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보이지 않는 질환’ 자궁내막증, 호주 경제에 연간 최대 100억 달러 손실
- 통증으로 인한 결근·생산성 저하, 직장 내 인식 부족이 부담 가중
- 전문가 “조기 진단·직장 유연근무·여성 건강 투자 확대 시급”
유화정 PD: 우리 생활 속 경제 이슈를 쉽고 친절하게 풀어보는 친절한 경제 시간입니다.오늘은 ‘보이지 않는 건강 문제’지만, 호주 경제에 매년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일으키는 질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자궁내막증(endometriosis)인데요.호주 여성의 약 7명 중 1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지만, 여전히 진단과 치료가 어렵고 사회적 인식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 홍태경 프로듀서와 얘기 나눠봅니다.
유화정 PD: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질환이 호주 경제에 최대 1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일으킨다고 하는데요, 먼저 자궁내막증, 정확히 어떤 질환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해 주시죠.
홍태경 PD: 네, 간단히 말하면 자궁 안쪽을 덮는 ‘자궁내막’과 비슷한 조직이 자궁 밖에서 자라나는 질환입니다. 예를 들어 난소나 복부 안쪽에 생길 수 있는데요, 생리 주기 때마다 이 조직도 같이 반응하면서 심한 통증, 염증, 출혈이 생깁니다.
생리통이 단순히 심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픈 경우도 많다고 하고요. 문제는 겉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주변에서 “조금 참으면 되잖아” 하는 인식이 여전히 있다는 겁니다.
유화정 PD: 이 질환이 단순히 건강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로 주목받는 이유가 있죠?
홍태경 PD: 2019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연간 경제 손실이 74억에서 97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중 대부분이 의료비보다 생산성 손실, 즉 일을 못 하거나 효율이 떨어지는 데서 발생합니다. 통증 때문에 결근하거나, 출근은 했지만 제대로 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심한 경우 직장을 그만두거나,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유화정 PD: 결국 개인의 문제를 넘어 노동시장과 국가 경제 전체의 손실로 연결되는 거네요. SBS가 만나본 구체적인 사례가 있죠?
홍태경 PD: SBS 뉴스가 23세 박사 과정생인 레이첼 엘리너 호스킹 씨를 만났는데요,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는 레이첼 씨는 주말에 소매점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8시간씩 서 있는 것이 증상 악화에 치명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일터에서 실제로 극심한 통증 때문에 실신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하는데요 통증 완화를 위해 파라세타몰 약과 미세한 전기 자극을 주는 텐스(TENS) 기계를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Rachael Eleanor Hosking poses from a hospital bed on the day she received her endometriosis diagnosis. Living with endometriosis led her to pursue research in the same field. Credit: Supplied
유화정 PD: 그런데 이렇게 심각한데도 진단까지 걸리는 시간이 꽤 길다면서요?
홍태경 PD: 네, 평균 7년에서 1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통증이 심한 생리통으로 오해되기 쉽고, 의료진조차 진단을 늦게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직장 내 인식 부족입니다.
서던 크로스 대학교와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가 호주자궁내막증협회(Endometriosis Australia)의 지원을 받아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는 근로자 3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6명 중 1명은 진단으로 직장을 잃었고, 3명 중 1명은 질병 때문에 승진에서 제외되었다고 답했습니다.
애들레이드 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 안나 프래그코우디 연구원은 자궁내막증이 "보이지 않는" 질환이기 때문에 관리자와 상사들이 병가나 재택근무와 같이 통증을 관리하는 다양한 방법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안나 연구원은 S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궁내막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괜찮은데 왜 굳이 휴가를 써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화정 PD: 직장 상사나 동료가 이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결근이 반복되면 ‘열심히 안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홍태경 PD: 그렇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생산성 저하에 기여하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이 부각되는데요, 바로 '무단결근(absenteeism)'으로, 근로자들이 집에서 증상을 관리하기 위해 휴가를 내야 하는 경우이고, '프리젠티즘(presenteeism)'으로, 직장에 출근했지만 증상 때문에 업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스스로 증상을 감추거나, 남성 상사 앞에서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도입된 유연 근무제가 자궁내막증 환자의 생산성 향상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주자궁내막증협회(Endometriosis Australia) 모니카 포를라노 의장은 고용주의 ‘어느 정도 공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소한 것들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궁내막증이 악화될 때 출퇴근을 하면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지만 집에서 침대나 욕실 근처에서 재택 근무를 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따뜻한 물병에 물을 채울 수 있다면, 심지어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고 업무를 볼 수 있다면, 자궁내막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고,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화정 PD: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궁내막증 인식 직장 인증제도(workplace accreditation scheme)’도 생겼다고 하죠?
홍태경 PD: 정부도 최근 자궁내막증을 국가적 보건 전략에 포함시키고 연구비를 늘리고 있습니다. 특히 조기 진단을 위한 의료 교육 강화를 비롯해 여성 건강 클리닉을 확충하고 온라인 정보 플랫폼을 확대하는 등 여러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호주 최대 규모의 자궁내막증 자선단체인 호주자궁내막증협회(Endometriosis Australia)는 직장 내 자궁내막증 관련 낙인을 해소하기 위한 직장 인증 제도를 발표했습니다. 전국 모든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 교육 과정은 고용주를 위한 자궁내막증 교육과 직원 지원 강화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호주자궁내막증협회 이사회 모니카 포를라노 의장은 "자궁내막증 환자의 70%가 개인 휴가를 소진하여 무급 휴가를 사용해야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다"면서 자궁내막증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유화정 PD: 직원 복지나 근무 환경 개선에 관심 있는 기업이라면 꼭 참여해볼 만한 제도 같네요. 이런 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치료’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투자이기 때문이겠죠.
홍태경 PD: 맞습니다. 건강이 곧 경제고, 돌봄이 곧 성장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생산성 손실을 막는 건 단순히 GDP를 높이는 게 아니라, 사회의 포용성을 키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정책이 확대되면, 특히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 이유로 진단이 늦어지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한인 커뮤니티 여성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유화정 PD: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자궁내막증이 ‘여성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경제적 과제라는 점입니다. 통증을 참는 게 미덕이 아니라, 말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죠. 건강을 지키는 게 결국 경제를 지키는 길이라는 점 오늘 친절한 경제에서 짚어봤습니다.
상단의 오디오를 재생하시면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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