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인: 뜨개질, 할머니의 취미?...이젠 MZ세대의 힐링 코드!

Woman Knitting

Woman Knitting Credit: Jeffrey Coolidge/Getty Images

디지털 피로와 성과 중심의 사회에 지친 MZ세대 사이에서 뜨개질이 느림과 몰입, 아날로그적 위안을 제공하는 새로운 힐링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Key Points
  • MZ세대, 스마트폰 대신 뜨개바늘…조용한 몰입이 주는 '디지털 디톡스'
  • SNS 시대의 취미…뜨개 작품 공유하며 '나만의 시간'이 콘텐츠로
  • 감각적 여가 공간 인기…뜨개 카페, 뜨개 가능한 영화관까지 등장
  • 과정보다 결과, 반복 동작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뜨개 명상'으로 주목
호주는 이제 겨울의 초입입니다. 따뜻한 숄 하나가 온기를 더해주는 요즘, 겨울 하면 떠오르는 기억 속 장면이 하나쯤 있으시죠? 가령, 예전 할머니께서 정성껏 떠주시던 울 목도리의 포근함처럼요.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조금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SNS와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할 것 같은MZ세대. 이들이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뜨개질, 자수, 바느질 같은 아날로그 취미에 푹 빠졌다고 하는데요.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가 왜 이토록 ‘느린 취미’에 이끌리는 걸까요? MZ세대의 뜨개 열풍, 그 속에 담긴 트렌드의 흐름을 함께 짚어봅니다.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홍태경 PD: MZ세대가 뜨개질에 빠지고 있다는 얘기, 처음 들었을 땐 조금은 의외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흐름이 보이나요?

유화정 PD: 네, 요즘 정말 눈에 띄게 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SNS에서는 ‘#손뜨개’, ‘#니팅스타그램’ 같은 해시태그로 수많은 게시물이 공유되고 있고요. 대학 내 뜨개 동아리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단순한 뜨개질뿐 아니라 자수, 퀼팅, 태피스트리까지 관심 분야도 다양합니다.

보통 뜨개질은 겨울에만 하는 취미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사계절 내내 인기 있는 취미입니다. 여름엔 린넨이나 면사 등 시원한 소재의 실로 가방이나 소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계절을 크게 타지 않고, 특히 가방은 계절 불문하고 가장 인기 있는 뜨개 아이템 중 하나입니다.

홍태경 PD: 뜨개질이라는 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반복적인 작업인데요. MZ세대가 왜 하필 이 느린 취미에 빠지게 된 걸까요?

유화정 PD: 맞아요. 굉장히 반복적이고 느린 작업인데요. 그게 오히려 MZ세대에게는 힐링이 된다고 합니다. MZ세대의 삶을 보면 빠르게 변하고 정보가 과잉인 환경 속에 놓여 있죠. 그 속에서 뜨개질은 아주 개인적이고 집중적인 시간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뭔가 ‘내 속도’를 찾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게다가 무엇보다 내 손으로 만든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 욕구, 그리고 그걸 개성 있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태경 PD: 예전엔 전철 같은 데서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들을 종종 볼 수 있었거든요.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는데, 손녀에게 줄 목도리쯤일까 상상하게 되고요. 그런 장면이 어쩌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유화정 PD: 맞아요. MZ세대의 뜨개 열풍도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새로운 문화 현상처럼 보입니다.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뜨개를 즐기는 사람은 약 20만 명, 가볍게 시도해 본 경험자들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 30대가 약 32%로 가장 많고, 20대와 40대가 각각 25%로 비슷한 규모를 차지합니다. 다음으로 50대가 약 13.5%를 차지하고 있고요. 이렇게 보면 이제는 뜨개질이 특정 세대만의 것이 아닌, 전 연령층이 즐기는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홍태경 PD: MZ세대가 시장에 유입되면서, 예전과는 뜨개 문화 자체도 많이 달라졌겠네요?

유화정 PD: 그렇죠. 이전 어머니 할머니 세대가 필요에 의해 뜨개질을 했다면, MZ세대는 ‘나만의 이미지’, ‘개성과 취향의 표현’ 수단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패턴으로 목도리를 뜨더라도 색의 조합, 실의 질감, 마무리 장식 하나하나가 오롯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요소가 되는 것이죠.

이전에는 ‘패키지’ 형태로 실, 바늘, 도안이 다 포함된 키트를 구매해 샘플 그대로 뜨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도안만 따로 구매해서, 실 색상이나 소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조합해서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걸 선호합니다. 실제로 '나만의 뜨개 스타일'을 SNS에 공유하는 뜨개 인플루언서들도 많이 생겼고요.

홍태경 PD: 그러니까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과정과 그걸 어떻게 기록하고 공유하는가도 MZ 세대에게는 중요한 거네요.

유화정 PD: 네. 단지 취미로만 그치지 않고 그걸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죠. 완성된 작품은 물론이고, 처음 실을 고르고, 작품 도안을 그리고, 또 만들다가 실수한 모습까지도 모두 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Carol knitted the "rabbit family" doll for her husband
Knitted Creations Credit: Carol Wang
마치 ‘뜨개를 소재로 한 브이로그’인 셈이죠. 그리고 그걸 본 동 세대 또래들이 “예쁘다”, “나도 도전해 볼래” 하면서 점점 더 커뮤니티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또 열풍의 포인트는 ‘잘 못해도 괜찮다’, ‘실패도 예술이다’ 이런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어서 처음엔 코를 잘못 잡고, 엉뚱한 데에 매듭이 생겨도 ‘나만의 스타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홍태경 PD: 그렇죠. 중요한 건 완성도가 아니라,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즐기도 있느냐는 거니까요. ‘나만의 스타일’ 외에 뜨개가 인기를 끄는 이유, 또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유화정 PD: 뜨개를 하는 모습은 조신함이 연상되죠. 실제로 차분하게 손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평온해진다고 말합니다. 또 “세상에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면서 “뜨개질은 시간과 공을 들인 만큼 반드시 결과로 돌아온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꼽기도 하고요.

이 밖에 뜨개가 MZ세대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집에서 유튜브로 쉽게 배울 수 있는 취미이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똥손(?)도 뜰 수 있을 만큼 쉽게 알려준다’고 소문난 한 유튜버의 전체 영상 누적 조회 수는 무려 9천 100만 회에 이릅니다.

홍태경 PD: 뜨개를 취미로 하는 젊은 세대, 참 흥미로운 변화인데요. 최근에는 ‘뜨개 카페’도 인기라고 들었어요. 어떤 곳인가요?

유화정 PD: 말 그대로 카페입니다.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테이블 한쪽에서 뜨개질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요. 일반 카페와 달리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중년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뜨개를 배우고 교류도 하던 뜨개방이 있었죠. 지금은 뜨개 카페가 그 역할을 합니다.

뜨개 카페에는 다양한 색깔의 실, 특이한 재질의 실, 다양한 사이즈의 바늘 등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있게 준비되어 있고요. 초보자들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 친구와 함께 도안 교환을 하며 작업하는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홍태경 PD: 혼자 뜨개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뜨개로 친구를 사귄다는 문화도 있다면서요?

유화정 PD: 네, 이른바 ‘바만추’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자만추’에서 따온 건데요. ‘바늘로 만남을 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뜨개질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안이 있죠. ‘바만추’는 뜨개 친구를 사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신호판입니다.

뜨개를 하다 보면, 옆 사람이 뭘 뜨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잖아요. 말을 걸고 싶은데 애매하고 어색할 때, ‘바만추’라는 팻말을 테이블에 올려두면 ‘말 걸어도 좋아요’라는 사인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무언의 메시지인 셈이죠.
cgv_media_250226_01 CGV.jpg
CGV 뜨개상영회 / CJnewsroom
홍태경 PD: 지금 뜨개질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즐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뜨개질을 하면서 영화를 즐기는 ‘뜨개 상영회’도 열린다고요? 이건 좀 신개념인데요?

유화정 PD: 네 재미있죠. 작은 공간을 빌려 함께 뜨개질을 하면서 독립영화를 보거나, 조용한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인데요. 조명도 은은하고, 뜨개를 하면서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분위기가 오히려 편안하고 힐링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나만의 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감각적인 아지트인 셈이죠. SNS를 통해서 “나 이런 멋진 공간에서 이런 시간을 보냈다”라고 소개하기도 좋고요.

또 실제 상영관에서 스크린 영화를 보며 뜨개질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 CGV 강변점은 지난 1월 기본 관람료만 내면 뜨개질을 하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뜨개 상영회를 처음 열었는데요. 상영작은 ‘리틀 포레스트’. 전석 매진이었고요. “돈이 아깝지 않다”는 후기가 쏟아졌습니다.

홍태경 PD: 뜨개질하면서 스크린 보랴, 멀티타스크 형인 MZ 세대니까 가능한 일일 것 같네요. 그런데 어둡지 않을까요?

유화정 PD: 뜨개질 도면을 볼 수 있도록 조도까지 조절하는 세심한 배려가 있었고요. 시끄러운 액션이나 집중이 필요한 복잡한 스토리의 영화보다 ‘비긴 어게인’ 같은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와 매칭한다고 합니다. 몇 장면쯤 놓쳐도 괜찮도록 말이죠.

CGV뜨개 상영회는 전국 10여 곳으로 확대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요. 첫 상영회 때 관람객이 모두 20~30대 여성이었다면 최근에는 ‘남성 뜨개인’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홍태경 PD: 이런 문화적 흐름을 보면,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는 어떤 시대적 피로감의 반작용처럼도 느껴지는데요?

유화정 PD: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아날로그 취미가 디지털 피로, 속도 경쟁, 성과주의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해소해 주는 장치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 흐름과도 연결돼 있다는 건데요.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는 삶에 지친 사람들이 손을 움직이며 집중할 수 있는 활동으로 넘어가는 거죠. 반복적인 손동작은 뇌의 긴장을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홍태경 PD: 디지털의 시대, 뜨개바늘 하나로 나 만의 감성과 개성을 표현하며, 아날로그의 결을 통해 진짜 쉼을 경험하고 있는 MZ 세대의 뜨개 열풍, 스마트 폰 대신 뜨개 바늘 잡은 이야기 살펴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호주 공영방송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한국어 프로그램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세요.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SBS Audio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매일 방송되는 한국어 프로그램 전체 다시듣기를 선택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SBS 한국어 프로그램 팟캐스트는 여기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Share
Follow SBS Korean

Download our apps
SBS Audio
SBS On Demand

Listen to our podcasts
Independent news and stories connecting you to life in Australia and Korean-speaking Australians.
Ease into the English language and Australian culture. We make learning English convenient, fun and practical.
Get the latest with our exclusive in-language podcasts on your favourite podcast apps.

Watch on SBS
Korean News

Korean News

Watch it onDem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