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책갈피: 음악처럼 넘실대는 한 계절의 기억...이수지 '여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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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by Suzy Lee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한국인 최초 수상 작가 이수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Summer)'. 글자 없이도 비발디의 '여름'처럼 한 계절의 감각과 기억을 불러내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SBS 오디오 책갈피. 한국어와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여름은 언제 시작될까요.
달력 속 날짜가 아니라, 몸이 먼저 기억하는 계절이 있습니다.
맨발로 뛰어다니던 마당,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며 웃음이 터지던 오후,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던 음악의 울림까지.

오늘 오디오 책갈피에서 소개할 책은 그 모든 감각을 한 권에 담아낸 그림책,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 영문판 제목은 'Summer'입니다.

이 책에는 글자가 없습니다.
대신 색종이는 아이들의 얼굴이 되고, 흩뿌려진 물감은 물방울이 됩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림은 음악처럼 흐르고 독자는 이야기를 읽기 보다 경험하게 되죠.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여름에서 출발한 그림책입니다.
책은 마치 하나의 연주곡처럼 3악장으로 구성돼 있고, 시골집 앞마당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장면과 열정적인 음악 연주회의 풍경이 교차하며 펼쳐집니다.

이 그림책의 작가 이수지는 2022년 한국 아동문학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작가로는 38년 만의 수상이었습니다.

수상 이후, 놀라운 변화가 이어졌습니다.
<여름이 온다>는 판매량이 200배 가까이 급증, 품절 사태까지 이어졌죠.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을 가장 많이 구입한 독자층이 30~40대 성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고르는 어른들. 이수지 작가는 이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엔 사인을 해달라면 아이 이름을 적었는데, 요즘은 어른들이 자기 이름을 적어달라고 해요. 그림책을 깊이 읽고, 자신만의 해석을 들려주는 독자들도 많아졌고요.”

이수지 그림책의 가장 큰 특징은 책이라는 물건을 그대로 이야기로 끌어안는 방식입니다.
페이지를 잇는 제본선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되고, 책을 펼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연출이 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책이 아니라 몸으로 넘기고, 감각으로 느끼는 책에 가깝습니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영국 런던에서 북아트를 공부한 작가의 이력은
이 독특한 작업 세계를 설명해 줍니다. <여름이 온다>는 그 모든 실험과 감각이 집약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8쪽에 이르는 비교적 긴 분량에 색종이 콜라주, 연필 드로잉, 수채와 아크릴까지 다양한 재료가 한 권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시골의 자연, 아이들의 몸짓, 그리고 비발디 음악이 가진 생명력이 페이지마다 리듬처럼 살아 움직이며 생동감을 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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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온다 (Summer)
한 가지 덤도 있습니다. 책날개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실제 비발디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넘기면, 이 그림책은 하나의 작은 공연이 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아이와 비슷하다”고. 그래서 자신이 어른인지 아이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요. 어쩌면 이 책이 어른 독자들에게 더 깊이 닿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감각, 계절을 온몸으로 맞이하던 기억을 조용히 불러냅니다.

<여름이 온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면서 동시에 어른을 위한 계절의 기록입니다. 빠른 영상과 자극적인 이미지에 익숙해진 시대에 종이책이 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올여름, 잠시 속도를 늦추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계절을 듣는 독서를 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를 만나봤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한 켠, 오늘도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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