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술은 마시기 전부터 결과가 갈린다...프리로딩(pre-loading) 전략
- 소맥·치맥·막걸리...더운 성질과 찬 성질, 조합엔 이유가 있다
- 소맥·치맥·막걸리...더운 성질과 찬 성질, 조합엔 이유가 있다


Source: Getty / Getty Images

-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가 되면 연말 회식, 송년 모임, 크리스마스 파티까지 술자리가 유난히 많아지죠. 즐겁게 웃고 돌아왔는데 다음 날은 몸이 먼저 반응하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피할 수 없는 연말 술자리라면 조금 덜 취하고, 덜 먹고, 다음 날까지 여운이 남는 방법은 없을까요?
- 오늘 컬처 IN 크리스마스 이브 특집에서는 술과 음식, 그리고 우리 몸의 반응을 과학과 문화의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 연말 회식 가기 전엔 늘 다짐하죠. “오늘은 조금만 마셔야지.”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으면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술은 술은 마시기 전부터 이미 결과가 정해진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 맞습니다. 요즘 영양학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개념, 바로 프리로딩(pre-loading) 전략인데요. 술을 마시기 1시간 전에 단백질이나 지방을 소량 섭취하면 알코올 흡수 속도를 확실히 늦출 수 있다고 합니다.
- 그러니까 다시 말해 공복 음주가 위험하다는 거네요.
- 그렇죠. 빈속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바로 소장으로 흡수돼 혈중알코올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고요. 반대로 그릭 요거트, 달걀, 치즈 한 조각, 견과류 한 줌만 먹어도 위에서 알코올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취기가 훨씬 천천히 올라옵니다. 그래서 요즘은 ‘얼마나 마시느냐’보다 ‘마시기 전에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 연말 회식 가기 전에 “일단 뭐라도 먹고 가라” 이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네요. 한국식 회식 이야기로 넘어가 보죠. 저희가 호주에 살고 있지만 한국인 연말 모임이라면 역시 소주죠. 소주,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이건 거의 문화 아이콘이 됐습니다.
- 맞아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소맥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화제가 됐었죠. 글로벌 IT 기업 CEO가 한국식 소맥을 마시는 장면 자체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죠. 다만, 소맥은 알코올 도수는 높고 탄산 때문에 흡수 속도는 더 빠른 조합입니다.
- 그러면 소맥은 더 위험한 술인가요?
- 위험하다기보다는 빨리 취하는 술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탄산이 위 배출 속도를 빠르게 해서 알코올이 소장으로 더 빨리 이동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소맥을 마실 땐 속도를 더 의식적으로 조절하고 기름진 안주보다는 배, 오이 같은 차가운 성질의 안주가 좋습니다.
- 그런데 소주 안주로 삼겹살, 얼큰한 찌개 이건 뭐 거의 공식처럼 따라붙는데, 이건 어떤가요?
- 맛은 좋지만, 몸 입장에서는 꽤 부담이 큰 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겹살은 포화지방산이 많아 간의 알코올 해독을 방해하고요. 얼큰한 국물은 맵고 짜서 위에 부담을 주고 고춧가루는 체내 열을 더 올립니다. 즉, 기름지고+맵고+짠 음식+소주는 숙취를 키우는 공식입니다.
- 그럼 소주엔 뭘 먹어야 할까요?
- 소주는 뜨거운 성질의 술이기 때문에 배, 오이 같은 차가운 성질의 과일・채소가 잘 맞습니다. 이뇨 작용을 도와 알코올 배출 속도를 높여주고 비타민 C도 풍부해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 앞서 배 이야기가 나와서 문득 떠올려지는데요. 몇 년 전 한국산 배로 만든 ‘배 주스’가 호주에서 프리미엄 숙취 음료로 크게 주목을 받았었죠? 저희 호주 공영 SBS를 비롯해 호주 현지 언론을 통해 소개됐는데요.
- 네. 맞습니다. 한국산 배의 우수한 숙취 효능을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관 CSIRO 가 입증한 건데요. 한국산 배에는 알코올 대사에 관여하는 핵심 요소인ADH(alcohol dehydrogenase)와 ALDH(aldehyde dehydrogenase) 즉 알코올 탈수소효소 및 알데히드 탈수소효소가 알코올 흡수를 없애거나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CSIRO연구에서 입증됐습니다. 연구 결과, 음주 30분 전 배즙을 섭취했을 때, 숙취의 원인이 되는 독성 물질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습니다.
- 서양 배보다 효과가 더 좋았다고요?
- 그렇습니다. CSIRO는 조롱박 모양을 한 서양 배, 그리고 동양의 나시(Nashi) 배와 비교했을 때 한국산 배가 가장 뛰어난 숙취 완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산 배에도 요즘에는 여런 신품종이 개발 생산되고 있는데요. CSIRO가 지목한 건 한국의 대표적인 품종인 신고(Shingo)배 입니다.
- 이 연구 이후 호주에서는 ‘Bae Juice’가 숙취 해소용 음료로 인기를 끌며 대형 마켓까지 진출하게 됐죠?
- 맞습니다. 그동안 숙취 해소를 위해 커피를 마시거나 기름기 있는 음식을 섭취해 온 호주인들에게 한국산 배로 만든 현지 ‘Bae Juice’가 숙취 해소용 주스로 크게 인기를 끌면서 호주 메이저 시장에 진출하는 등 인지도가 확대되고 있는데요. 특히 숙취 해소 효능으로 유명한 호주의 '배 주스' 제품들(예: Bae Juice, Dodge)은 주로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신고' 배 농축액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한 입 베어먹으면 달고 신선한 과즙이 입안에 가득 고이죠. 식감도 아삭해서 인기인 한국산 신고 배가 뛰어난 숙취 효과도 있다니, 이번 연말 모임에는 배도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 곁들여, 호주는 매년 한국에서 200톤 규모의 한국산 배를 수입하고 있고, 그 수입량이 지속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 소주에는 배, 기억해 두겠습니다. 소주만큼이나 즐기는 술이 또 맥주죠. 술에 약한 분들도 목 넘김이 시원한 맥주 한 잔 정도는 충분히 즐기시는데요. 맥주와 바삭한 프라이드 치킨의 조합, 바로 치맥아닙니까.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조합이 됐는데요. 어떤가요? 이 조합은?
- 맛은 엄지 촤악이지만 몸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치킨 한 조각이 약 300칼로리인데 맥주 500cc에 치킨 두 조각이면 이미 700칼로리를 훌쩍 넘습니다. 보통 한 두 조각 먹고 손 놓게 되진 않죠. 워낙 입에 붙으니까요.. 게다가 차가운 성질의 맥주에 기름진 튀김을 더하면 위장 부담과 체중 증가가 빠르게 온다고 합니다.
- 그럼 맥주엔 어떤 안주가 어울릴까요?
- 예전 한국의 호프집을 떠올려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생맥주에 오징어 땅콩 등이 안주로 서빙되곤 했죠. 우선 맛의 조화면에서는 단짠의 매력을 충분히 갖췄습니다. 맥주의 홉(hop)에서 나오는 특유의 쌉싸름한 맛은 짭짤한 육포나 볶은 땅콩의 소금기와 만나 중화되면서 균형 잡힌 '단짠' 조합을 이루면서 식욕을 돋우고 맥주 맛을 더 풍부하게 만듭니다. 맥주는 소주와 정 반대로 차가운 성질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맥주에는 육포, 마른오징어, 곁들여 땅콩과 같은 단백질과 타우린이 풍부한 따뜻한 성질의 안주가 좋습니다.
- 맥주를 선호하는 분들은 일단 시원하면서 부드러운 목넘김이 좋다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짭짤한 안주는 갈증을 더 유발하지 않을까요?
- 예리한 지적입니다. 짭짤하고 마른 안주는 자연스럽게 갈증을 유발하게 되죠.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원한 생맥주를 계속 마시게 되고, 그러면 또다시 안주로 손이 가면서 완벽한 '맥주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최근 연구에서는 타우린이 간 기능을 보조하고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숙취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땅콩이나 육포 같은 마른안주는 맛, 식감, 실용성 측면에서 생맥주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파트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전통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죠! 막걸리는 왠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 얼핏 생각에도 따뜻한 기운을 줄 것 같죠? 맞습니다. 막걸리의 주재료인 쌀과 누룩은 대체로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요. 또한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생성되는 다양한 유기산과 효모는 소화를 돕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평소 속이 냉한 사람도 비교적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 그런데 이제 막걸리를 마시면 그 시큼 달짝지근하고 걸쭉한 맛 때문에 입이 텁텁하잖아요. 막걸리와 어울리는 찰떡 조합, 어떤 안주가 있을까요?
- 막걸리 안주의 국민 조합은 단연 부침개입니다. 해물파전, 김치전, 감자전 등, 기름진 전은 막걸리의 산뜻한 산미와 만나면 느끼함을 잡아주고 맛의 균형을 이루는데요. 전의 바삭하고 따뜻한 식감과 시원하고 걸쭉한 막걸리는 최고의 궁합입니다. 막걸리와 녹두 빈대떡, 순대 역시 막걸리와의 클래식한 조합입니다. 특히 비 오는 날 이 조합은 한국의 대표적인 '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죠.
- 저희는 두부 김치 안주를 좋아해서 종종 집에서도 만들어 먹는데요. 막걸리와도 조합이 좋은 것 같아요.
- 네 맵고 짭짤한 볶음 김치와 담백한 두부의 조합도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주죠. 두부는 포만감도 좋아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됩니다.
- 호주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와인이죠. 와인하면 치즈이고요.
- 그렇죠. 와인과 치즈는 둘 다 발효 식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치즈는 와인의 떫은맛을 줄여주고 와인은 치즈의 강한 향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또 치즈의 멜리오닌 성분은 알코올 분해에도 도움을 줍니다. 로스트 비프나 햄과도 와인이 잘 어울리고요. 단 크리스마스 푸딩이나 파블로바 같은 단 디저트는 술과 함께 과하게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오를 수 있어 소량만 즐기시는게 좋습니다.
- 올여름은 더 덥고 습할 거라는 전망이 많은데요.
- 여름에 술이 더 빨리 취하는 이유가 있다고요? 또 술 마신 뒤 이건 정말 피해야 한다, 꼭 짚어주신다면요?
- 여름에 술이 더 빨리 오르는 이유, 의학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더운 날씨에는 체온 조절을 위해 혈관이 이미 확장돼 있고 여기에 술이 들어오면 알코올 흡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집니다. 또 땀으로 수분과 전해질이 부족해 혈중알코올농도도 더 빠르게 올라가죠. . 의사들이 권유하는 숙취를 악화 시키는 의외의 행동 TOP 3를 꼽아보면,
- 첫째, 잠들기 직적 폭탄 라면, 둘째, 진통제와 술을 함께 먹는 것. 셋째, 찬물 샤워입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혈관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 이 얘기 들으니까 어제 회식 자리 떠오르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몸에 꽤 큰 부담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다행히 충분히 사전에 주의 예방할 수 있는 경고네요.
- 술을 마시지 않는 선택, 조금 천천히 마시는 선택, 안주를 바꾸는 작은 선택만으로도 연말은 훨씬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현명하게 즐기셔도 좋겠습니다.
-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오늘 이야기 기억해 두셨다가 조금 덜 지치고, 조금 더 편안하게 즐기셔도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즐겁고 건강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네, 여러분 모두 즐겁고 건강한 연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특집으로 연말 술자리에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과학과 문화의 시선으로 짚어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고생하셨습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