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최근 한국에서는 ‘슬기로운 호주 간호사 생활’이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호주에서 간호사로 잘 근무할 수 있을지 선배 간호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았는데요. 브리즈번에 사는 한인 동포 간호사 손정화 씨가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손정화 간호사 많은 힘든 경험과 고생이 있었기에 호주 간호사를 꿈꾸는 우리 한인 후배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3년간 책을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나혜인 프로듀서가 만났습니다.
나혜인 피디: 손정화 선생님 안녕하세요?
손정화 간호사: 안녕하세요?
나혜인 피디: 반갑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슬기로운 호주 간호사 생활’이라는 책을 집필하셨는데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좀 해 주시죠? 손정화 간호사: 네 안녕하세요? 저는 브리즈번에 살고 있는 두 딸아이 엄마고 지금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손정화라고 합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병원은 브리즈번의 로열 브리즈번 하스피털에서 지금 일하고 있고요. 최근에 제가 ‘슬기로운 호주 간호사 생활이라는 책을 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감사하게도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나혜인 피디: 지금 병원에서는 어떤 병동에서 일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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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화 간호사: 제가 일하는 병동은 병동은 아니지만 디파트먼트라고 해서 여러 검사도 하고, 이제 내시경도 하고 이런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나혜인 피디: 호흡기 관련 부서라고 하셨는데요. 그럼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더 바빠지시지 않으셨을까 싶은데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의료진들이 고생을 하셨는데, 이 기회를 통해 어떻게 보내셨는지 말씀을 좀 해 주신다면요?
손정화 간호사: 저희도… 브리즈번에도 5월에 확진자들이 많아서 병원에서 특별히 코로나 병동을 만들어서 저희 호흡기에 있는 레지던트들이라든지 컨설턴트들이라든지 모두들 돌아가면서 그 병동을 관리했었거든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져서 코로나 병동도 없어지고 했는데 그 당시에는 장비들 같은 경우도 준비를 못 한 상황이니깐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병동에 없는 장비들을 저희 부서에서 빌려가거나 급하게 구입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보통 환자들이, 코로나 환자들이 산소 포화도가 너무 많이 떨어져서 고농도의 산소 치료도 하고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나혜인 피디: 지금 퀸즐랜드는 많이 안정이 됐죠? 손정화 간호사: 네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된 것 같아요.
나혜인 피디: 사실 간호사라는 직종이 호주에서는 영주권을 획득하는데 비교적 수월한 직종이어서 많은 한인분들이 간호사로 호주에 정착하셨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호주 간호사에 대한 책이 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손정화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책을 쓰시게 되셨나요? 손정화 간호사: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가 호주에 오게 된 계기부터 학위 받고 지금 일하기까지가 조금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생한 부분도 많고, 그리고 제가 한 고생을 후배들은 좀 안 했으면 좋겠고, 좀 더 따뜻한 환경에서 정착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처음에 집필을 시작하게 됐어요.
나혜인 피디: 책을 쓴다는 것…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리셨을 것 같아요.
손정화 간호사: 네, 좀 3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나혜인 피디: 3년이란 긴 시간동안 준비한 책이 마침내 출간이 됐을 때 굉장히 심정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책을 딱 보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손정화 간호사: 3년 동안 제가 일을 같이 병행을 하면서 책을 냈는데 책을 받으니까 제가 힘들었던 3년 기억이 새록새록 나더라고요. 그리고 또 상황이 좀 더 안 좋았던 게 코로나 때문에 책도 좀 늦어지게 된 경우도 있고, 제가 한국에 가서 제 책 읽어주시는 독자분들도 만날 계획이었는데 그게 다 무산이 돼서 그런 점이 좀 많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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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인 피디: 네. 처음부터 좀 차근차근 얘기를 해 보죠. 손정화 선생님은 한국에서도 간호사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호주 행을 결심하시게 되신 건가요?
손정화 간호사: 저는 한국에서 취업을 하고 3년을 임상 생활을 하고 호주로 오게 됐거든요. 그런데 한국 간호 학생들이 졸업할 때 그런 말들이 있거든요. 처음에 좋은 병원에 취업을 해야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처음에 병원을 안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곳으로 갈 수는 없다…는 그런 말을 들었거든요.
나혜인 피디: 시작을 잘 해야 된다는 말씀이시네요.
손정화 간호사: 그래서 제 책의 소 제목도 그런 게 있어요. ‘연어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간호사’이렇게요. 좀 거스르고 싶었던 마음에…그렇게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좀 한국에서는 저한테 기회가 잘 없더라고요,.
나혜인 피디: 왜 좋은 시작을 못하셨던 이유가 있으셨나요?
손정화 간호사: 제가 한국에서 학점이 별로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학점도… 높은 학점을 원하고 지금은 영어 점수든 뭐든 원하는 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하지 못해서 학점이 별로 안 좋다 보니까 기회를 잘 갖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임상을 하다 보니까 3년 차 접어들고 좀 더 큰 병원에도 가고 싶고 이런 마음에서 제가 다른 병원에도 여러 번 이력서를 넣어 봤거든요. 그런데 저 한테 기회가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해외를 가면 어떨까…해서 미국 간호사 준비를 처음에 했었거든요. 미국 간호사 면허증도 따고 하다가 산업 인력 공단에서 호주 인턴십을 뽑아서 운이 좋게 제가 합격을 하고 그렇게 호주에 오게 됐어요.
나혜인 피디: 그때가 언제였나요?

Source: Supplied
손정화 간호사: 2006년도에요.
나혜인 피디: 그러면 호주에 오자마자 취업을 하시고 간호사 생활을 하신 건가요?
손정화 간호사: 처음에 도착했을 때 산업 인력 공단이랑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3개월 만에 인턴십이 끝나게 됐거든요. 그래서 제가 혼자서 브리즈번에 50군데 정도 널싱홈이라 병원에 이력서를 혼자서 돌리고 다녀서 운이 좋게 딱 한 군데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때가 어떻게 보면 저 한테 출발점이 됐던 것 같아요.
나혜인 피디: 당시에는 한국에서는 간호 학위가 있으셨겠지만 호주에서는 간호 학위가 없으셨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손정화 간호사: 네 맞아요. 그래서 제가 한 50군데를 넣어도 다 연락이 안 왔던 것 같아요.
나혜인 피디: 그래도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셨어요? 당시에… 호주에서 내가 일자리를 찾고 간호사 일을 할 수 있다라는…
손정화 간호사: 아니요. 처음에 한 10군데 정도 넣을 때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는데, 한 50군데 가까이 가니깐…한 40군데 넣었나 그때쯤에…딱 10군데만 더 넣고 이제 한국에 가자…이런 마음이었거든요. 취업을…여러 군데 이력서를 같이 넣으면서 한국에 갈 준비를 같이 했었어요. 안되면 이제 돌아가려고…
나혜인 피디: 그런데 다행히 취업이 되신 거네요. 당시에 그럼 병원에서 일을 하신 건가요?
손정화 간호사: 처음에 연락 온 곳은 에이전시에서 병원에 캐주얼로 일하는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에이전시 통해서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병원에서 저를 좀 좋게 봐서 계속 그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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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인 피디: 그러고 나서 호주에서 다시 간호 학위를 받으신 거죠?
손정화 간호사: 제가 한국의 경력과 한국의 간호 학과를 나온 것을 크레딧으로 받아서 호주에서는 1년만 간호 학과를 다녀서 학사 학위를 받았어요.
나혜인 피디: 그러시군요. 간호 학위를 다시 호주에서 받으시고, 본격적인 간호사 생활을 시작하신 건데요. 간호사 생활…특히나 이민자로 와서 시작한 간호사 생활은…더욱더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많은 어려움을 언급하셨는데 좀 설명을 해 주신다면요?
손정화 간호사: 아무래도 제가 한국에서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고 왔을 때도 영어를 굉장히 잘 못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병원의 일은 하는데 이렇게 처음에 출근을 해서 그전 번에 일하는 간호사에게 인계를 받는 경우에 거의 한 정말 10%도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사실 눈치로 이렇게 그렇게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제가 실전 영어를 배운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경험상, 제가 영어를 못하니깐 아무래도 영어가 제일 큰 문제였는데 못하는 영어 와중에서도 이렇게 이렇게 하니깐 살아지더라…그런 말을 좀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책에서요.
나혜인 피디: 영어 말고 또 다른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손정화 간호사: 아무래도 제가 아시안이다 보니깐, 처음에는 물론 제가 말을 잘 못 알아듣고 한 부분도 있어서 환자들도 좀 저에게 많이 컴플레인이 들어온 적이 있었거든요. 간호사로 일하기 전에 AIN이라고 간호조무사라고 한국에서 해야 하나요. 그렇게 일을 할 때 치매 있으신 분들은 제가 더 대화하기가 힘드니까, 그런 적도 있었고… 어떤 할머니께서 뭘 가져오라고 했는데 제가 그걸 계속 못 알아들은 거예요. 이것도 갖다주고 저것도 갖다주고 했는데 결국 할머니가 화가 나셔서 틀니를 저에게 던지셨거든요. 그런 기억들도 나네요.
나혜인 피디: 환자들을 대하는 게 많이 어려우셨어요? 아니면 동료분들과는 어떠셨어요? 제가 AIN으로 일할 때는 동료들이랑의 관계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걔네들이 볼 때도 제가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됐고 힘들게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그렇게 봤던 것 같아요. 동료들은 저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는데…아무래도 제가 일했던 병동이 사립 병동이었거든요. 아무래도 환자들도 자신이 받는 대우나 치료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데 말을 잘 못하는 애가 와 있으니깐 그런 게 불만이었던 것 같아요.

손정화 간호사와 동료들 Source: Queensland Health supplied
나혜인 피디: 간호사 뿐만 아니라 이민자가 호주 사회에서 성공하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집필하신 책처럼 슬기로운 호주 간호사 생활을 하는 걸까요?
손정화 간호사: 제가 한국에서도 그렇고 처음에 취업을 때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고 여기 왔을 때도 영어를 못하고 하니깐 좋은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일단 주어진 상황에서 제가 최선을 다하다 보니깐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까 길이 열려 있더라고요. 그래서 호주에서 혹시 힘들어하고 있는 간호 학생들이나 취업이 잘 안돼서 혹시나 병원에 가고 싶은데 병원에 취업이 안돼서 널싱홈에서 취업을 하는 친구들을 봤거든요. 그런 친구들도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병원에 갈 기회가 열릴 수도 있고 힘든 상황에서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혜인 피디: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분들이 영주권을 목표로 간호를 직업으로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분들께 간호사가 어떤 직종이다…실제로 현직에 계신 분으로써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
손정화 간호사: 우선 제가 한국에서도 간호사로 일을 했었고 호주에서도 일을 하다 보니까 호주에서는 장점으로 여러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아기들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지만은, 아무래도 시간도 유연하고 저희 매니저도 워킹맘인걸 아니깐 시간 부분이든 이런 게 봐주는 게 많거든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한테 존중을 받고 일하고 있는 느낌도 많이 들거든요. 한국에서는 제가 다른 의사들이나 동료들한테 제가 그렇게 간호사로서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반면 한국에서는 환자들을 보는 게 간호사가 환자를 보는 부분에 대해서 예를 들면, 주사만 놓는 경우가 있거나 환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인 간호를 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호주에서는 좀 더 예를 들면… 환자들 샤워도 시켜야 되고 그런 전인 간호 부문에 대해서 간호 방식이 달라서…그런 점이 힘든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환자 받고 약 주고 투약하고, 주사를 주면 되지만 호주에서는 몸 적으로 힘들고 그런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나혜인 피디: 네 알겠습니다. 손정화 간호사 선생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정화 간호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