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인: '본다이' 이후의 마음들...트라우마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Bondi Shooting

A couple lay flowers at a tribute to shooting victims outside the Bondi Pavilion at Sydney's Bondi Beach, Monday, Dec. 15, 2025, a day after a shooting. Source: AP / Mark Baker/AP/AAP Image

트라우마는 극단적인 경험을 한 일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을 목격하거나 반복적으로 접한 이들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트라우마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을까요.


Key Points
  • 트라우마는 약점이 아니라 위험을 기억하는 몸과 마음의 정상적인 반응
  • 뉴스나 SNS를 통한 반복 노출은 제2의 트라우마 유발
  • ‘치유 농법’ 등 회복은 자연, 일상 그리고 서로의 곁에서 가능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트라우마의 개념과 반응을 살펴보고, 개인을 넘어 사회가 함께 회복할 수 있는 돌봄의 방식을 조명합니다.

최근 본다이 비치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물리적 피해를 넘어 심리적 충격을 남겼습니다.

트라우마(Trauma)는 극단적인 경험을 한 일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을 목격하거나 반복적으로 접한 이들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트라우마는 원래 신체적 외상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였지만, 전쟁과 대형 사고를 거치며 심리적 상처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충격적인 사건을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이를 목격하거나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해변과 같은 안전하고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폭력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안정감을 흔들며 집단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서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주변과 나누고, 미디어 노출을 조절하며, 휴식과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라우마는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할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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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발생한 무고한 시민을 향한 총기 난사 사건. 사건 이후,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가라앉거나, 괜히 사람 많은 곳이 불안해졌다는 분들, 적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하고, 영상과 증언이 반복해서 전해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요. 오늘 컬처인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트라우마’라는 개념을 짚어보고,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회복을 배워가고 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합니다.

- 요즘 ‘트라우마’라는 말, 정말 자주 듣게 됩니다. 뉴스에서도 일상 대화에서도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표현을 흔히 쓰게 되는데요. 원래 어떤 의미에서 시작된 말인가요?

- 트라우마trauma는 고대 그리스어로 ‘상처’라는 뜻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칼에 베이거나, 사고로 다친 신체적 외상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 였습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프로이트와 같은 초기 정신의학자 및 심리학자들이 “충격적인 경험이 사람의 정신에도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심리적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 특히 전쟁을 겪은 군인들 사이에서, 몸에는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는데도 악몽을 꾸고, 늘 긴장 상태에 있고, 작은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이 관찰되면서 이때부터 트라우마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 됩니다.

- 현대에 가장 널리 쓰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공식적인 진단명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의 증상을 바탕으로 1980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 물리적인 상처에서, 마음의 상처까지 의미가 넓어진 거군요.

- 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가장 익숙하게 사용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라는 공식 진단명은1980년,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의 증상을 바탕으로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처음 사용됐습니다. 그러니까 트라우마는개인의 약함이나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겪어온 극단적인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요즈음 직접 겪지 않아도 뉴스를 보거나 사건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 우리는 흔히 트라우마를 아주 극단적인 경험을 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의학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는 직접 경험한 사건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일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 스트레스 사건을 직접 겪었든, 멀리서 지켜봤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모습을 보았든, 그 자체로 이미 트라우마적 경험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나는 다친건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지?” 이렇게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네요.

-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를 비정상적인 상황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아주 정상적인 몸과 마음의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 이 트라우마를 비정상적인 상황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아주 정상적인 우리 몸과 마음의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 그럼 트라우마 반응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나요?

- 반응은 정말 다양합니다. 목격한 장면이 원치 않게 반복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가쁘고, 목이나 가슴이 조이는 압박감, 소화불량이나 식욕부진, 메스꺼움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속적인 긴장으로 인한 두통, 근육통, 그리고 잠들기 어렵고 악몽을 꾸는 등 정상적인 수면 패턴에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 또 우울감, 멍해지는 느낌,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비현실감도 흔한 반응인데요. 이는 모두 자율신경계가 아직도 ‘위험 상황’에 있다고 판단하고 몸을 긴장 상태로 유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강한 스트레스 반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또 집중력 저하로 실수가 잦아지거나 일상적인 업무를 하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거나 공상에 자주 빠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 마음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경우도 많군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경우도 많겠지만 주의해야 할 신호도 있겠죠?

-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트라우마 반응은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지만, 다만 이런 증상이 너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 이번 본다이 비치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 이유 중 하나는 장소의 상징성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 맞아요. 해변은 휴식과 자유, 일상의 여유를 상징하는 공간이죠. 특히 본다이 비치는 호주인들에게 ‘안전한 일상’의 이미지가 강한 곳이고요.

- 뿐만아니라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호주의 대표적인 명소이기도 하고요.

- 그렇습니다. 그런 공간에서 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단순한 충격을 넘어 “이제 어디가 안전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불안, 혹은 집단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건 이후에 사람 많은 장소를 피하고 싶어지거나, 괜히 주변을 더 살피게 되는 반응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앞서 충격적인 사건 이후 경험할 수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신체적인 반응을 알아 봤는데요. 실제 행동면에서는 어떤 변화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유발한 사건이 발생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려는 행동, 그리고 사건을 떠올리는게 하는 언론 보도나 관련 이야기에 과도하게 민감해지면서 의도적으로 피하려 하기도 하고요.

-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상황을 대처할 수 있다는 신뢰감이 줄어들면서 일상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거나, 화를 자주 내고 술을 더 많이 마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 요즘은 사건이 발생하면 영상, 사진, 증언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쏟아지잖아요. 직접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그 장면을 수십 번, 수백 번 다시 보게 되는데요.

- 그렇죠. 뉴스 영상이나 SNS를 통해 유사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반복적인 노출은 간접 트라우마, 혹은 2차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 앞서 전해드렸듯이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보는 게 두렵거나 알림 소리에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면 그 역시 자연스러운 신호입니다.

- 이런 경우엔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내 마음이 조금 지쳐 있구나” 이렇게 이해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미디어와 SNS 노출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자기 보호 전략이 될 수 있겠네요. 스스로 트라우마를 다스리는 방법들이 있을까요?

- 가장 우선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물리적으로 너무 고립되지 않는 것, 충분한 휴식과 가벼운 운동, 균형 잡힌 식사도 기본적인 회복 조건입니다.

- 음악을 듣거나, 목욕, 명상처럼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갖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트라우마를 겪은 직후에는 이사나 이직 같은 큰 결정을 잠시 미루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 여기서 시선을 조금 넓혀보면, 사회 차원에서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 네 한국에서는 이태원 참사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 이후 ‘사회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목받은 방식 중 하나가 ‘치유농업’입니다.

- ‘치유농업’이요? 꽃을 가꾸거나 식물을 기르면서 마음을 돌보는 방식인가요?

- 맞습니다. 식물을 가꾸고, 흙을 만지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활동을 통해 불안과 긴장을 낮추고 다시 안전하다는 감각을 회복하도록 돕는 방식인데요. 실제로 식물을 보고 만지는 활동은 위험 상황과 스트레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소방관들에게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 치유가 꼭 병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네요.

- 트라우마 회복의 핵심은 “이제는 괜찮다”는 감각을 우리 몸이 다시 느끼도록 돕는 경험입니다. 자연 속에서, 일상 속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회복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연결해볼 수 있는 지점이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트라우마는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 네 충격을 몰고온 사건을억지로 잊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오늘은 트라우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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