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책갈피: "이겨내지 못해도 괜찮아"...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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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 불안을 '젤리'로 풀어낸 기발한 상상력 속에서, 결국 사람을 돌보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정세랑의 명랑 감동 환타지 소설. 동명의 네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SBS 오디오 책갈피. 한국어와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BS 오디오 책갈피 유화정입니다.

혹시 그런 순간, 있으신가요.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무거운 날, 이유 없이 짜증이 올라오는 순간,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하루 종일 따라다닐 때. 만약 그 감정들이 눈에 보이는 ‘무언가’라면 어떨까요? 손으로 밀어낼 수도 있고, 피해 갈 수도 있고, 어쩌면… 직접 맞서야 할지도 모르는 존재라면요.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그 상상을 아주 유쾌하게, 그리고 놀랍도록 따뜻하게 풀어낸 책. 정세랑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만나 봅니다.

사립 M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보건교사 안은영. 그녀는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다는 것. 이 젤리는 사람의 욕망과 상처, 기억이 뒤엉켜 만들어진 일종의 감정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안은영은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으로 이 기묘한 존재들을 물리칩니다. 이 설정만 보면가볍고 엉뚱한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점점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깊어집니다.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줍니다. 왕따, 학업 스트레스, 말로 꺼내기 어려운 폭력과 상처들. 작가는 이 무거운 이야기들을 ‘젤리’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드러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게 만듭니다.

주인공 안은영은 밝고, 씩씩하고, 그리고 아주 다정합니다. 열 살 무렵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고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씩씩하게 잘 이겨냈습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 능력을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 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조용히 함께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학교재단 손자이자, 한문 교사 홍인표. 그는 은영을 보호하는 힘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리고 지칠 때, 다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큰 사고가 나 다리 한쪽을 접니다.

할아버지는 유언으로 학교를 지키고 꼭 선생님이 되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학교는 헤어진 젊은이들이 몸을 던지던 연못 위에 지어졌고, 여러 형태의 악귀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악귀를 물리치는 무기가 비비탄총과 장난감 칼이고 에너지는 인표의 손을 잡으면 충전됩니다. 은영과 인표는 악귀를 물리치며 기운이 약해질 때마다 에너지 충전을 해 주며 서로에게 무심한 듯하면서 서서히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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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조금 더 읽다 보면, 이런 말도 이어집니다. “져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이 문장들은 마치 누군가가 우리에게 조용히 건네는 말처럼 들립니다. 늘 버텨야 한다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고 믿어 왔던 우리에게 가끔은 그만해도 된다고 말해 주는 목소리. 그래서 이 소설은 퇴마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돌봄의 이야기입니다.

해외에서도 이 작품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영문판 'School Nurse Ahn Eun-young'으로 번역되며 "기묘하지만 따뜻한 이야기",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신선한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해외 독자들이 '젤리'라는 소재에 열광했다는 점인데요. 서구권의 무서운 악령과는 달리, 한국의 일상적인 욕망을 시각화한 이 독특한 세계관이 그들에게는 매우 힙하게 다가갔던 것이죠.

또한 '나를 지켜주는 다정한 이웃 영웅'이라는 키워드가 인종과 언어를 넘어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작품은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제작되며 전 세계에 소개됐습니다. 원작의 독특한 리듬과 색감을 영상으로 풀어내며 또 다른 방식의 재미를 만들어냈습니다.

School Nurse
School Nurse Ahn En-young NETFLIX

정세랑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로지 쾌락을 위해 쓴 소설입니다. 읽는 분들도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다정한 시선을 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는 안은영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끝내 없애기보다 조금은 이해해 보려는 마음. 그 작은 태도 하나가 우리의 하루를 조금 덜 버겁게 만들지 않을까요?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기발한 설정으로 현실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가 정세랑의 명랑 감동 환타지 <보건교사 안은영>과 함께했습니다. 책갈피 하나 여러분 곁에 놓아 드렸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상단 오디오에서 오디오 책갈피 팟캐스트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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