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이 조금 불편해도 ‘괜히 집주인한테 말 꺼냈다가 임대료 오르는 거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는 분들, 적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도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호주 전역의 임차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은 집에 문제가 있어도 수리를 요청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임대료가 인상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또 절반 이상은 집주인이 퇴거를 통보하거나,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오를까봐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사는 집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응답자의 절반은 수리가 필요한 집에 살고 있다고 했고, 10명 중 1명은 긴급 수리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해충 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도 3집 중 1집, 전체의 31%에 달했습니다. 4분의 1집, 24%는 비가 새거나 집에 물이 샌다고 답했습니다. 5집 중 1집인 20%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고, 18%는 곰팡이가 낀 욕실을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집주인에게 말하지 못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Roof is Leaking, Pipe Rupture at Home: Water Drips into Buckets in Living Room. Angry Couple in Background Calling Insurance Company, Screaming into Phone in Frustration, Trying to Find Plumber Source: Getty / gorodenkoff
구체적으로 청년수당을 받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임대 매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도 접근 가능한 임대 매물은 전체의 0.7%에 불과했고, 구직수당(JobSeeker)을 받는 사람에게 맞는 매물은 단 3곳뿐이었습니다. 또한 이 3곳의 매물은 모두 쉐어하우스였습니다.
특히 전국 74개 선거구에서는 최저임금으로 살 수 있는 집이 단 한 채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앵글리케어의 캐시 체임버스(Kasy Chambers) 대표는 “호주의 주거 위기는 역사상 가장 심각하다”며 “생계비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용은 주거비”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시작선에도 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대응이 너무 부족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보고서는 현재의 세금제도와 민간 중심의 주택 공급 방식이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체임버스 대표는 “우리의 세금 제도는 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익을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며, “세입자들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임대료는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임대료는 무려 평균 47% 상승했는데요.
이렇게 오른 임대료 속에서 응답자의 약 3분의 1은 임대료가 5%만 더 인상돼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런 현실과는 다르게, 임대법은 꽤 촘촘하다는 점입니다.
전국세입자단체연합(ACOSS)은 “법이 존재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제도와 현실 간 괴리를 지적했습니다.
카산드라 골디(Cassandra Goldie) 전국세입자단체연합 대표도 “사람들이 당연히 요청할 수 있는 수리조차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은 완전히 부당하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실직자,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 장애인처럼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일수록 이런 불안은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조사에 참여한 단체들은 정부에 몇 가지 개선책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임대료 인상 횟수와 비율을 제한하고, 이유 없는 퇴거 통보를 금지하며, 어려운 세입자들을 위한 무료 상담과 지원 서비스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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