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오버임플로이드(다중취업)’ 확산… 한 사람이 일곱 개 정규직 병행하며 50만 달러 벌어
- 재택근무 시대, 숨은 다중 취업자 급증… 온라인 커뮤니티엔 50만 명 활동
- 경제적 자유의 이면엔 번아웃·해고 위험… “기업 문화 뒤흔드는 새 노동 트렌드”
나혜인 PD: 우리 생활과 밀접한 경제 이슈를 쉽고 친절하게 풀어드리는 〈친절한 경제〉 시간입니다. 오늘은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지고 있는 새로운 노동 트렌드, ‘다중취업, 오버임플로이드(Over-employed)’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장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요, 하루 20시간씩 일하면서 수십만 달러를 버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경제적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고충이 자리하고 있는 ‘오버임플로이드’, 오늘 ‘친절한 경제’에서 홍태경 피디와 함께 이 이야기를 짚어봅니다.
여러 가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엔잡러라고 부르죠. 그렇지만 대개 여러 개의 파트타임 잡을 갖고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풀타임 직업을 여러 개 병행하는 엔잡러들, 즉 ‘오버임플로이드’족이 생겨나고 있다고요?
홍태경 PD: 스스로를 '다중취업자, 오버임플로이드(overemployed)'라고 부르는 일부 호주인들은 고용주의 허락 없이 여러 개의 정규직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장시간 근무와 회사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대표적인 ‘오버임플로이드’ 사례로 SBS Feed가 만난 애쉬 씨가 있는데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애쉬 씨는 최대 7개의 직업을 동시에 가졌고, 심지어 그중 4개는 정규직이었다고 합니다.
나혜인 PD: 한 사람이 최대 일곱 개의 직업을 동시에, 그것도 4개의 정규직을 가졌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요,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홍태경 PD: 애쉬 씨는 호주의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인데요, 5개 이상의 직업을 가졌을 때는 애쉬 씨의 하루는 매우 정신없었습니다. 지난 5년간 여러 개의 직장을 동시에 병행해 오면서 하루 최대 20시간씩, 주 7일 내내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 이메일을 확인하고, 책상에서 아침을 먹으며 첫 직장의 업무를 8시 30분까지 처리하고, 그 뒤 정규직인 공무원 직장에 출근해서 업무를 하고, 점심시간이나 통근 시간에는 로비나 차 안에서 다른 직장 관련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퇴근길 운전 중에도 틈틈이 회의에 참석했고, 집에 도착해서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에 다시 컴퓨터를 켜고 새벽 1시까지 일한 후 3시간 정도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회의 시간이 겹칠 때는 항상 핑계를 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 핑계를 대거나, 아프다고 하거나, '인터넷 연결이 안된다거나 병원 예약이 있다”라고 핑계대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혜인 PD: 정말 극단적인 상황이네요. 건강이 걱정되는 스케줄인데요. IT 업계 종사자였기 떄문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홍태경 PD: 애쉬 씨는 기술 업계에서 ‘티켓 기반(ticket-based)’ 업무를 일부 맡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어떤 고객 요청이나 업무 관련 티켓이 접수되면 처리하는 형태로, 고정적인 회의나 팀 작업보다 자율성이 높았던 거죠. 즉 고객 서비스처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애쉬 씨는 말했습니다.
또, 인공지능(AI) 같은 도구를 활용해 효율을 높였다고 언급했는데요,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게 되면서 수익성이 좋아지고, 가장 바빴던 해에는 50만 달러를 벌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나혜인 PD: 대단하네요. 그렇지만 그만큼 힘든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나요?
홍태경 PD: 애쉬 씨의 일정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일했다고 말합니다. "평생 이렇게 일할 생각은 없지만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나혜인 PD: 회사에 들킬 위험도 있을 텐데 애쉬 씨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흔한 편인가요?
홍태경 PD: 회사 몰래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입을 늘리려는 사람은 애쉬 씨만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의 한 포럼에는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러 개의 정규직을 비밀리에 병행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이 존재하는데요, 이 곳의. 슬로건은 "여러 직업을 갖고 재정적 자유를 얻으세요(Work multiple jobs, reach financial freedom)"입니다.

More than half a million people have joined an online community discussing the 'overemployed' lifestyle. Source: SBS
나혜인 PD: 그렇군요. 즉, 경제적 불확실성과 재택근무 방식 확대 등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이런 방식이 가능해졌다는 맥락으로 볼 수 있겠네요.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안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 궁금합니다.
홍태경 PD: 이 곳에서는 회원들끼리 회사에 들키지 않는 방법과 직업 관련 조언을 공유합니다. 또한 번아웃이 온 경험이나 고용주에게 발각되어 해고당한 경험도 공유합니다. SBS 더 피드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나 현재의 고용주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신원을 밝히지 않길 원했습니다.
나혜인 PD: 아무래도 여러 직장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은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직원이 업무 집중도나 성과 저하 위험이 있을테니까요 좋아할 리가 만무하죠.
홍태경 PD: 멜번 대학교의 노동 시장 전문가인 마크 우든 명예 교수는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여전히 정규직 직원들이 한 회사에서만 전적으로 일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고용주들은 직원들이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는데 직장에서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Mark Wooden headed the The Household, Income and Labour Dynamics in Australia (HILDA) Survey for two decades. Source: Supplied
호주인 제스 씨도 과거 4개의 정규직을 병행하며 수입을 두 배로 늘렸던 엔지니어라고 본인을 소개했는데요 제스 씨는 추가 수입 이외에도 시스템에 대한 반항심이 여러 잡을 갖게 된 동기였다고 말합니다.
여러 잡을 갖고 있더라도 항상 좋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들켜서 해고당할 때까지 버틴 게 아니라는 제스 씨는 CEO들은 모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데 왜 자신들은 CEO들이 정한 규칙만 따라야 하는 거냐고 반문했습니다.
단일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같은 전통적인 기업 문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제스 씨는 주장합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 참석과 같은 쓸모없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면서 “40시간보다 적은 시간 안에 같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일을 마칠 수 있다면, 자유로운 근로자로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혜인 PD: 하지만 현실적으로 두 세 개의 풀타임 일을 병행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일 텐데요. 본인들도 느끼는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요?
홍태경 PD: 제스 시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때때로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두 개의 회의에 동시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듣고, 다른 쪽 귀에는 다른 이어폰을 끼고 회의에 참여하면서 정말 정신없었다”면서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나혜인 PD: 정규직 사무직을 여러 개 병행하는 것은 드물어 보일 수 있지만, 행정 서비스, 농업 및 식품 서비스와 같은 많은 산업에서 파트타임, 임시직, 계절직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여러 직업을 갖는 것이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죠?
홍태경 PD: 앞서 레딧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다중취업(overemployment)'이라는 용어는 경제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정의와는 다릅니다. 우든 교수는 다중취업(overemployment)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원해서라기 보다는 수입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여러 직업을 갖는 것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More Australians than ever are working multiple jobs. Credit: Pexels / Peter Olexa
홍태경 PD: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5년 동안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점진적으로 감소해 왔습니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중 10%만이 주당 50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했으며, 2001년에는 이 비율이 18%를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장시간 근무가 건강 악화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많습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면 건강을 챙길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애쉬 씨도 여전히 자신의 일을 즐기지만, 번아웃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아이가 '엄마는 일만 하잖아'라고 말했을 때 더 이상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제는 7개였던 직장을 2개로 줄였다고 말합니다.
엔지니어인 제스 씨도 한때 최대 네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1년을 보낸 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개인적인 삶에 많은 부작용을 느낀 이후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혜인 PD: 결국 법적으로도 이런 다중 정규직 근무가 가능한지 궁금한데요.
홍태경 PD: 여러 개의 정규직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는 개인의 고용 계약서 내용에 따라 다릅니다. 고용전문 대니 킹 변호사는 "배타적 의무 조항(obligations of exclusivity)이 없는지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유급이든 아니든 다른 업무에 종사할 수 없다'는 조항을 계약서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mployment lawyer Danny King says a lot of companies' employment contracts stipulate that employees can only work for that company. Source: Supplied
"만약 다중 취업이 발각되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계약에 따라 맡은 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소송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을 수는 있다"라고 킹 변호사는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고용 계약 위반은 직무 태만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경고, 면담 또는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용주가 직원의 이중 취업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킹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소송 비용과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기업이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습니다.
나혜인 PD: 오늘은 ‘여러 개의 풀타임 직업 병행’이라는 달라진 노동 행태를 보여주는 여러 다중 취업 사례를 통해 노동 환경의 변화와 이에 뒤따르는 리스크까지 함께 살펴봤습니다.
상단의 오디오를 재생하시면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호주 공영방송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한국어 프로그램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세요.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SBS Audio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