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MZ세대는 왜 바비에게 하이힐을 벗겼을까?... 호주 모나쉬대, 세대 심리 조명
- '내 몸과 마음이 편 해야 진짜 아름답다'…아름다움이 기준이 '나 중심'으로
- 직업 바비일수록 평발 비율 높아져…여성의 사회 참여 반영
- 단순 인형 아닌 세대의 거울…다운증후근 바비와 같은 포용적 디자인 확산
하이힐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여성스러움의 아이콘이었죠.
그런데 최근, 화려한 하이힐 대신 플랫 슈즈를 신은 바비(Barbie doll)가 등장했습니다.
이게 단순한 패션 트렌드일까요?
세대가 바뀌면 인형도 바뀐다는 걸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인데요. MZ세대는 왜 바비에게 하이힐을 벗겼을까요?
오늘은 바비 인형의 신발 하나가 보여주는 세대의 변화에 대해 호주 모나쉬 대학교 연구팀의 분석을 바탕으로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문화로 세상을 보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합니다.
홍태경 PD: 최근 SNS와 글로벌 트렌드에서 바비 인형조차 ‘편안한 신발’을 선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화제인데요. 이렇게 바비 인형의 발끝이 바뀌게 된 데에는, 꽤 긴 역사가 있더라고요.
유화정 PD: 네, 바비 인형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의외로 꽤 깁니다. 1959년, 미국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이 처음으로 바비 인형을 출시했습니다. 한때 미국 3~12세 소녀의 90% 이상이 바비를 갖고 있을 정도였고, 전 세계적으로 10억 개 이상 판매됐습니다.
바비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여성의 꿈과 이상’을 담은 문화 아이콘으로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고 어린이들이 현실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운 증후군 바비 인형과 시각 장애인 바비 인형을 출시했습니다.
홍태경 PD: 매년 다른 바비 캐릭터가 눈길을 끌 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바비가 단순한 예쁜 인형만은 아니었다고요?
유화정 PD: 그렇습니다. 바비 제조사인 마텔은 ‘소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바비를 다양한 직업군으로 확장했는데요. 특히, 현실에서 여성 진출이 적었던 분야에 먼저 바비를 투입헸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달에 가기도 전인 1965년에는 ‘우주비행사 바비’를 선보였고, 미국 외과의사 중 91%가 남성이던1973년에는 ‘외과의사 바비’가 나왔습니다. 즉, 바비는 시대마다 여성에게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는 존재였던 거죠.
홍태경 PD: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바비 인형 하면, 하이힐에 늘씬한 몸매가 먼저 떠오르잖아요. 그 이미지가 다시 한 번 강하게 각인된 계기가 2023년 개봉한 미국 영화 <바비>였던 것 같아요. 특히 호주 배우 마고 로비가 주인공 바비 역을 맡아, 호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죠.
유화정 PD: 네, 바비 인형은 1959년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쭉 ‘하이힐’을 신고 있었죠. 언급하신 영화 <바비> 는 장난감 회사 마텔이 만든 인형 ‘바비’를 주인공으로, 바비랜드에서 현실 세계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이때 까치발을 하고 있던 바비의 발뒤꿈치가 처음으로 땅에 닿으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특히 마고 로비가 하이힐을 벗은 뒤에도 발끝이 까치발로 고정된 장면은 너무나 인형 같아서, ‘CG냐 실제 연기냐’ 논란이 있을 정도였고요. 이 장면을 따라 하는‘바비 발 챌린지’가 SNS에서 빠르게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Barbie is making her live action feature film debut this week. Source: AP / Warner Bros. Pictures
유화정 PD: 맞습니다. 그 변화는 단순한 인형 디자인을 넘어, 실제 과학 연구를 통해 분석되기도 했는데요. 호주 모나쉬대학교 연구진이 1959년부터 올해 6월까지 출시된 바비 인형 2,750종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 5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했습니다.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기존 연구들이 체형이나 피부색, 직업군에 초점을 맞췄던 반면, 이 연구는 '발 자세'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단, 이번 연구에서 오드리 헵번 바비와 같은 실존 인물 기반의 특별 에디션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홍태경 PD: 인형의 ‘발 자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니 꽤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연구진이 바비 인형의 발을 분석하기 위해 ‘FEET’라는 새로운 분류 체계를 개발했다고 하던데, 어떤 건가요?
유화정 PD: ‘FEET’는 Foot posture, Equity, Employment, Time period의 약자로, 발의 형태와, 성평등, 직업, 시대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분류 체계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바비 인형의 발의 각도를 정밀 측정한 결과, 바비 인형의 발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평평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1960~70년대 바비는 거의 100%가 ‘까치발 형태’ 까치발 형태였던 반면, 202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는 그 비율이 40%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어요. 결국, 점점 더 많은 바비 인형이 플랫슈즈나 운동화를 신을 수 있도록 ‘평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홍태경 PD: 정말 흥미롭네요. 그런데 모든 바비가 다 그런 건 아니겠죠? 어떤 바비일수록 플랫슈즈를 신게 되는 건가요?
유화정 PD: 네, 이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끌었는데요. 연구에 따르면, 직업을 가진 바비일수록 평발일 확률이 높았습니다. 즉, 패션 중심의 바비보다 현실적인 역할이나 직업을 강조한 바비들이 활동성이 높고, 그래서 편안한 신발을 신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변화의 타이밍은 1980년대부터 여성 고용이 급격히 증가한 미국의 상황과도 상관관계가 있었는데요. 장기간 서 있는 자세, 걷는 속도 증가, 더 큰 안전성 등 바비가 직장과 신체 활동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발 자세와 신발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홍태경 PD: 그럼 이건 단순한 인형 디자인 변화가 아니라, 사회 변화와도 연결된 거군요.
유화정 PD: 정확합니다. 연구팀은 이 변화가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서 여성 고용이 급증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분석했는데요. 구급대원 바비는 작업용 장화를, 인테리어 디자이너 바비는 플랫 슈즈를, 그리고 다운증후군 바비는 운동화와 발목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거든요. 이는 바비가 단순한 옷 갈아입히는 인형을 넘어서, 실제 상황에 맞는 ‘역할 수행’을 반영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죠.
연구진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바비는 움직임이 많은 날에는 플랫슈즈, 패션이 중심인 날에는 하이힐을 신는다. 이는 실제 사람들의 삶과도 매우 유사하다.” 바비의 발 모양조차도 여성의 사회 진출, 신체적 안전, 법적 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죠.

Barbie puts her best foot forward over the years – Monash University study
유화정 PD: 맞습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모나쉬 대학교 실리 윌리엄스 박사(Dr. Cylie Williams)는 영화 <바비>에서 영감을 받아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는데요. 놀랍게도, 연구팀 중 한 명이 무려 800개의 바비 인형을 소장한 수집가였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시대별,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의 바비 인형을 방대한 샘플로를 샘플로 확보할 수 있었는데요. 배우 정교한 비교 분석이 가능했습니다. 과학 연구에서 샘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잖아요. 이처럼 정량적이고 다양한 샘플 기반 덕분에, 단순한 인상비평이 아니라 통계와 문화 맥락이 결합된 분석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홍태경 PD: 보통은 패션이나 장난감 변화는 마케팅 전략쯤으로 여겨지기 쉬운데, 이걸 이렇게 본격적인 학술 연구로 접근했다는 점이 참 신선하네요.
유화정 PD: 연구팀은 바비의 하이힐이 시대마다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면서, 이제 하이힐은 더 이상 오늘날 여성의 ‘꿈’이나 ‘성공’의 상징이 아니다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플랫 슈즈가 현실성, 실용성, 다양성을 상징하게 됐다는 분석인데요. 이건 단순한 장난감 디자인 변화가 아니라, 소비자 가치관, 특히 MZ세대 여성들의 정체성과 연관된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거니다.
홍태경 PD: 결국, MZ세대는 왜 바비에게 하이힐을 벗기고 플랫 슈즈를 신겼는지…그 배경이 더 궁금해지네요.
유화정 PD: 이 부분이 이번 연구의 핵심인데요. MZ세대는 단순히 ‘기존 것을 거부하는 세대’가 아니라, 스스로 대안을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세대라는 분석입니다. ‘하이힐을 안 신는다’가 아니라 ‘하이힐을 언제, 어떻게 신을지 내가 정한다’는 거죠. 불편한 걸 참으며 꾸미기보다는, 내 몸과 삶을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런 흐름이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여성 정체성과 젠더 규범, 소비자 권리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했습니다.
홍태경 PD: 불편함을 감수해서 얻는 아름다움보다, 편안함 속에서 나다움을 찾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얘기네요.
유화정 PD: 이번 연구에서 또 흥미로웠던 건, 플랫 슈즈뿐 아니라 맨발 바비도 등장했다는 점인데요. 이건 단순히 신발을 벗긴 게 아니라, 그동안 억눌려온 기준이나 규범을 내려놓는 상징으로도 읽힙니다.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아름다움’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메시지인 것이죠. 요즘 세대가 추구하는 ‘멋’은 자기 돌봄, 웰빙, 그리고 내면의 만족감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홍태경 PD: 여러분은 오늘 어떤 신발을 신고 계신가요? 문화로 세상을 보는 컬처인, 오늘은 바비 인형의 신발 하나가 어떻게 세대의 심리와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오늘도 수고 많셨습니다.
호주 공영방송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한국어 프로그램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세요.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SBS Audio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