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매년 2, 3월이 되면 호주에서는 남반구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 축제인 마디그라가 진행됩니다. 보통은 시드니 시내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가로지르는 퍼레이드가 진행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작년과 동일하게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오는 3월 5일 화려한 행진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마디그라 축제는 공식적으로는 2월 18일부터 3월 6일까지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전 세계 퀴어 영화들을 소개하는 마디그라 영화제가 2월 22일부터 시작됩니다. 올해 영화제에는 한국에서 퀴어 영화 ‘정말 먼 곳’과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등 2편이 초청됐는데요.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의 변규리 감독 나혜인 프로듀서가 연결했습니다.
너에게 가는 길
- 장르: 다큐멘터리
- 연출: 변규리 감독
- 주연: 나비, 비비안, 한결, 예준
- 호주 상영: 마디그라 영화제 온라인 상영
- 줄거리: 34년차 소방 공무원 ‘나비’와 27년차 항공 승무원 ‘비비안’,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내 아이의 커밍아웃 이후 오늘도 한 걸음 다가가는 중인 현재진행형 그녀들의 뜨거운 이야기
나혜인 피디: 2022 마디그라 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의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 한국에서 성 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저희가 앞서서는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변규리 감독 연결해 작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 다큐의 주인공이신 두 분의 성 소수자 부모님, 정은애, 강선화 님 연결해 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정은애 님: 안녕하세요?
강선화 님: 안녕하세요?
나혜인 피디: 먼저 두 분 각자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Source: Supplied
강선화 님: 네 저는 27살 게이 아들을 둔 엄마 비비안이고요. 비비안은 저의 활동명이고 본명은 강선화이고요. 저는 현재 한국에서 항공사 승무원으로 30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나혜인 피디: 네. 반갑습니다. 그리고 나비 님?

Vivian Source: Supplied
정은애 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 나비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제 이름은 정은혜입니다. 제 아이는 현재 29살이고요. 바이 젠더. 팬 로맨틱, 에이 섹슈얼로써 트렌지션 마치고 FTM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주 방송국과 이렇게 인터뷰하게 돼서 여러분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나혜인 피디: 네 반갑습니다. 나비 님 자녀분 소개를 굉장히 길게 해 주셨는데, 좀 어려운 말이 있네요.
정은애 님: 바이 젠더라는 건 젠더가 두 개라는 거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성, 여성 그런 젠더가 두 개이고요. 팬 로맨틱이라는 것은 상대의 성적 지향이 혹은 성 정체성이 어떠하든 로맨틱을 느낄 수 있는 거고, 에이 섹슈얼은 이제 섹슈얼에 있어서는 무성애자라는 의미입니다.
나혜인 피디: 네. 트랜스젠더 자녀분을 두고 계시고요.
정은애 님: 본인이 법적 성별을 여성으로 이제 부여받았죠. 이제 보통 외부 성기를 기준으로 법적 성별은 여성으로 부여받았지만 본인의 젠더는 남성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성전환 수술을 마친 트랜스젠더입니다. 현재 female to male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혜인 피디: ‘너에게 가는 길’에서는 활동명으로 출연하셨어요. 우리 정은애 님은 ‘나비’, 강선화 님은 ‘비비안’인데요. 먼저, 이런 활동명을 지으시게 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Nabi Source: Supplied
강선화 님: 제가 한 5년 전에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 처음으로 가게 됐는데 들어가니까 거기서는 다 활동명으로 자기 소개를 하더라고요 근데 그 장면이 되게 어색하긴 했는데 그 당시에는 사실 왜 활동명을 쓰는지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근데 활동명을 어떻게 하시겠냐고 해서 그냥 얼떨결에 나온 게 그냥 비비안이었는데 제가 비비안 리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네 그래서 그냥 순간적으로 그냥 짓게 된 게 비비안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한국에서는 성소수자가 본인을 드러내고 어떤 활동을 하기가 굉장히 좀 힘들잖아요. 차별과 혐오가 너무 많은 사회다 보니까 그래서 어떤 성소수자들이 좀 안전하게 활동을 하기 위해서 본명보다는 어떤 활동명을 만들어서 사용을 하고 실제로 그런 성소수자 인권 활동들을 많이 하고 계시더라고요
나혜인 피디: 정은애 님은 왜 나비를 택하셨어요?
정은애 님: 저도 어디선가 이제 닉네임을 보통 단체에서 모이면 쓰는 데가 있는데 거기에서 뭘로 할 거냐고 한번 얘기해 달라고 그랬는데 저는 그때 한참 장자에 대해서 관심 갖고 읽어보고 있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장자가 이제 호접지몽을 이제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 네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꾸며서 나비가 되어서 날아다녔는데 깼잖아요. 근데 실은 본인이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면서 본인 장자로 사는지 이제 이런 내용들이 저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호접지몽 나비의 꿈이라고 이름을 닉네임을 붙였는데 이제 좀 줄여서 나비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혜인 피디: 두 분께서처음 다큐멘터리 출연을 제안받으셨을 때 쉽게 참여를 결정하실 수 있으셨나요?
강선화 님: 제가 5년 전에 그 아이의 커밍 아웃을 받고 한 달 만에 부모 모임을 가게 됐는데 그때 이미 다큐멘터리 영화가 시작이 될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카메라가 있었고 그때는 사실 좀 두려웠죠 시작 제가 얼마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 꺼려지기도 했지만 이제 제가 몇 달을 계속 매달 매달 참여를 하다 보니까 제가 처음에 아이의 커밍아웃을 받고 힘들었던 게 제 주위에서 성소수자나 성소수자 부모를 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게 저한테 굉장히 어려운 점이었던 것 같아요. 고립감이나 외로움이 되게 컸었거든요. 처음에 아이의 커밍아웃을 받고 나서 그래서 어떤 우리 단체 성소수자 부모 모임이라는 이 단체가 영화로 기록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면 저 같은 어떤 커밍아웃을 받은 부모가 처음에 어려움을 좀 덜 겪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작업이 꼭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때는 처음에 영화를 만들 때는 저희가 주인공이 아니라 원래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는 게 시작 의도였거든요. 네 그래서 저도 마땅히 그 영화의 n 분의 1은 해야 된다 네 주인공은 아니지만 내가 나와서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짐으로써 좀 사람들의 차별이나 편견을 없앨 수 있다면 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이 사실은 좀 있었고 그때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라고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결정이 쉽게 됐던 거 아닌가 처음부터 아마 주인공으로 찍자고 했으면 되게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근데 그러고 한 2년 정도 감독님하고 어떤 신뢰 관계를 다 쌓은 다음에 감독님이 이후에 이제 비비안 님하고 나비 님을 주인공으로 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가지고
나혜인 피디: 시간이 꽤 됐네요. 촬영한 기간이? 2년이면?
강선화 님: 촬영을 4년 정도 했으니까… 네 그래서 한 2년쯤 지났을 때는 또 제가 더 많이 성장해 있던 상태였고 저도 이제 좀 단단해져서 뭔가 용기 있게 나를 확실히 좀 더 드러낼 수 있다는 마음도 생겼고 그래서 그때부터는 오히려 주인공이 됐다고 했을 때 되게 기뻐했죠.
나혜인 피디: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과거를 많이 뒤돌아 보실 것 같아요. 두 분은 자녀를 키우면서 이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셨어요? 아니면 이후에 뒤돌아보니 뭔가 암시했던 순간들이 있으셨나요? 나비 님부터 좀 말씀을 해 주시죠.
정은애 님: 저는 처음에 저희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여자아이한테 계속 연애편지를 쓰는 걸 보고 저희 아이가 레즈비언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레즈비언 특별히 이제 문제없는데라고 생각을 했었죠. 왜냐하면 제가 중학교 때 레지비언 친구를 봤었거든요. 그래서 별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혜인 피디: 여기까지도 굉장히 사실 현 한국 사회와 비교해 본다면 오픈 마인드 되신 것 같아요.
정은애 님: 제가 아마 그런 친구를 봐서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어요. 주변에서 이미 봤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스물네 살 정도의 센스 씨도 이걸 얘기했고 뒤돌아보니 어렸을 때부터 그런 젠더 표현을 했었거든요. 남성이라고 근데 제가 그런 것들을 되게 좀 혐오 발언을 했던 것 같아요. 그건 아마 주변에 트랜스 젠더를 못 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아이가 24살에 그 얘기를 했을 때 비로소 좀 당황스러웠지만 트랜스젠더이구나 그러면 도와줘야지라고 뒤늦게 생각했고 그래서 제가 영화에 출연을 하게 되기도 했죠. 왜냐하면 그동안 못 봤기 때문에 제가 저희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이제 조금 약간 남성처럼 젠더 표현을 하면 좀 뭐라고 했거든요. 혐오 발언도 했고 그래서 되게 힘들게 살았죠. 알았더라면 제가 중학교 때 레즈비언 친구를 봤기 때문에 저희 아이가 레즈비언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트랜스젠더를 주변에서 봤더라면 저희 아이가 어렸을 때 저 같으면 도와줬겠죠. 몰라서 그런 혐오 발언을 했고 아이한테 상처를 많이 준 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 가시화 운동을 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혜인 피디: 비비안 님은 어떠세요. 과거를 되돌아보신 적 있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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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화 님: 저는 영화에서도 좀 제 모습이 그렇게 나오는데 저는 정말 단 한 번도 0.1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던 일이어 가지고 처음에 커밍아웃을 받았을 때 충격이 되게 컸었거든요. 그러니까 살면서 난 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봤을까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저희 아이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어떤 그런 개이다운 어떤 그런 모습들을 되게 많이 보여줬어요. 저한테 그런데도 제가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는 거는 제가 뭔가 성소수자에 대한 어떤 나쁜 생각 편견 같은 걸 갖고 있었나 봐요. 저도 모르게…
나혜인 피디: 그냥 우리 인식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죠.
강선화 님: 그래서 제가 나비 님하고 이런 얘기를 이제 나누면서 ‘난 왜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상상하지 않았을까?’ 이랬더니 ‘좋은 거면 했겠지? 좋은 거면 상상했겠지?’ 그런 뼈 때리는 말씀을 하셔가지고 제가 그렇구나 뭔가 아이가 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의사가 될지도 몰라 뭐 이런 상상을 하잖아요. 근데 제가 한 번도 상상을 못했다는 건 제가 어쨌든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제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거죠.
나혜인 피디: 말씀하신 처음 자녀의 커밍 아웃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다큐멘터리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요. 이런 충격을 극복하고 아이의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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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화 님: 저는 이 질문지를 받고 생각해 보니까 딱 떠오른 거는 딱 한 가지였어요. 제가 충격을 받은 것보다 아이가 처음에 본인이 남성에게 끌림을 느꼈을 때의 그 충격은 천 배 만 배 크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아이가 느꼈을 그 충격과 힘듦에 대해서 생각이 됐어요. 제가 처음에 제가 좀 힘들었지만 금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 본인이 남들과 뭔가 다르고 또 아이도 그 시간까지 한국에서 자라오면서 자기 안에 들어 있던 편견이 있을 거 아니에요. 성소수자에 대한 고스란히 그 편견을 가지고 차별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그 존재라는 걸 본인이 깨달았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런데도 부모에게도 말을 못 하고 7년 동안 이걸 되게 힘들어하면서 자기 부정의 시간을 겪었다고 이제 저희 아이가 커밍하고 편지에 적었거든요. 네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나는 나를 부정하고 그냥 이성애자가 돼야 되겠다고 엄청 노력을 많이 했대요. 스스로 근데 그게 결국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의 히스토리를 듣고 아이가 느꼈을 그 힘듦이나 어떤 고통에 제가 되게 공감을 하게 됐어요. 저보다 훨씬 더 힘들었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할 거는 아이의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닌데 이 사회가 우리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든 거니까… 이런 사회를 좀 바꿔 나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이르렀던 것 같아요.
나혜인 피디: 우리 나비 님은 어떠셨어요?
정은애 님: 저는 저희 아이가 그렇게 얘기를 한번 울면서 한 적이 있어요. 트랜스젠더는 언제 어디서 돌을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어 그래서 그만큼 힘들다는 표현인 거예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인천 퀴어 축제에 가서 제가 진짜 맞았거든요. 저희 아이랑 맥주 대낮에 경찰이 저쪽에 있는데도 맞으면서 그쪽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봤더니 그 혐오 세력들이 이제 혐오하시는 분들이 하나님의 법이 사람의 법보다 위에 있으니까 이렇게 해도 된다고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아 이건 정말 상징이나 과장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구나… 실존이구나… 얘네들은 정말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상황에 놓여 있고 그만큼 힘들어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라면 부모라도 도와줘야지 그 생각을 하게 돼서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 같아요. 또 실제로 그런 타인에 대한 폭력 외에도 스스로가 이런 굉장히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잖아요. 지지 받지 못하고 혐오 받는 그런 상황에서 실은 조심스럽지만 자살률도 되게 높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도 있을 만큼 그래서 그런 상황도 성소수자들이 또 되게 자살률이 높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부모라도 조금이라도 도와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혜인 피디: 만약 자녀가 성소수자라고 어렴풋이 짐작을 하거나, 아니면 자녀가 커밍아웃을 했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한 다른 부모님들께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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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애 님: 저는 어떤 작가님이 말씀하신 건데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부모를 지레 짐작하지 않고 자식의 넓은 세계에 초대하는 일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거든요. 정말 부모님에게 성소수자임을 알린다는 건 정말 큰 선물인 거고 자식의 특별함을 부모님이 알게 하는 기회거든요. 저희 부모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세요. 우리 성소수자 자식은 신이 주신 스페셜 에디션이다. 우리 특별한 자식들을 통해서 정말 그러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넓은 세계를 알고 세상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을 자식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기회다고 얘기하는데 쉽게 이 부분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한번 다시 그런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고 또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가 갑작스럽게 커밍아웃을 받고 충격을 받은 그 순간보다 더 많은 오랜 시간을 아이들은 힘들어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민을 했던 부분을 부모님들이 좀 알고 아이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사랑과 이해의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혜인 피디: 네. 비비안 님?
강선화 님: 네 저는 제가 GV(관객과의 대화) 같은 데서 또 여러 차례 한 얘기긴 한데 자식들에게 부모는 첫사랑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보니까 그래서 부모에게 뭔가 인정받고 지지 받고 응원받고 싶은 그 마음이 너무 크대요 그래서 사실은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도 그 지지와 응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있어도 하게 되는 거죠. 그 큰 응원이 필요해서 그래서 나빈 님 말씀하신 대로 저는 아이가 부모에게 만약에 커밍 아웃을 했다면 크게 기뻐하셔야 될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부모를 너무 신뢰하고 너무 사랑하고 너무 의지하고 싶으니까 부모에게 내 얘기를 하는 거니까 선물같이 잘 받아들이시고 아이와 뭔가 이전과는 다른 굉장히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새롭게 맺을 수 있는 어떤 기회일 수도 있거든요. 저도 아이의 커밍아웃을 받고 아이와 저의 그 종속적인 관계가 완전히 이제 무너졌고 되게 평등하고 대등한 시민 대 시민으로서의 관계를 맺어가게 되더라고요. 이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그래서 그런 굉장히 좋은 관계로 나아가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임을 잊지 마시고 꼭 이 기회를 잘 잡으시기 바랍니다.
나혜인 피디: 네 2022 마디그라 영화제에서 현재 온디맨드로 상영되고 있는 한국의 다큐멘터리입니다. 너에게 가는 길 한국에서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님 두 분 우리 정은애, 강선화 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오늘 두 분과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은애 님: 감사합니다.
강선화 님: 감사합니다. 영화 많이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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