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전쟁 고아 윤우철, 콜롬비아 부대의 주방에서 생긴 특별한 인연
- “콜롬비아에 가고 싶어요”…스페인어로 건넨 소년의 한마디
- 군용 가방 속 28일간의 항해, 병사들의 도움으로 태평양 건너
- 46년 만의 고국 방문과 가족 상봉…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올해는 6.25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매년 6월 한국전쟁을 기억하며 참전국과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되새기곤 하죠.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속에서도 가슴을 울리는 특별한 인연이 피어납니다.
오늘 컬처인에서는 한국전쟁에서 중남미 유일의 참전국이었던 콜롬비아가 한국전에 남긴 흔적, 그리고 그 속에서 특별한 여정을 시작한 한 한국 소년, 바로 '군용 가방 속 소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문화로 세상을 보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홍태경 PD: 콜롬비아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 많은 분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화정 PD: 대부분 한국전 참전국 하면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같은 영어권 국가들을 먼저 떠올리죠. 그런데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에 직접 군대를 파병한 나라가 바로 콜롬비아입니다. 당시 콜롬비아는 5천 1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바따욘' 부대를 파병했는데요. 이 부대는 1951년 금성 진격 전에서 선봉에 서서 3만여 명의 중공군을 막아내며 서울 방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홍태경 PD: 정말 대단한 전공을 세웠네요. 그런데 그렇게 헌신했는데도 콜롬비아 군인들은 전쟁 후에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요?
유화정 PD: 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콜롬비아 군인들은 귀국 후 조국에서 잊혀진 존재가 됐습니다. 당시 콜롬비아는 정부와 좌익 게릴라 간의 내전이 한창이었고, 참전 용사들은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어요. 부상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평생 힘겹게 살아간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은 한국인들에게는 남아 있지만 정작 콜롬비아에서는 잊혀진 역사로 남아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죠.

colombia-location / world map Credit: OnTheWorldMap.com
유화정 PD: 네, 맞습니다. 한국에서 콜롬비아까지, 군용 가방에 숨어 태평양을 건넌 일곱 살 소년의 이야기인데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 소개할 이 특별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윤우철 씨입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시기, 당시 전쟁고아였던 어린 윤우철 씨는 콜롬비아 군인 아우렐리아노 가욘 병사를 만나게 됩니다.
우철 씨는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콜롬비아 부대의 쓰레기통을 뒤지던 상황이었죠. 가욘 병사는 부대 주방에서 일하며 소년에게 음식을 챙겨주고, 스페인어도 가르쳐 주면서 친아들처럼 돌봐줬습니다. 일곱 살 우철은 매우 활기차고 재밌는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가끔 부대 안으로 데려가 동료 병사들과도 어울리게 했고 부대가 이동할 때면 항상 우철을 데리고 다닐 정도로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홍태경 PD: 1953년에 남북한 휴전 협정이 체결됐잖아요. 전쟁이 끝난 뒤 콜롬비아 군인들도 철수해야 했죠?
유화정 PD: 네, 그렇죠. 가욘 병사도 한국을 떠나야 했지만 어린 우철 군을 혼자 남겨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참 인상적인데요. 어느 날 우철 군이 몇 달 사이에 배운 짧은 스페인어로 “파파산, 콜롬비아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한 겁니다. 가욘 병사는 아이를 콜롬비아로 데려가려고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봤지만 허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우철 씨를 자신의 군용 가방에 몰래 숨겨서 데리고 가기로 한 거죠. 그리고 다른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무사히 콜롬비아행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한 달 가까운 약 28일간의 항해 동안 가욘 병사는 아이에게 음식을 챙겨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틈틈이 카드놀이를 하며 정성껏 돌봤다고 합니다.
홍태경 PD: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그런데 콜롬비아에 도착한 뒤에는 잘 적응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콜롬비아에는 한국인도 거의 없었을 텐데요.
유화정 PD: 네, 윤우철 씨는 콜롬비아에 도착해 ‘카를로스 아르투로 가욘’이라는 새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가욘 병사의 아들로 공식 입적됩니다. 하지만 그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가욘 병사의 부인이었죠. 양어머니는 윤우철 씨를 끝내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특히 친딸이 태어난 이후부터는 우철 씨를 거의 집안 심부름꾼처럼 대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양아버지 가욘 병사는 군인 신분으로 콜롬비아의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 이곳저곳으로 자주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우철 씨는 청소년기에 가출을 반복했고 거리에서 구걸하거나 커피 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콜롬비아 일간지에 소개된 윤우철 군과 양아버지 가욘 병사의 사연/ BBC
유화정 PD: 네. 윤우철 씨가 콜롬비아로 간 지 11년이 지난 1964년, 그의 양아버지 가욘 병사가 콜롬비아 유력 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에 이 특별한 사연을 처음 공개하면서 알려지게 된 겁니다.
홍태경 PD: 그러면 콜롬비아 현지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 됐겠네요?
유화정 PD: 네, 윤우철 씨는 ‘군용 가방 속의 아이’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됐고, 이후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기사와 작품들이 콜롬비아 언론과 대중문화에 많이 소개됐어요. 심지어 그의 이름을 사칭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할 정도였죠. 하지만 윤우철 씨는 이런 관심에도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양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국방부 기록 보관소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했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성실히 살아갔다고 합니다.
홍태경 PD: 윤우철 씨가 자신의 첫아들에게 한국식 이름을 남겼다고요?
유화정 PD: 네, 그렇습니다. 윤우철 씨는 자신의 첫아들에게 ‘윤크’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자신의 성을 그대로 남기며, 콜롬비아에 살면서도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 한 마음이 담겨 있죠.
홍태경 PD: 윤우철 씨의 사연은 한국 방송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잖아요.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죠?
유화정 PD: 1999년 한국방송공사의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노력으로 윤우철 씨는 한국을 떠난 지 46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을 다시 밟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수소문 끝에 가족을 찾게 되는데요. 그를 가족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는 가슴에 남아 있던 오래된 화상 흉터였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실수로 끓는 물을 쏟아 남긴 상처였죠. 그의 누나가 윤우철 씨의 셔츠를 들춰 그 흉터를 확인하고서야 “맞다. 우리 동생이다”며 눈물로 껴안았고 그렇게 근 50년 만에 극적인 남매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46년 만에 고국 찾은 윤우철 씨 사연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윤우철 씨는 평생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가족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 겁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집을 떠나 일하던 중이었고, 아들이 떠난 사실을 알고 난 뒤 평생 아들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살아가셨다고 합니다. 결국 어린 시절 군용 가방에 담겨 콜롬비아로 떠났던 소년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긴 세월 동안 품고 살아온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참 인상적인 사실이 있는데요. 윤우철 씨가 콜롬비아로 떠나던 날, 어린 그는 누나에게 “나를 축복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본인은 이미 잊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 마지막 말을 잊지 않고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홍태경 PD: ‘나를 축복해 달라’ 일곱 살 어린아이가 한국을 떠나며 남긴 그 말,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한국 방문 이후, 윤우철 씨의 삶은 어떻게 이어졌나요?
유화정 PD: 네, 윤우철 씨는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며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조금씩 되찾고 가족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았고, 삶의 터전은 이미 콜롬비아였기 때문에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윤우철 씨는 이후에도 늘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013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그의 아들 윤크 씨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유해를 고향 한국 땅에 모시는 것입니다.
홍태경 PD: 정말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이네요.
유화정 PD: 맞습니다. 군용 가방 속에 몸을 숨겨 콜롬비아로 향했던 그 어린 소년의 마지막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윤우철 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홍태경 PD: 한국전쟁은 분명 아픈 역사이지만 그 속에서도 이렇게 특별한 인연과 사랑, 그리고 희망이 피어났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콜롬비아를 비롯한 참전국들의 소중한 희생과 용기에도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오늘 귀한 이야기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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