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 해를 돌아보게 되죠. “올해,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오늘 컬처인에서는 ‘행복’이라는 다소 막연한 감정을 기분이나 운이 아니라, 연습하고 조정할 수 있는 상태로 바라보는 과학적 접근, 아울러 호주 사회의 변화라는 렌즈로 차분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호주, 과연 행복한 나라일까요?
- 호주는 국제 조사에서 삶의 만족도나 생활 안정성 항목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해왔습니다. 삶의 만족도를 0에서 10까지 점수로 매길 때, 호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는 편입니다.
- 그런데도 체감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느낌도 있어요.
- 최근 몇 년 사이 호주 사회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포착됩니다. 국가 평균 행복도는 큰 변화가 없는데, 세대별 체감 행복도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 젊은 세대일수록 “나는 예전 세대만큼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비율이 높아졌는데요. 특히 20~30대는 “행복하다”는 응답은 줄고, “불안하다”, “미래가 걱정된다”는 답변이 늘었고요. 반면 50대 이후 중장년층은 삶의 만족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 젊을수록 가능성이 많고 더 자유로울 것 같은데, 좀 의외네요.
- 가능성이 많은 만큼 선택 부담도 함께 커졌기 때문입니다. 주거 문제, 불안정한 일자리, 끊임없는 자기계발 압박, 그리고 SNS를 통한 비교까지 행복을 느끼기 전에 이미 지쳐버리는 구조에 놓여 있는 거죠.
- 그렇다면 행복은 단순히 나라가 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네요.
- 바로 그 지점에서 과학자들은 행복을 조건이 아니라, 조율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 방금 말씀 주셨는데, 연말과 새해 사이, 이 시기만 되면 유난히 SNS가 더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여행 사진, 운동 인증, 올해의 성취 정리까지요. 그런데 이상하죠.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보다는 왠지 더 공허해지는 순간도 많습니다.
- 맞아요.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건 개인의 마음가짐 문제가 아니라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SNS의 ‘좋아요’, 쇼핑, 인증 문화는 우리 뇌에서 도파민을 자극합니다. 이 도파민은 ‘행복’이라기보다 다음 행동을 부추기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 그래서 뭔가 했을 땐 짜릿한데, 금방 또 다음 걸 찾게 되는 거군요.
- 젊은 세대일수록 도파민 자극 환경에 더 오래, 더 강하게 노출돼 있어요. 도파민은 ‘행복 호르몬’이 아니라‘보상과 기대의 호르몬’입니다.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걸 계속 찾게 만들죠. 반면 우리가 말하는 지속적인 행복, 그러니까 “괜찮다”, “안정적이다”라는 감정은 세로토닌과 더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 햇볕을 쬐며 걷거나, 누군가와 차분히 밥을 먹는 시간,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감각 등에서 나오는데요. 화려하고 자극적인 불꽃놀이보다 은은한 조명에 가까운 감정입니다. 중장년층이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더 안정적으로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차이가 호주에서 세대별 행복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고요.
- 그래서 요즘 ‘행복을 더 가져라’가 아니라 ‘행복을 리셋하라’는 말이 나오는 거군요.
- 호주와 서구권 심리학, 뇌과학 연구를 종합해보면 공통으로 나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행복은 더 채우는 게 아니라, 과도해진 기준을 다시 낮추는 작업” 이라는 겁니다. 과학이 제안하는 ‘행복 리셋’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 자극을 줄인다는 게,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는 좀 낯설게 들리는데요. ‘행복 리셋’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지 살펴볼까요?
- 가장 대표적인 게 도파민 과부하를 줄이는 일입니다. SNS 사용 시간을 줄이거나, 항상 배경음악이나 영상을 틀어두지 않는 연습, 일부러 ‘심심한 시간’을 만드는 거죠.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뇌가 다시 정상 감도로 돌아가기 위한 회복 시간입니다.
- 그렇군요. 또 행복을 이야기하면 늘 ‘사람 관계’가 빠지지 않는데요. 여기서도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겠죠?
- 호주 연구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되는 건 행복의 핵심은 ‘사람 수’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연결된 관계의 유무라는 점입니다. 한 사람과의 깊은 신뢰 관계만 있어도 뇌의 스트레스 반응은 실질적으로 낮아진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 이건 특히나 세대별로 느끼는 지점이 다를 것 같아요.
- 맞습니다. 젊은 세대는 보통 “얼마나 이뤘는가”에 집중하는 반면, 중장년층의 행복은 “내가 어디에 필요한 사람인가”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사나 돌봄, 혹은 누군가에게 책임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감각이 행복을 더 오래 유지시켜준다는 맥락이죠.
-그런데 요즘 문화적으로 보면 ‘혼밥’, ‘혼술’,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말도 많이들 하잖아요. 이건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 이 지점에서 자주 언급되는 연구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성인 발달 연구인데요,
- 하버드 대학생들을 포함 80년 넘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 결과 행복과 건강을 가장 잘 예측한 요인은 돈도, 성공도 아닌 좋은 관계였습니다.
- 그렇죠. 여기서 중요한 건 관계의 개수가 아니라 질입니다. 나를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뇌의 통증 반응과 스트레스 반응이 실질적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특히 최근에는 외로움이 흡연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취향 모임 같은 ‘느슨한 연결’에 더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 관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요즘은 남의 행복을 보면 진심으로 축하하기보다 비교부터 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 그래서 요즘 심리학에서 주목하는 개념이 confelicity, 이는 ‘타인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건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한 기술에 가깝다고 해요.
- 예를 들어 누군가 좋은 소식을 전했을 때 “축하해”로 끝내는 대신 “그 과정이 어땠어?”라고 묻는 것, 다시 말해 상대방의 기쁨에 머무는 연습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뇌에서도 긍정적인 보상 회로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
- 행복도 연습이 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네요. 그런데 행복 리셋, 마지막은 행복을 목표로 삼지 않기. 좀 역설적입니다. 행복해지려 애쓰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 실제로 그렇습니다. 행복을 너무 의식적으로 추구하면 오히려 실망이 커진다는 건 이미 여러 실험으로 확인됐습니다. 과학자들은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삶을 조정한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상태라는 거죠.
- 결국 행복 리셋이란, 삶을 더 채우는 게 아니라, 조금 가볍게 다시 맞추는 작업이라는 거네요. 그런데 흔히 이런 말도 하잖아요. “행복은 타고나는 거다.”
-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약 50%는 유전적 요인, 10%는 환경입니다. 나머지 40%는 우리가 선택하고 실천하는 영역입니다. 뇌과학자들이 추천하는 건 아주 단순한데요. 감사 표현하기, 친절 실천하기, 햇볕 쬐며 걷기, 책상 옆에 화분 하나 두기 같은 일상의 실천들이죠. 행복은 목표라기보다 뇌에 좋은 습관을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 그렇군요. 그런데 유전적 요인이 반을 차지하고, 환경 요인 10%는 어떤 걸 말하나요?
- 전문적으로는 ‘신경건축학’이라는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지는데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예를 들어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는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 활동이 활발해져 생각이 더 열리고 여유로워지고요. 식물이 있는 공간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눈에 띄게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결국 행복은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결심보다, 뇌가 편안해지는 환경을 조금 조정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는 거죠. 책상 옆 화분 하나, 하루 한 번 햇볕 쬐며 걷는 것처럼요.
- 오늘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행복은 갑자기 찾아오는 감정보다, 하루하루 조금씩 설계해 가는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를 앞두고 “더 행복해져야지”라는 다짐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것 하나만 골라 보셔도 좋겠습니다. 산책 한번, 전화 한 통, 화분 하나처럼요.
-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올해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새해에도 여러분의 ‘행복 리셋’을 응원하겠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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