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인: 왜 요즘 청춘은 '할머니처럼' 살고 있을까? '그랜마 에라'

Woman Knitting

Woman Knitting Credit: Jeffrey Coolidge/Getty Images

AI와 속도의 시대, MZ세대는 자극과 효율을 줄이고 전통·느림·안정의 리듬을 택하는 ‘Grandma Era’를 통해 불확실한 일상을 버티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Key Points
  • 그랜마 에라는 일시적 ‘레트로 유행’이 안니 삶의 리듬 재설계
  • '근본이즘'이 선택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삶의 주도권 회복 위한 통제감
  • 번아웃 이후 다시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 관리이자 심리적 생존 전략

최근 전 세계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할머니의 삶’을 동경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그랜마 에라(Grandma Era)’입니다.

빠름과 자극 대신 평온과 안정, 예측 가능한 일상을 택하는 움직임으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랜마 에라는 단순한 복고 유행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생활 전략에 가깝습니다.

이른 저녁 식사와 퇴근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 뜨개질이나 화초 가꾸기 같은 정적인 취미는 심신의 피로를 낮추고 삶의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얼리 디너’와 ‘밤 9시 취침 루틴’이 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틱톡의 ‘Grandma Era’ 해시태그도 수천만 회 이상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경제적 패배주의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도한 경쟁과 자극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속도 조절 역시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분석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호주 사회에서도 그랜마 에라는 세대를 넘어 통하는 삶의 지혜로 읽힐 수 있습니다.

Grandma Fani sitting under her lemon tree.
Grandma Fani sitting under her lemon tree. Source: Supplied

할머니의 느린 일상은 뒤처진 삶이 아니라, 오래 버텨온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와 함께합니다.

상단의 팟캐스트를 통해 전체 내용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호주 공영방송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한국어 프로그램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세요.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SBS Audio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매일 방송되는 한국어 프로그램 전체 다시듣기를 선택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SBS 한국어 프로그램 팟캐스트는 여기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 ‘할머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시나요? 따뜻한 아랫목, 서두르지 않는 손길, 그리고 변함없이 건네지는 환대. 이런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하죠. 최근 전 세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할머니의 삶’을 동경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습니다.이름하여 ‘그랜마 에라(Grandma Era)’, 할머니 시대입니다. 화려한 명품 대신 할머니의 누빔 조끼를 선택하고, 빠름보다 평온을 택하는 이들.

- 불확실성의 파도 속에서 심신의 안정을 갈구하는 MZ세대의 선택은 이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청춘들은 ‘가장 늙은 방식’으로 가장 ‘젊은 위로’를 받고 있는 걸까요. 오늘 컬처인에서는 그랜마 코어를 넘어, 그랜마 에라의 이면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지난주 컬처인에서는 요즘 세계적인 유행이 되고 있는 한국의 할머니 김장 조끼 이야기를 나눠봤었죠.

- 그렇습니다. 할머니 김장 조끼와 유사한 형태의630만 원짜리 이탈리아 명품 발렌시아가 조끼부터, 아마존·레딧·틱톡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꽃무늬 누빔 조끼’, 심지어 ‘김치 조끼, Kimchi vest’라는 이름으로까지 검색되고 있는 현상들을 살펴봤는데요. 해외 MZ세대 사이에서는 한국의 ‘할머니 조끼’가 ‘촌스럽지만 귀여운’ 빈티지한 매력을 가진 필수 패션 아이템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할머니들의 겨울 조끼가 전 세계에서 하나의 K-정서로 소비되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할머니 감성이 더 이상 옷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요즘은 식사 시간부터 취미, 하루를 보내는 방식까지 점점 ‘할머니의 삶’을 닮아가면서 이런 신조어도 등장했죠. 바로 ‘그랜마 에라’, 할머니 시대인데요.

- 맞습니다. 단순히 빈티지 매력을 즐기는 패션을 넘어서 젊은 세대의 삶 자체가 점점 ‘할머니 모드’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랜마 에라는 단순히 복고 감성을 즐기는 유행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삶의 속도를 다시 조절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빠름과 자극 대신,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선택하는 거죠.

- 앞서2026 트렌드를 짚어본 컬처인 내용 중에 ‘근본이즘’이란 키워드가 있었는데요. 할머니 모드를 따라가는 것. 같은 맥락의 흐름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요?

-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처음’, ‘기본’, ‘진짜’를 찾죠.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첨단의 시대일수록 다시 한번 가장 근본적인 것들, 원조의 가치를 찾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는 의미이죠. AI와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전통과 원조, 그리고 오래 검증된 방식에 끌리게 됩니다. 할머니 세대의 감성을 MZ세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즐기는 ‘할매니얼’ 트렌드 역시 이 근본이즘 흐름에 속합니다.

- 왜 하필 지금, 청춘들은 ‘가장 나이든 방식’으로 가장 ‘젊은 위로’를 받고 있는 걸까요?

- 사실 그 답은 할머니의 삶 속에 있습니다. 느리지만 그만큼 실패 확률이 낮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그래니 에라는 단순한 과거로의 도피가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미래를 버티기 위해 선택한 생활 전략에 가깝습니다. 경제적 부담으로 대외 활동과 소비를 줄이고, 사적인 공간에서 안정을 추구하며, 스트레스 회피를 통해 건강에 몰두하는 MZ세대의 이른 ‘할머니 라이프’는 심리적 생존 전략으로 풀이되곤 합니다.

- 그렇다면, 그래니 에라의 구체적인 일상, 이런 흐름이 실제로 삶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 실제 사례를 보면 바로 이해가 쉬운데요. SNS에는 요즘 직장인들이 저녁 식사를 오후 4~5시에 하고, 퇴근 후 집에서 운동이나 TV를 보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자주 올라옵니다. 일찍 먹으면 속도 편하고, 번잡한 시간대를 피해 조용한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외출도 줄고, 귀가도 빨라졌는데요. 즉, 생활 자체가 느리지만 안정적인 ‘할머니 루틴’으로 바뀌고 있는 겁니다.

- 핵심 키워드를 꼽아보면 세 가지로 요약되네요. 자극 최소화, 에너지 관리, 그리고 통제감.

- 그렇죠. 밖에 나가면, 돈도 쓰게 되고 정보도 쏟아지고, 사람도 많고 선택도 많아서 금방 지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안으로 들어와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드는 게 편해진 거죠.

- 하지만 사실 젊음이라고 하면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열기나 에너지가 먼저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이게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트렌드라면서요?

- 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 통계가 있는데요. 뉴욕의 유명 식당들의 저녁 예약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밤 8시 예약은 줄고, 오후 5시나 6시 예약이 치열해진 건데요. 미국의 식당 예약 플랫폼 오픈테이블을 보면, 오후 5시 저녁 예약 비율은 지난해보다 11% 증가했습니다. 보통은 오후 6시나 7시 예약이 많은 편이죠.

- 원래 노년층 식습관으로 여겨졌던 ‘이른 저녁’이 뉴노멀로 자리 잡은 거군요.

- 그렇습니다. 실제로 미국 소비자 조사에서 Z세대 53%, 밀레니얼 51%가 얼리 디너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X세대와 베이비붐 세대(37%)를 훌쩍 앞섰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 가디언도 “양로원에서나 볼 수 있던 5시 석식이 최근 불고 있는 MZ세대의 가장 놀라운 복고 트렌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영국과 미국의 Z세대들 사이에서는 밤 9시면 모든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드는 ‘나인 피엠(9 p.m.) 루틴’이 유행입니다.

- 생각해 보면 요즘 청춘들이 가장 원하는 건 ‘더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덜 지치고 사는 법’일지도 모르겠네요.

- 젊은 층의 건강 염려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지금부터 챙겨야 노후에 신체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고생을 덜 할 것 같다는 생각이죠. 팬데믹 이후 원격·탄력 근무가 늘면서 생활 속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심신의 안정을 갈구하는 움직임이 신세대 사이에서 거세지며 가장 안온한 삶의 방식을 선호하게 된 것이죠. 퇴근 후 일찍 귀가해 음식을 만들고, 화초를 가꾸고, 뜨개질이나 정적인 취미를 즐기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 SNS에는 이런 일상을 공유하는 영상들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죠. 최근 틱톡에서만 ‘Grandma Era’ 해시태그가2천만 회 이상 사용됐다고 하던데요.

- 맞습니다. 요즘 SNS에는 뜨개질이나 십자수를 놓는 영상이나 화초를 가꾸고 빵을 굽는 영상들, 또 “친구가 밖에 나가 놀자고 할 때”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등의 영상을 찍어 ‘Grandma Era’ 태그를 붙이는 게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한 젊은 남성이 집에서 뜨개질에 몰두하는 영상 말미에는 “어느새 뜨개질을 멈출 수 없게 됐다면 당신은 이미 그랜마 에라에 진입한 것입니다.”라는 자막이 뜹니다. 따뜻한 차 한 잔, 직접 만든 간식, 느린 손놀림으로 뜨개질을 하거나 화초를 돌보는 시간. 이런 ‘할머니의 일상’은 사실 굉장히 안정적인 루틴입니다. 빠르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고, 성과를 바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죠. 그냥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는 방식이니까요. 이것이 요즘 청춘들이 가장 찾는 ‘젊은 위로’입니다.

- 결국 ‘그랜마 에라’는 할머니처럼 산다기보다는 할머니들이 이미 알고 있던 생활의 요령을 젊은 세대가 다시 꺼내 쓰는 느낌인 거네요.

- 맞습니다. 단순한 옛것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할머니 세대의 삶과 감성을 MZ세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생활 전략입니다. 전문가들은 빠름과 자극 대신 신뢰할 수 있는 루틴과 본질을 선택하며,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심신의 안정과 만족을 찾는 청년들의 현명한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 반면, 일각에서는 ‘청춘이 너무 일찍 움츠러드는 거 아니냐?’, ‘경제적 패배주의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죠.

- 실제로 일부 재테크·경제 전문가들은 ‘그래니 에라’를 문화가 아니라 경제적 패배주의의 신호로 보기도 합니다. 기회와 아이디어는 부딪힘 속에서 생기는데, 집 안의 안온함을 트렌드로 포장하는 건 미래의 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다만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지금, 잠시 속도를 늦추고 자기 삶을 돌보는 선택 역시 이 시대 청춘들에게는 하나의 생존 방식일 수 있지 않을까요? 할머니들의 느린 일상은 뒤처진 삶이 아니라, 오래 버텨온 삶이었으니까요.

- 그러니까 그랜마 에라는 무언가를 포기해서 생겨난 유행이라기보다 가장 오래 검증된 삶의 방식, 즉 할머니들의 느린 일상의 리듬을 빌려 오늘을 무사히 건너며 조금 더 단단하게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해보겠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END OF TRANSCRIPT

Share

Follow SBS Korean

Download our apps

Watch on SBS

Korean News

Watch it onDemand

Watch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