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오디오 책갈피. 한국어와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책 속 한 문장, 삶의 한 페이지. 여러분 마음 한켠, 작은 책갈피 하나 꽂아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화정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그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이 얼마나 멀리, 또 얼마나 깊이 흘러가는지를 견디는 일이기도 하죠.
오늘 오디오 책갈피에서 만나볼 작품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우주라는 가장 먼 거리 위에 올려놓은 이야기입니다. SF라는 장르를 통해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들려주는 작품, 오늘은 김보영 작가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함께 합니다.
이 이야기는 결혼을 앞둔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리며 써 내려간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배경은 머지않은 미래, 성간 여행이 가능해진 시대입니다.
여자는 가족과 함께 알파 센타우리로 떠나야 하고, 왕복에는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남자는 결심하죠.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다림의 배’에 오르기로. 빛의 속도에 가까운 항해를 통해 시간을 압축하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으며..
하지만 우주에서의 시간은 인간의 계획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작은 사고 하나, 사소한 지연 하나가 쌓일 때마다 시간은 조금씩 어긋나고, 그 어긋남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간격이 됩니다.
처음에는 4년, 그리고 4년 6개월..끝내 그의 기다림은 11년으로 늘어납니다. 한 시간은 하루가 되고 하루는 한 달이 되고, 그렇게 시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 버립니다.
우주 한가운데서 그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편지뿐입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말들을 그는 계속해서 써 내려갑니다.
“문득 전에 했던 생각이 났어. 시간을 넘는 건 공간을 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이제 알 것 같아. 나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과거의 어느 시간대에 남겨졌고,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 사이 지구 역시 변해 갑니다. 환경은 무너지고, 세상은 얼어붙은 듯한 빙하기로 향해 나아갑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다립니다.
이 소설이 깊이 와 닿는 이유는 이 편지들이 결코 독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 그를 기다리고 있을 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혼자가 아닐 때 비로소 의미를 갖지요.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결혼을 약속했던 장소, 그 교회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짧은 메모. “내가 여기 있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지만 어쩌면 끝내 바꾸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에게 묻는 것은 작고도 깊은 질문입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나요?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서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나요?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쌓여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소설을 덮고 나면 한 편의 시가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이여 /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 너는 지금 오고 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입니다.
기다림은 서로를 향해 가는 또 하나의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디오 책갈피, 오늘은 김보영의 SF 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함께했습니다. 여러분 마음 한켠에 오늘도 작은 책갈피 하나 남겨졌길 바라며 지금까지 유화정이었습니다.
상단 오디오에서 오디오 책갈피 팟캐스트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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