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인: 할머니 김장 조끼, 630만 원짜리 명품으로 변신?

FRANCE FASHION

A model sports an grey top and an embroidered vest during Valentino's fall/winter ready-to-wear collection presentation in Paris (AP Photo/Remy de la Mauviniere) Credit: AP

할머니 '김장 조끼'가 630만 원대 발렌티노 신상으로 변신했습니다. 이를 둘러싼 명품 브랜드의 문화 재해석과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논란을 짚어봅니다.


Key Points
  • 할머니 김장 조끼 한국 시장서 5000원인데, 630만원짜리 명품 등장?
  • 블랙 핑크 제니 등 아이돌 착용 후 글로벌 유행, 해외 Z 세대 패션템으로
  • 해외 명품들 너도나도 K핫템 선보여…문화 전유인가, 문화 재해석인가?

할머니 옷장에서 막 꺼낸 듯한 ‘김장 조끼’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의 신상품으로 등장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꽃무늬 누빔 원단에 퍼(fur) 디테일을 더한 이 베스트는 한국의 겨울 생활복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으로, 가격은 약 630만 원에 책정됐습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K-패션의 세계화”라는 평가와 “과한 문화 차용이자 마케팅”이라는 비판이 엇갈리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Vests by Valentino (left) and Moncler.
Vests by Valentino (left) and Moncler. Images captured from their official websites.

논란과 별개로 김장 조끼는 이미 M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블랙핑크 제니, 에스파 카리나 등 아이돌 착용을 계기로 ‘김장룩’이 확산됐고, 지난해 11월 ‘김장 조끼’ 검색량은 전달 대비 약 699% 증가했습니다.

보온성과 활동성을 갖춘 실용성, 1만 원대의 가성비, 그리고 촌스럽지만 정감 있는 ‘반전 미학’이 인기 요인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이 유행은 씁쓸한 장면도 남겼습니다. 할머니 집밥 콘셉트의 한 식당에서는 손님용으로 비치해 둔 꽃무늬 조끼가 반복적으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김장 조끼가 단순한 옷을 넘어 돌봄 노동과 세대의 시간을 상징하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전통과 문화를 소비하는 우리의 태도, 그리고 그 가치를 누가 정의하는지 다시 묻게 합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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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옷장에서 막 꺼낸 듯한, 오래된 조끼 하나가 가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의 신상품이 됐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김장 조끼와 많이 닮은 디자인이었는데요. 가격은 무려 630만 원이었습니다. 이 변화, 패션일까요? 아니면 문화일까요? 오늘은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된 이 패션 이슈를 통해 문화와 자본, 그리고 전통의 의미를 함께 짚어봅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근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패션 뉴스 중 하나가 바로 ‘김장 조끼가 명품이 됐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게 정확히 어떤 일이었나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가 최근 공개한 베스트가 있습니다. 꽃무늬 누빔 원단에 브이(V)자 형태의 퍼 디테일을 더한 디자인인데요. 한국 소비자들 눈에는 겨울철, 특히 김장할 때 입는 실용적인 생활복과 매우 닮아 있다는 반응이 나왔고요. 가격은 발레티노 공식 홈페이지 기준 약 630만 원입니다.

이 사진이 퍼지자마자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죠.

네 “김장 조끼가 유럽 한 바퀴 돌겠다”, “우리 할머니들이 패션을 앞서갔다”, “디자인은 익숙한데 가격은 전혀 안 익숙하다” 같은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사실 누빔 조끼 자체가 새로운 옷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이슈가 된 이유는 뭘까요? 왜 이렇게 반응이 컸을까요?

핵심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옷’이라는 데 있습니다. 김장 조끼는 멋을 내기 위한 옷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일을 하기 위한 옷이었죠.

노동복이죠.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삶과 노동이 고스란히 담긴 옷입니다. 그런데 그 옷이 명품 로고를 달고, 누군가에게는 한 달, 두 달 월급을 훌쩍 넘는 가격으로 등장했을 때 강한 문화적 위화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익숙함과 가격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던 거군요. 그런데 이 논란과는 별개로 김장 조끼 자체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유행이었죠?

맞습니다. 유행의 직접적인 계기는 연예인 착용이었습니다. 블랙핑크 제니, 에스파 카리나, 소녀시대 태연 등 대표적인 아이돌들이 꽃무늬 누빔 조끼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김장룩’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퍼졌습니다. 또 실용성도 큰 인기 요인이었습니다. 초겨울에는 가벼운 외투로, 한겨울에는 아우터 안에 입는 보온 레이어로 활용 가능하죠. 겉감은 광택 폴리부터 면 누빔까지 다양하고, 패턴 역시 클래식 플라워, 모란 무늬, 전통 누빔 등 폭넓어 하나의 아이템으로 여러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가격도 대부분 5천원에서1만 원대 수준으로 ‘가성비템’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네 실제로 지난해 11월 기준 김장 조끼 검색약은 약 699% 700%까지 급증하며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습니다.

이쯤 되면 할머니 옷이 아니라 완전히 MZ 세대의 패션 아이템이네요.

맞습니다. 실제로 이번 유행에는 ‘할매니얼’, ‘촌캉스’ 같은 최근 소비 트렌드가 겹쳐 있습니다.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꽃무늬와 농촌 생활복 이미지가 오히려 힙한 빈티지로 재해석된 겁니다. 또 요즘 세대가 선호하는 ‘B급 감성’과 반전 미학도 한몫합니다. 익숙하지만 새롭고, 조금 웃기지만 정감 있는 스타일이죠.

예쁘다기보다는 정겹고, 재밌고, 무엇보다 사진이 잘 나온다. 그런 감각이군요.

네. 실제로 아마존, 레딧, 틱톡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꽃무늬 누빔 조끼(Floral quilted vest)’, 심지어 ‘김치 조끼Kimchi vest’라는 이름으로 검색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Z세대 사이에서는 한국의 '할머니 조끼'가 ‘촌스럽지만 귀여운’, ‘한국식 어글리 스웨터’로 인식되면서, 빈티지한 매력을 가진 필수 패션템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의 겨울 조끼가 세계에서 K-정서로 소비 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유행이 즐겁게 웃고 끝나지만은 않았죠. 최근 한 식당에서 조금 씁쓸한 사연이 전해졌다고요.

네. 좀 낯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할매카세’ 콘셉트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이 입고 벗도록 의자마다 비치해 둔 꽃무늬 조끼가 계속 사라진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술에 취한 손님이 실수로 입고 간 줄 알았는데, 어느 날은 한 번에7벌 이상이 사라졌고, 또 어떤 날은 한 팀이 4벌을 가져간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정이 넘쳐야 할 할머니 콘셉트가 도난 때문에 상처를 입은 셈이네요.

네. 유행이 커질수록 ‘문화 소비의 매너’라는 질문도 함께 커진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장 조끼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돌봄 노동, 가사 노동, 그리고 세대의 시간을 상징하는 옷입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했던 옷이었고,어떻게 보면 값으로 환산되지 않았던 노동의 풍경이기도 하죠.

김장 조끼가 이렇게까지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결국 여기에 있는 것 같네요.

맞습니다. 한국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의 생활복으로 인식돼 온 옷이 서구 명품 브랜드의 이름과 로고를 달고 수백만 원의 가격을 갖게 됐다는 점이 강한 대비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이 옷이 명품 런웨이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되는 거죠. “이 가치는 과연 누가 정의한 걸까?”

그런데, 패션계에서는 이런 일이 사실상 처음은 아니죠?

그렇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오랫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전통 의복과 생활 문화를 ‘영감’이라는 이름으로 차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차용을 넘어 문화 전유 (cultural appropriation), 즉 문화나 정체성을 차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출처를 밝히는지, 그 맥락과 이야기를 존중하는지, 그리고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문제죠.

문화 전유라는 비판이 나온 만큼, 재해석의 관점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재해석이 되려면 출처를 분명히 하고, 문화적 맥락을 존중하고, 또 그 문화가 가진 서사를 함께 전달해야 하는데요. 하지만 이번 사례는 ‘이국적 소재 + 명품 브랜드’ 공식에 가까웠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즉, 문화적 맥락은 빠지고, 가격과 이익은 브랜드가 가져간 구조라는 거죠. 또 전통적 맥락에 대한 설명이나 출처 표기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컬처인에서 다뤘던 옥스퍼드 영어 사전 한국어 단어 등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네요. 단순히 뜻만 적는 게 아니라, 그 단어가 언제 등장했고 어떤 맥락에서 쓰이기 시작했는지까지 기록했잖아요. 한국의 전통적 생활복임에도 그 전통적 맥락에 대한 설명이나 출처 표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확실히 아쉽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누가 해석권을 가지는가,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의 문제인데요. 김장 조끼 역시 ‘한국의 생활 문화’라는 맥락은 지워지고 ‘빈티지·레트로·에스닉’이라는 말로 재포장 됐죠. 할머니 김장 조끼가 전통적 의미 없이 명품 브랜드의 미학으로만 소개되고, 가격은 수백만 원에 책정된 점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패션계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죠. 앞서 유명 아이돌 연예인들의 할머니 조끼 착용도 언급해 주셨는데요.

네. 최근 패션계에서는 Granny Chic, Grandmacore처럼 ‘할머니 옷장’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포근함, 느림, 손맛,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 등 이러한 그래니 감성이 글로벌 트렌드가 되면서 김장 조끼 같은 아이템도 ‘촌스러운 옷’이 아니라 ‘감각적인 레퍼런스’로 소비되기 시작한 겁니다. 할머니 옷 뿐만 아니라 전통 약과처럼 할머니가 즐겨 먹던 간식, 손뜨개질과 같은 할머니의 취미, 할머니의 생활 리듬 등 이른바 ‘할머니 감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세대가 바로 MZ세대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정말 흥미로운데요. 왜 지금, 이 ‘할머니 감성’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소비되고 있을까요? 다음 컬처인에서는 젊은 세대가 왜 ‘이른 할머니 시대’를 선택하는지, 그 심리와 라이프스타일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오늘은 ‘김장 조끼가 명품이 되는 순간’을 통해 패션을 넘어 문화와 자본, 그리고 전통의 의미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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