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책갈피: 사랑보다 어려운 이해…김혜진 ‘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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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딸과 그녀의 동성 연인을 바라보며 낡은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마.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딸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이야기.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는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신동엽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2017년 출간 이후 꾸준히 화제를 모으며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더 넓은 독자와 관객에게 다가간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고, 특히 이탈리아어 번역본은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하며 깊이 있는 서사와 보편성을 다시 한 번 증명했습니다.

오디오 책갈피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려요.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오늘 함께 펼쳐볼 책은, 출간 직후부터 꾸준히 화제를 모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한 권.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입니다.

이 소설은 세 부류의 여성을 등장시킵니다.
젊은 여성인 딸과 ‘그애’, 중년의 나, 그리고 노년의 젠.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의 삶은 어딘가 서로를 닮아 순환하듯 이어집니다.

소설은 어머니, ‘나’의 시점으로 펼쳐집니다.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무연고 치매 노인을 돌보고 있습니다.
내가 돌보는 ‘젠’ 할머니는 젊은 시절,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분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귀한 시간과 정성을 타인을 위해 애써왔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죠.

내 딸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사를 위해 목돈을 부탁하지만 나는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고, 결국 딸은 내 집으로 들어오기로 합니다.
7년째 함께해 온 동성 연인, ‘그애’와 함께 말이죠.

나는 그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딸의 평범한 행복을 앗아간 존재처럼 느껴지고, 내가 바랐던 삶과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가는 딸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며? 그거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왜 나한테만 예외인 건데?”

많이 배우고 똑똑한 딸은, 부당 해고된 동료를 위해 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다치기까지 합니다.
나는 그런 딸이 젊음을 흘려보내는 게 속상합니다.
분노는 딸의 연인, ‘그애’에게로 향합니다.

딸애의 사생활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나는 이제 그들의 삶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세상과의 불화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딸, 그리고 그런 딸과 함께 하는 불편한 동거는 나의 일상을 서서히 흔들어 놓습니다.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나한테도 권리가 있어. 평범하게 사는 자식을 보고 싶은, 그 권리 말이야.”

말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내가 젊은 날 얼마나 고되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지금 너의 삶이 늙은 엄마를 얼마나 떨리게 하는지.
김혜진 작가 '딸에 대하여' (KYOBO)
김혜진 작가 '딸에 대하여' (KYOBO)
젠은 서서히 생명을 잃어가고,
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딸의 미래를 떠올립니다.
그런 딸이, 언젠가 무연고 노인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젠의 평화로운 마지막을 함께하며, 나는 조금씩 작고 느린 시도를 시작합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며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은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아니면 모르고 싶은 걸까.”

작가는 말합니다.

“이해라는 말 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이 책은 아득한 내일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입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무연고자인 젠의 편에서,
딸은 소외된 성소수자들의 편에서.
서 있는 자리는 달라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책이 출간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되짚어보게 됩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를 함께했습니다.
여러분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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