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회 멜버른컵(Melbourne Cup)
- 매년 11월 첫째 주 화요일 'Melbourne Cup Day'…빅토리아 주는 공휴일로 기념
- "The race that stops a nation"…경주 3분간 호주 전역을 멈추게 하는 전국민적 축제
- 10달러 내외부터 베팅에 참여하며 즐기는 164년 전통의 국민 스포츠로 사랑받아
- 경주마들의 잦은 부상과 사망 사고로 최근 동물 복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
매년 11월 첫째 주 화요일 오후 3시, 세계 각국의 명마들이 3,200미터 플레밍턴 경마장 트랙을 질주하는 순간, 호주 전역이 멈추는 듯한 특별한 경주가 시작됩니다.
"나라를 멈추는 경주"라는 별명을 가진 '멜버른컵(Melbourne Cup)'은 올해로 164회를 맞이하며 전 세계 경마인들을 호주로 불러들이는 글로벌 대회이자 호주의 대표적인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간과 말이 쌓아온 특별한 유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멜버른컵의 화려한 외면 뒤에는 경주마의 복지와 안전에 대한 우려도 존재합니다.
160여 년 전통을 이어온 멜버른컵의 상징성과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현재의 모습까지 살펴봅니다.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인사)
나혜인 PD: 10월 마지막 주 핼러윈 열기가 가시기 무섭게, 11월 첫째 주는 호주 전역의 시곗바늘을 멈춰 세우는 전 국민의 경마 축제, 멜버른 컵 카니발로 이어지죠?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하일라이트는 멜버른컵 데이입니다. 매년 11월 첫째 주 화요일에 열리는 멜버른컵 데이를 전후로 일주일 간 스포츠, 패션, 음식, 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다양하고 볼거리 넘치는 이벤트로 도시 전체는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찹니다.
개막 이벤트가 있는 Derby Day를 비롯, Oaks Day, Stakes Day로 각 테마와 구성도 뚜렷한데요. 오크스 데이인 목요일은 전통적인 여성의 날로, 플레밍턴 경마장 안팎에는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모자와 화려한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여성들이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베스트 드레스 콘테스트도 열리는데요. 특히 이날의 모자 패션은 단순한 의상이 아닌 멜버른컵의 문화와 역사까지 담고 있습니다.

Credit: VRC
유화정 PD: 멜버른컵 데이 전통 유지를 위해 엄격한 드레스코드가 적용됩니다. 남성의 경우, 테일러드 정장에 넥타이 착용, 그리고 정장에 맞는 신발을 갖춰 신어야 하는데요. 정장 대신 스포츠 코트나 블레이저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회인 만큼 세계 각국의 관람객들도 상당수로, 해외에서 온 관람객들은 그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는 것이 허용됩니다. 전통을 중시한 이런 엄격한 드레스코드는 멜버른컵의 축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합니다.
나혜인 PD: 눈길을 사로잡는 패션과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음식,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멜버른컵 카니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화요일 오후 3시, 경주마의 질주가 시작되는 순간이죠!
유화정 PD: 맞습니다. 총 3분 안팎의 레이스가 펼쳐지는 동안, 빅토리아 플레밍턴 경마장에 운집한 12만 관람객은 물론, 호주 전역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일제히 레이스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광경이 연출되는데요.
이 순간은 단순한 경주 이상의 의미로서, 동시간대 온 국민이 일제히 활동을 멈추고 경주에 집중하는 경험은 이민자 다문화 사회 호주에서 국민적 통합을 이끄는 중요한 구심적 역할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해외 언론으로부터 ‘나라를 멈추게 하는 경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나혜인 PD: 그런데 경마대회에 베팅(betting)이 빠질 수 없죠. 멜버른컵을 즐기는 사람들을 더욱 열광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경주마 베팅 아닐까요?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베팅은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기 쉬운 부분이지만, 멜버른컵의 전통을 중시하는 호주에서는 남녀노소 건전하게 즐기는 전 국민 스포츠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호주 학교에서는 선생님부터 학생들까지 함께 베팅에 참여하고, 직장에서도동료들과 보통 10달러 내외의 부담 없는 액수로 베팅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 관행이 됐습니다.
나혜인 PD: 멜버른컵 베팅 방법에도 여러 종류가 있죠?
유화정 PD: 네 베팅 방법으로 Tipping, Sweeps, Trivia 등이 있는데요. 티핑은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말에게 돈을 걸어 맞출 시에 상금을 받는 일반적인 베팅입니다.
스윕스는 랜덤으로 한 마리의 말에 돈을 걸어 순위에 따라 차등으로 돈을 얻는 운에 따르는 방법이고요.

Source: SBS
나혜인 PD: 몇 년 전 SBS에서 말씀해주신 스윕스 랜덤으로 제가 뽑았던 말이 2등을 했었나요 그래서 상금 17달러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읏음)
멜버른컵이 올해로 164회를 맞이합니다. 그야말로 장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이처럼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온 멜버른컵, 그 첫 대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유화정 PD: 멜버른컵은 1861년 첫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후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60여 년의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대회는 열렸고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무관중 경기로 대회가 치러졌습니다.
1회 대회는 단 4천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금시계 1개와 170만 파운드 상금을 걸고 17마리의 경주마가 첫 레이스를 벌였습니다.
1회 대회 우승마인 '아처(Archer)'는 멜버른컵에 참가하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주
'나우라'에서 장장 850km를 걸어서 멜버른 플레밍턴까지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거리는 서울-부산 거리가 약 430km이니까 서울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입니다.
유화정 PD: 아처는 2회 대회도 출전해 2년 연속 우승의 기염을 토했습니다.
나혜인 PD: 대단한 명마입니다. 멜버른컵의 영웅마 아처에 대한 영화가 1985년 니콜 키드먼 주연의 'Archer’s Adventure'로 제작되기도 했었죠.
유화정 PD: 맞습니다. Archer는 3회 대회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대회장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3회 연속 우승 도전에는 아쉽게도 실패하고 말았는데요. 유력한 우승마 Archer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마주들이 경주를 포기했습니다.
이로 인해 3회 대회는 7마리만 경주에 참가하는, 멜버른컵 역사상 가장 소규모로 진행된 경주로 기록됐습니다.
나혜인 PD: 160년 전 경주마 Archer가 그 먼 길을 걸어 경주에 참여했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날 경주마들은 대우도 훨씬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죠?
유화정 PD: 호주는 전통적으로 장거리 경주에 적합한 말을 많이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매년 해외에서 국제적으로 훈련된 말들이 대회에 다수 참가합니다. 주로 뉴질랜드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등 유럽 지역, 그리고 일본 등에서 훈련된 세계적인 명마들이 참가하면서 전 세계의 많은 경마 팬들의 관심도 호주 멜버른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명마들은 멜번컵에 참가하기 위해 해외에서 호주로 운송되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심한 경우 운송 도중 말의 몸무게가 20 킬로그램 정도 빠지기도 합니다.
나혜인 PD: 이런 경우 말에 대한 복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200m의 트랙을 3분 만에 질주하는 말들에게 사전 준비가 철저했다 해도 부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요. 사고나 부상 후 안타깝게도 안락사되는 경우가 있다고요?
유화정 PD: 역대 최악의 비극은 2014년 펼쳐진 제154회 대회였습니다. 이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일본의 국보급 경주마 '어드마이어 랙티(Admire Rakti)'는 꼴찌로 들어와 마구간으로 들어간 직후 급성 심장마비로 숨이 멈췄습니다. 또한 7위로 들어온 일본의 경주마 '아랄도(Araldo)'는 레이스를 마친 후 다리가 부러져 안락사 됐습니다.
현재까지 멜버른컵에서 사망하거나 안락사 처리된 말은 총 7마리인데요. 특히 지난 10년 사이 이러한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마 산업의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Source: SBS
유화정 PD: 말과 인간의 관계는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사냥과 농업에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은 전쟁, 교통,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요.
오늘날 경마와 승마 스포츠는 말과 인간이 교감을 나누는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마는 말의 속도와 지구력을 시험하는 스포츠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인기 있는 경기인 반면, 승마는 말과 인간이 함께 훈련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죠. 특히 말과 인간 사이의 신뢰와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혜인 PD: Hosremanship 이란 단어도 있죠. 단순히 말을 타는 것을 넘어서, 말과 상호 작용하며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의미라고요?
유화정 PD: 단순히 말을 지배하거나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기수 간의 신뢰와 교감을 중요시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의미하는데요. 훌륭한 horsemanship은 말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유대가 쌓이면 높은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심지어 재난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기도 합니다.
말을 길들이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는 흔히 몽골인을 꼽는데요. 몽골의 말 조련 방식은 단순합니다. 마구 날뛰던 말이 잠시 뒤에 아주 온순한 말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죠.
말이 보여주는 제스처와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현재 말의 감정과 상태를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겁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말이 등 위의 사람을 신뢰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혜인 PD: 인간과 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교감이 중요한 거군요. 이번 멜버른컵에서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컬처인, 매년 11월 첫째 주 호주 전역을 함성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멜버른컵, 인간과 말의 유대가 빚어내는 164년 전통의 장대한 경주의 역사와 상징성에 주목해 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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