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물에도 맛과 향, 텍스처가 있다'… 지질·수원지·미네랄이 만드는 숨은 풍미
- 물도 '고르는 시대'…레스토랑과 커피 업계의 새로운 기준, ‘파인워터 페어링
- '워터 소믈리에'…새로운 미각 산업의 등장과 함께 글로벌로 확산되는 신종 직업


the-rise-of-water-sommeliers-in-global-fine-dining /AAP

- 커피와 와인은 취향이니까, “어떤 걸 드릴까요?” 이 질문엔 다들 익숙합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문장이 등장했습니다. “물은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전에는 ‘그냥 물’이었던 한 잔이 이제는 취향의 선택지, 미식의 한 코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요즘 레스토랑에서는 와인 페어링처럼 음식과 어울리는 물을 추천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목을 축이는 생수가 아니라, 건강·취향·미식까지 연결하는 신종 전문직, 워터 소믈리에가 주목받고 있는데요. 오늘 컬처IN에서는 지금 가장 ‘맑고 투명하게’ 떠오르는 직업, 워터 소믈리에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 안녕하세요.
- 갈증을 풀기 위한 물 한 모금이 아니라, 어느새 하나의 취향 세계가 되고 있다니 놀라운데요. 그런데 실제 물의 풍미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하죠?
- 맞습니다. 많은 분들이 “물 맛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라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 워터 테이스팅을 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물마다 태생이 달라서 용암 지대, 석회층, 빙하, 화강암 지대 등 어떤 지질을 통과했는지에 따라서, 즉 이 지질 차이에 따라 맛과 향, 질감이 전혀 달라집니다.
- 우리가 흔히 마시는 생수도 브랜드마다 미네랄 조성, 경도, 탄산감이 다르고, 이 차이가 실제 맛과 향을 완전히 바꿉니다.
- 구체적으로 그차이를 구분을 해보면 어떻게 다른가요?
- 탄산이 미세하고 촘촘한 물은 식전주처럼 입맛을 깔끔하게 리셋해줍니다. 나트륨이 높은 물은 은근히 감칠맛이 나서 스테이크와 잘 맞고요.
- 칼슘이 많은 물은 약간 부드러운 우윳빛 감촉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빙하수 계열은 아주 깨끗하고 가볍습니다. 취향도 나라별로 다른데요. 한국 사람들은 부드럽고 깔끔한 물을 선호한다면, 유럽에서는 미네랄 함량이 높아 입안에 약간 오일리한 감촉을 주는 물이 인기입니다.
- 호주는 지질 환경이 워낙 다양해서 물도 상당히 다층적이죠?
- 그렇습니다. 호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물의 스펙트럼을 가진 곳이라 할 수 있죠. 타즈매니아 빙하수, 블루마운틴 지층수, 특히 블루 마운틴 석회 동굴에서 얻은 자연 생수는 목 넘김이 부드럽고 뒷맛에 미세한 단맛이 감돕니다. 알칼리수라서 소화가 약한 사람, 임산부, 아이, 노년층까지 선호합니다.
- 호주 생수가 해외 고급 호텔에 납품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지질 기반 풍미’ 때문입니다.
- 이렇게 물에도 다양한 맛과 풍미가 있다 보니, 그걸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업이 생긴 건 자연스러운 흐름 같기도 한데요. 와인 소믈리에는 익히 알고 있지만 워터 소믈리에는 좀 생소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 워터 소믈리에는 말 그대로 물을 감별하고 추천하는 전문가입니다.
-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물마다 미네랄 조성, 경도, pH, 탄산감이 다르고, 이 차이가 실제 맛과 식감, 향까지 바꿉니다.워터 소믈리에는 이런 차이를 평가해서 어떤 물이 어떤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떤 물이 고객의 취향이나 건강 상태에 맞는지 맞춤 추천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 워터 소믈리에는 이런 차이를 평가해서 어떤 물이 어떤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떤 물이 고객의 취향이나 건강 상태에 맞는지 맞춤 추천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 그러니까 와인 페어링 처럼 워터 페어링을 한다는 거네요.
- 맞습니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에는 미네랄감이 강하고 입안을 리셋해주는 탄산수, 디저트에는 부드럽고 약간 단맛이 도는 생수, 와인 테이스팅에는 향을 방해하지 않는 초저미네랄 워터.. 이런식으로 워터 페어링을 제안합니다. 심지어 물의 ‘풍미’를 표현할 때도 ‘촉촉하다, 둥글다, 단단하다, 미세하게 금속 향이 난다’ 같은 와인 테이스팅 노트와 비슷한 전문 용어를 사용합니다.
- 단순히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물의 테루아(terroir), 즉 산지와 환경에 따른 맛의 개성을 를 분석하고, 그걸 경험으로 이어주는 정식 미식 직업군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파인 워터 메뉴’를 따로 두고, 고객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 단순한 음료에서 미식의 영역으로, 물이 와인처럼 취향과 경험의 대상이 된 거군요. 유명 사례들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 미국 LA의 미슐랭 레스토랑 ‘그웬(Gwen)’에서는 스테이크 주문 시 워터 소믈리에가 ‘사라토가’를 추천합니다. 가격은 한 병에 11달러지만, 고객들은 물 한 잔으로 음식과 어울리는 풍미를 경험하죠.
-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버그 워터’는 1만5천년 된 빙하수로, 미네랄 함량이 낮고 바디감이 가벼워 프리미엄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인기입니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 덴마크, 영국, 스페인 등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인 워터 메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물 한 잔이 이렇게 다양하고, 선택의 폭이 넓다니 놀랍습니다. 단순히 비싼 물이 아니라 음식과 어울림을 보는 것이 핵심이네요. 워터 소믈리에라는 직업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가요?
- 워터 소믈리에는 사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종 직업입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의 미식 업계를 중심으로 ‘워터 리스트(water list)’ 문화가 등장한 뒤, 물 페어링을 전문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체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 지금은 미국의 워터 소믈리에 협회(Fine Water Academy), 독일의 소믈리에 학교, 한국의 국가 공인 워터 소믈리에 대회, 일본의 미네랄워터 검사 협회 이렇게 국가별로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 한국은 국가 공인 워터 소믈리에 대회까지 열 정도면 상당히 빠르게 자리를 잡은 거네요?
- 네, 한국은 미식·웰빙 트렌드와 함께 워터 소믈리에가 빨리 성장했습니다.
- 2012년부터 벌써 10년 넘게 국가 워터 소믈리에 대회를 개최해오고 있고요. 호텔, 항공사, 프리미엄 레스토랑에서 워터 전문가를 별도로 채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은 생수 소비량이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다 보니 워터 테이스팅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졌습니다.
- 또 건강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맞춤 수(水) 추천’, ‘식단·운동 코칭과 결합한 워터 컨설팅’, 그리고 기업용 브랜드 컨설팅까지 활동 영역이 굉장히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 호주에서도 워터 소믈리에를 만날 수 있나요?
- 네, 호주에서도 워터 소믈리에 활동이 점점 늘고 있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바로 브리즈번의 Darren Meachem, 대런 미첨입니다. 호주에서는 흔히 ‘첫 번째 공식 워터 소믈리에’라고 소개될 정도인데요. 원래는 커피와 미식 분야에서 활동하던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연구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물 한 잔이 음료 전체의 맛을 바꾼다”는 점이었는데요.
- 물맛의 차이가 커피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이 깨달음이 계기가 되면서 대런 미첨은 물 테이스팅과 교육 분야로 확장하게 됩니다. FineWaters 와 같은 국제 워터 교육 기관에서 전문 트레이닝을 받고, 현재 호주에서 본격적인 물 감별·페어링 전문가로 활동 중입니다.
- 그가 늘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는데요. “물을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그 물이 어디서 왔고 어떤 광물질을 포함하며 어떤 지층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물에도 ‘탄생 배경’이 있고, 그 차이가 맛을 결정한다는 관점입니다.
- 대런 미첨의 이러한 지론은 커피 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데요?
- 네, 그렇습니다. 특히 호주는 커피 문화가 워낙 강한 나라잖아요. 멜번은 세계적인 ‘커피 성지’로 불릴 정도고요. 매년 열리는 Melbourne International Coffee Expo에서는 최신 커피 트렌드와 양조 기술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 커피 전문가와 애호가들이 몰려듭니다.
- 이런 환경에서 호주의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은 대런 미첨의 “좋은 커피 원두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적절한 물’이다.” 라는 그의 메시지를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물맛이 커피맛을 좌우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네요. 실제로 어떻게 달라지나요?
- 미네랄이 너무 많은 물은 커피의 산미를 둔화시키고, 반대로 너무 약한 물은 커피 전체 풍미를 흐릿하게 희석시킵니다. 반면, 미네랄 균형이 잘 잡힌 물은 원두 본연의 향과 맛을 가장 선명하게 온전히 끌어 올립니다. 이런 차이를 실제 교육 현장에서 경험하게 되면서 커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물의 중요성을 새롭게 보게 된 겁니다.
- 그리고 최근에는 브리즈번과 골드코스트의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메뉴에 맞춘 워터 페어링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스테이크에는 미네랄감과 탄산이 있는 물, 해산물에는 깔끔한 저미네랄 워터처럼 음식별로 세밀한 가이드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취향과 건강, 그리고 자체에 최적화된 ‘파인워터 페어링’을 제공하는 것이죠.
- 대런 미첨의 사례는 “호주에도 새로운 미식 직업군이 등장했다”는 상징적인 변화처럼 보입니다. 물을 하나의 미각 경험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거군요.
- 그렇습니다. 이제 물은 단순히 ‘목을 축이는 음료’가 아니라 와인처럼 맛·향·텍스처를 가진 하나의 미식 재료로 보는 시각이 퍼지면서 호주에서도 워터 소믈리에가 점점 전문 분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매일 마시는 평범한 물 한 잔에도 지질, 시간, 풍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오늘은 물의 가치가 재발견되는 흐름 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종 직업, 워터 소믈리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