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 파라과이에서 성장한 뒤 호주에서 역사학자가 된 커틴대학교 박혜진 교수. 의사의 길을 내려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역사학을 선택한 그는 남미 한인 이주사와 호주·한국 관계사를 연구하며 떠나온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Key Points
- 파라과이에서 자란 커틴대 박혜진 교수…의사에서 역사학자로 인생을 바꾼 이유
- 남미 한인 이민사와 호주-한국 교류사를 연구하며 디아스포라의 역사 기록
- "한국이라는 영토는 작지만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개념은 매우 넓다"
한국에서 태어나 남미 파라과이에서 성장한 뒤 현재 서호주 커틴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역사학자 박혜진(Hea-Jin Park) 교수. 의사에서 역사학자로의 과감한 진로 전환 뒤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랜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한국 정부 주도의 남미 농업이민 정책을 통해 파라과이로 이주한 박 교수는 아홉 살 때부터 밀림 속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지금도 파라과이에 처음 도착했던 날을 떠올리며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고 회상했습니다.

파라과이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재외동포재단 장학생으로 한국에 와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꿈꿔왔던 모국은 생각보다 낯설었습니다.
박 교수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부산 억양이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졌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스스로를 그 틀에 맞추려 노력할 때였다"고 돌아봤습니다.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박 교수는 자신이 자란 파라과이 농장과 남미 한인 이주 역사를 찾아보기 위해 재외동포 관련 서적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책에는 자신이 자란 농장이 '잘못된 이민자 선정으로 실패한 사례'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박 교수는 이를 보고 "우리 아버지와 그곳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의 삶은 무엇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충격은 단순히 역사 기록에 대한 문제의식을 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내가 한국에 남았으면 어떤 사람이 됐을까, 나는 도대체 누구지"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박 교수는 결국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결심에 이르렀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나라는 환자를 먼저 고쳐야 되겠구나."
박 교수는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해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큰마음을 먹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의사 집어치웁니다"라고 말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의학 대신 역사학을 선택한 그는 한국에서 만난 남편의 고향인 호주에서 새로운 학문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사 연구를 통해 한국 정부 주도의 남미 농업이민과 자신이 자란 농장의 역사를 다시 추적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왜 내가 그 농장에서 자라게 됐는지, 그리고 그 농장이 가지고 있는 역사를 알게 되니까 어느 정도 치유가 됐던 것 같다"며 자신의 연구가 곧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박 교수의 연구는 남미 한인 이주사를 넘어 호주와 한국을 잇는 사람들의 역사로 확장됐습니다. 부산 일신기독병원을 세운 호주 선교사 맥켄지 자매를 비롯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록의 디지털화, 콜롬보 플랜, 호주와 한국의 다양한 인적 교류를 연구하며 양국 관계의 숨은 역사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특히 해외 한인들의 역사가 더 많이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고국을 떠나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던 이민 선배들, 대선배들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해외 한인들의 삶과 희생 역시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함께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이라는 나라는 영토는 작지만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넓다"며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다양성이 공동체의 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혜진 교수와의 전체 인터뷰는 상단의 오디오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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