래 영화를 만들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해 왔습니다.

홍태경 PD: 탄압 속에서도 영화를 만든다는 것, 상상하기도 힘든 일인데요. 그런 상황에서 만든 영화가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유화정 PD: 2022년 재수감됐다가 2023년 2월 석방 요구 단식 투쟁을 벌인 끝에 보석으로 풀려난 뒤 처음으로 찍은 작품으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게 된 것인데요. 파나히 감독은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호주 출신 아카데미 수상 배우 케이트 블란쳇에게 황금종려상을 받아, 호주인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홍태경 PD: 네 반갑더라고요. 그렇다면 칸 영화제가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It Was Just An Accident>를 선택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유화정 PD: 올해 칸영화제는 현실 정치의 문제에 귀 기울인 선택을 했습니다. 국제 정세 속에서 예술이 갖는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예술과 정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적극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힘,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 특히 억압적인 체제 안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감독의 책임감, 이 점들을 칸이 높이 인정하고 지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는 “예술은 어둠을 용서와 희망으로 바꾸는 힘을 가졌다” 며 극찬했고, 케이트 블란쳇은 “영화가 더 넓은 사회적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영화제의 생각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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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파나히 감독, 칸 심사위원장 줄리엣 비노쉬, 호주 배우 케이트 블란쳇
홍태경 PD: 영화제 전 기간 동안 파나히 감독의 작품은 언론 평점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면서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영화제 기간 주요 매체들이 경쟁 부문 진출작들의 영화적 완성도에 매기는 평점에서도 최고점을 받았습니다. 수감과 가택연금, 여행금지 등으로 대외활동이 오랫동안 불가능했던 파나히 감독에게 이번 칸영화제 참석은 15년 만의 국제 영화제 참석이었는데요. 목숨을 걸고 이란의 독재를 비판하는 영화를 찍어왔고, 앞으로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감독을 향한 칸의 선택에 이견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홍태경 PD: 이번 황금종려상 수상은 감독의 영광뿐만 아니라 영화사에 길이 남을 굉장한 기록 달성이기도 하죠.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매년 2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베를린 국제영화제, 5월 한 달간 프랑스 칸에서 칸 국제영화제, 그리고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매년 8~9월 개최되는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꼽죠. 파나히 감독은 2000년 <서클>로 베니스 황금사자상, 2015년 <택시>로 베를린 황금곰상 수상, 이어, 올해 <It Was Just An Accident>로 칸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하면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석권한 감독이 됐습니다. 이는 역대 다섯 번째이자, 아시아 감독으로서는 최초 기록입니다.

홍태경 PD: 그렇군요. 여기서 잠깐 세계 3대 영화제의 성격, 각각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짧게 짚어 보죠. 먼저 1932년에 시작된 베니스 영화제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죠?

유화정 PD: 맞습니다. 실험성과 영화미학을 강조하는 이 세계 최초의 국제 영화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에 의해서 개최됐습니다. 무솔리니의 출현과 함께 베니스 영화제가 개최되자, 프랑스 정부는 그 반대의 의미로 1939년 칸 영화제를 기획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칸 영화제는 예술성과 사회적 메시지, 감독의 연출력 등을 중시하는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칸 영화제가 베니스 영화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베를린 영화제는 독일이 옛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져 있을 때 동서화합과 통일을 기치로 탄생한 영화제인데요. 주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홍태경 PD: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영화제들 각각의 독자적인 성격과 평가 기준을 갖고 있네요. 하지만 이 세계 3대 영화제 중영화제는 일반적으로 칸을 가장 우선으로 꼽는 이유는 뭘까요?

유화정 PD: 우선 경쟁 부문에 선정되기 위한 기준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특히 작가주의 영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진입 자체가 명예로 여겨집니다. 또한 영화계에서 칸은 가장 상징적이고, 세계 언론과 영화산업 관계자들이 가장 집중하는 영화제로 평가받습니다. 영화 산업뿐만 아니라 예술성과 정치적 메시지, 감독의 작가주의적 색채를 동시에 인정받을 수 있는 무대이죠.

영화는 대중문화이다 보니 세계적 화제성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칸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한 영화는 전 세계 배급과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특히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그해 영화계 최고작 중 하나로 평가되며, 아카데미 시상식과도 연결고리를 가질 만큼 파급력이 큽니다. 대표적인 예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들 수 있죠.
홍태경 PD: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보죠. 그런데 파나히 감독은 칸 영화제와는 일찌감치 인연이 깊다고요?

유화정 PD:  올해 64세의 파나히 감독은 30대 초반인 1995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하얀 풍선>으로 칸영화제가 최고의 데뷔작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에 등장했습니다. 덧붙이자면 <하얀 풍선>은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한국과의 인연도 시작됐는데요. 이후 감독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꾸준히 소개됐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얀 풍선>의 칸 입성에 이어 2003년 <붉은 황금>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 2011년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로 감독주간 황금마차상(공로상) 수상, 2018년에는 <3개의 얼굴들>로 경쟁 부문 상인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홍태경 PD: 이번 <It Was Just An Accident>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감독의 칸 입성 30년 만의 쾌거라 특히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네요. 파나히 감독의 영화계 입문은 스승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향에서 비롯됐다면서요?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감독이죠.

유화정 PD: 네 맞습니다. 이란 내 아제르바이잔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파나히 감독은영화 학교에서 공부한 뒤 방송국에서 일하다 거장 압바로 키아로스타미를 만나며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요. 파나히의 데뷔작 <하얀 풍선>은 스승 키아로스타미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2016년 타계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1997년 <체리 향기>로 이란 감독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이기도 합니다. 두 감독 모두 이란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작품 성향은 좀 다릅니다.

키아로스타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처럼 어린이와 소박한 인물을 통해 이란 사회를 우회적으로 보여줬다면, 파나히는 점차 이란의 독재와 사회문제에 대해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작품 세계를 펼쳐왔습니다. 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홍태경 PD: 이번 칸 시상식은 꽤나 극적인 순간이었는데요. 방화 공격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5시간 넘는 정전이 발생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다행히도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됐는데요. 무엇보다 파나히 감독의 수상 소감은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유화정 PD: 맞아요. 칸에 모인 세계 영화인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파나히 감독은 “국내외 모든 이란인들은 모든 문제와 차이를 제쳐두고 힘을 합치자"라며 "아무도 우리가 뭘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할 수 없다"고 호소했는데요. 단순한 소감을 넘어 자유와 용기, 진실에 대한 깊은 울림을 남긴 순간이었습니다.

홍태경 PD: 그런데 이번 수상이 단순히 영화계 안에서의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외교적인 파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죠?

유화정 PD: 네 그렇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오랜 세월 이란 정부의 탄압속에서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끝까지 진실을 말해 온 파나히 감독의 수상에 대해 "억압에 맞선 진실의 목소리”라며 극찬했는데요. 반면,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 정권을 지지하는 프랑스가 인권 문제를 제기하거나 다른 나라를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없다"며, 프랑스 정부가 칸 영화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결국 이번 칸영화제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의 성취를 넘어,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사회적 힘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제적 연대, 즉 이를 지지한 세계 영화계의 메시지가 함께 어우러진 순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태경 PD: 네, 예술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죠.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이번 황금종려상 수상 작 <It Was Just An Accident>를 통해 다시 한번 영화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오늘 이야기도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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