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윔블던, 1877년 창설 이래 146년 만에 첫 복장규정 완화
- 2023년부터 여자 선수 흰색 아닌 어두운 색 반바지 허용
- 엄격한 '올 화이트' 윔블던 드레스 코드…흰색인 이유는?
- 끊임없이 규칙을 깨뜨려온 선수들…더 강화된 복장 규정
윔블던은 세계테니스의 성전으로 불립니다. 테니스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그 해의 윔블던 우승자나 명승부를 펼친 쟁쟁한 스타들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보게 되는데, 그만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큰 스포츠 대회이기도 합니다.
17일 폐막한 2023 윔블던에 새로운 왕이 탄생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스무 살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노박 조코비치를 제치고 윔블던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번 대회는 1877년 윔블던 창설 이후 ‘올 화이트’ 드레스코드만을 고집하던 윔블던이 146년 만에 여자 선수의 복장 규정을 완화해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관련소식 알아봅니다. 컬처 IN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주양중 PD (이하 진행자):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윔블던이 2023년 대회부터 여성 선수들의 복장을 일부 변경한다는 소식이 앞서 전해졌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유화정 PD: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언더웨어(속옷)까지 흰색 착용을 고수해 온 윔블던이 여자 선수에 한 해 어두운 색 언더팬츠를 입을 수 있도록 일부 예외를 수용했습니다.
이 같은 변경은 경기 일정이 생리 기간과 겹치는 선수들을 배려하기 위한 취지로 2023년 대회부터 여성 선수들의 속바지가 스커트보다 길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색상이 들어간 걸 입어도 된다는 규정이 신설됐습니다.
하지만 실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완화한 규정을 활용할지는 미지수인데요. 흰색이 아닌 언더팬츠를 입을 경우 생리 여부를 공개하는 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모든 선수가 색깔이 있는 언더팬츠를 착용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진행자: 많은 선수들이 이번 규제 완화를 크게 환영하지만 한편으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군요. 자 그런데 테니스 하면 떠오르는 색상은 단연 흰색입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동호인들도 대부분 흰색 상하의를 입고 경기를 하는데, 테니스 드레스 코드는 왜 ‘올 화이트’가 됐을까 궁금해요. 먼저 테니스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유화정 PD: 테니스의 유래는 13세기경 프랑스 귀족들이 즐기던 ‘쥬드폼(Jeu de Paume)’이라는 공놀이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초기에는 헝겊 안에 머리카락이나 동물의 털을 뭉쳐서 넣은 공을 손바닥으로 쳐서 넘기는 게임이었던 것이 16세기초 공을 치는 라켓이 개발되면서 이때부터 현대 테니스와 비슷한 형태의 스포츠로 발전했습니다.
이것이 영국으로 전해졌고, 테니스는 영국에서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신사 숙녀스포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윔블던 대회에서 남자와 여자 경기를 각각 젠틀맨, 레이디스로 부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 테니스는 경기 특성상 몸을 격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땀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하지만 땀을 흘려 옷이 얼룩 지는 것은 귀족들의 품위에 걸맞지 않았죠. 따라서 땀 얼룩이 잘 드러나지 않는 흰색, 올 화이트의 복장으로 옷색깔을 정한 겁니다.
진행자: ‘영국 테니스의 사회사’를 저술한 로버트 레이크는 "흰색은 땀을 가장 잘 숨겨주고, 깨끗하고 날렵하고 단정해 보이며 선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규정이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지적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인지 꼽아보죠.
유화정 PD: 로버트 레이크의 ‘영국 테니스의 사회사’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 후반 여성들은 적절한 복장에 대한 문화적 기대, 즉 정숙함에 부합하는 옷을 입어야 했기에 당시 여성의 기본 속옷인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착용하고 바닥에 닿을 듯한 긴치마를 입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30th June 1924: American-born tennis player Bunny Ryan (Elizabeth Ryan) in action against Suzanne Lenglen of France during a women's singles match at Wimbledon. Credit: Kirby/Getty Images
렝글렌은 코르셋과 페티코트 없이 목이 파인 짧은 소매 원피스를 입었는데, 주름치마 길이는 종아리쯤이었으며 실크 스타킹은 무릎 위까지만 올라왔습니다. 헤어 스타일은 당시 유행하던 보브 스타일의 단발머리를 넓은 헤어밴드로 센스 있게 고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진행자: 경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길이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적당한 품위를 갖춘 클래식한 룩으로의 변천인데, 1934년 에일린 베넷이 여성 선수 최초로 반바지를 입고 ‘센터 코트’에 등장했을 때는 윔블던 전역이 충격에 휩싸였다는 기록도 있죠.
유화정 PD: ‘영국 테니스의 사회사’에서 로버트 레이크는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용성, 기능성, 편안함"이 더 중요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후 테니스 프로화 시대(open era) 즉, 1968년 상업화의 흐름에 따라 테니스계에서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을 없애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프로 대회가 개최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여성의 매력에 대한 전통적인 기준에 심지어 섹시함까지 포함하는 기준이 선수 복장의 핵심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방금 언급된 테니스 프로화 시대, 이른바 Open Era의 시작으로 국제 메이저대회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테니스 그랜드 슬램으로 불리는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호주 오픈이 여기에 들어가죠.
유화정 PD: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그리고 US오픈을 세계 4대 메이저대회로 꼽습니다. 윔블던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보통 개최 시기 순으로 꼽고 있습니다.
1905년부터 시작한 호주 오픈은 테니스 그랜드 슬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1월 중순부터 말까지 호주 멜버른 파크에서 열립니다. 프랑스 오픈은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에서 개최됩니다.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는 영국 런던 윔블던에 있는 올 잉글랜드 테니스 클럽(The All England Tennis Club)에서 윔블던이 펼쳐지고,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US오픈은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미국 뉴욕주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립니다.
진행자: 다시 테니스 드레스 코드로 돌아가 보죠. 호주 오픈과 함께 다른 메이저 대회의 복장은 선수 개성을 돋보이는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코트를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반해 윔블던의 흰색 옷 전통은 시대가 흐를수록 더욱더 강화돼 온 느낌이 드는데요.
유화정 PD: 코트에서 뛰는 스타 선수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색깔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데, 이에 맞서 윔블던 대회 조직위는 규정을 더욱 강화해 이를 차단해 왔습니다.
선수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복장만 흰색을 유지하고 색이 도드라지는 속옷을 입는 사례가 늘어나자 2014년부터는 속옷 역시 흰색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했습니다. 심지어 응급 상황에 대회장에 들어오는 의료진도 가능하면 흰색 옷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규칙을 깨뜨리려는 스타플레이어들의 개성 연출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는데, 2008년에는 ‘윔블던의 황제’ 로저 페더러 선수가 전신을 가리는 군복 재킷 스타일의 유니폼으로 경기장에 나와 화제를 증폭시켰죠.
유화정 PD: 맞습니다. 당시 세레나 윌리엄스의 트렌치코트 디자인 유니폼도 파격을 불러왔죠. 2013년 대회에서는 로저 페더러가 1회전에서 밑창이 주황색인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가 대회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2라운드부터 운동화를 교체할 것을 권고받기도 했었고요.

Roger Federer defeats Marin Cilic at Wimbledon. Source: AP
진행자: 오직 흰색만을 허용하다 보니 패션에 대한 다양한 화젯거리가 쏟아진 것 같네요.
유화정 PD: 2021년에는 대회 개막 전부터 흰색 옷 규정 논란이 일었습니다. 본선 개막 전에 열린 예선에 출전한 네덜란드의 인디 데브룸이 "심판이 내 모자 안쪽이 충분히 하얗지 않다고 지적했다"는 글과 관련 사진을 SNS에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는데요.
한 테니스 팬은 "모자 안쪽은 어두워야 햇빛을 차단하는데 효과적이다. 심판은 아주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며 비판했는가 하면 "심판의 모자는 보라색인데 선수는 흰색 모자를 써야 하는 것이 웃기다" "윔블던의 드레스 코드 규정은 너무 이상하다" 등의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진행자: 146년의 전통의 윔블던이 고수하는 까다로운 복장 규정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유화정 PD:윔블던은 1877년 창설이래 출전 선수의 모든 복장을 흰색으로 통일하도록 강제해 왔습니다. 경기 도중 입는 상 하의와 신발은 물론 속옷까지도 통제하고 있는데요. 복장 규정 7항에는 '모자, 헤드밴드, 두건, 손목밴드, 양말은 모두 흰색이어야 하고, 10㎜가 넘게 색깔이 들어갈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목둘레, 소맷부리, 모자, 머리밴드, 반다나, 손목밴드, 양말, 반바지, 스커트, 속옷에는 다양한 색상의 띠를 넣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선수들이 다채로운 띠를 넣어보기도 전에 띠의 폭이 1cm보다 좁아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합니다. 또한 소재나 패턴 변형으로 광고사의 로고를 만들 수 없습니다
윔블던은 ‘올 화이트’ 드레스코드와 함께 초록 잔디를 전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테니스 4대 그랜드슬램 대회 중 유일하게 잔디 경기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윔블던의 모든 규칙은 윔블던을 프로 테니스의 상징이자 특별한 도전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 소식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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