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도전의 시작, 시드니에서 멜번까지 800km를 걸어온 첫 우승마 '아처'
- 세대를 초월한 명마와 조교사들의 이야기… 바트 커밍스, 마키베 디바, 파 랩
- 편견을 넘은 최초 여성 기수 미셸 페인의 우승 실화, 영화로 다시 피어난 감동


Jockey Mark Zahra reacts after riding Without A Fight to victory in race 7, the 2023 Melbourne Cup, during Melbourne Cup Day at Flemington Racecourse in Melbourne, Tuesday, November 7, 2023. (AAP Image/Joel Carrett) NO ARCHIVING, EDITORIAL USE ONLY Source: AAP / JOEL CARRETT/AAPIMAGE

- 'The race that stops a nation'. 나라의 일상이 멈추고,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는 하루, 바로 멜번컵 데이입니다. 빅토리아주에서는 이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기가 열리는 3시 정각에는 호주 전역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경기를 시청하거나 라디오로 듣기 때문에 이러한 별칭이 붙었죠. 세기를 넘어 이어진 전통의 멜번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하나의 문화, 국민적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 165년 역사를 자랑하는 멜번컵, 그 속에 전설로 새겨진 경주마와 기수들의 역사적인 순간을 되짚어봅니다.
-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합니다. ‘The race that stops a nation.’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데요. 먼저, 이 멜번컵이 어떻게 시작돼서 오늘날 이런 상징적인 행사가 되었는지, 그 기원부터 짚어볼까요?
- ‘나라를 멈추게 하는 경주’ 멜번컵은 지금으로부터 165년 전, 영국 출신 정착민이자 경마를 즐기던 빅토리아 경찰서장 프레더릭 스탠디시(Frederick Standish)의 제안으로 시작됐습니다.
- 1861년 11월 7일, 멜버른 플레밍턴 경마장에서 열린 첫 대회는 금시계 한 개와 170파운드의 상금을 걸고 시작된, 호주 최초의 전국 규모 경마대회였습니다. 이후 멜번컵은 2차 세계대전 시기조차 거르지 않고 매년 열려왔습니다.
- 당시 멜번은 금광 붐으로 급성장하던 도시였고, 사람들은 경마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부와 성공, 사회적 지위 즉 신분 상승을 상징하는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였습니다.
- ‘누가 가장 빠른 말을 가졌는가’는 단순한 경주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건 곧, ‘이 시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잣대였던 셈이죠.
- 그야말로 ‘말을 통해 신분과 꿈을 건 대결’이었네요. 당시엔 교통도, 기술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죠. 그런데도 전국 각지에서 참여를 했다는 건 멜번컵이 단순한 경주가 아니라 도전과 명예의 상징이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 첫 대회의 우승마는 뉴사우스웨일스 출신의 아처(Archer)였죠?
- 맞습니다. 첫 대회에는 모두 17마리의 말이 출전했는데요, 우승마인'아처'는 당시 시드니에서 멜번까지 무려 800km를 걸어와 우승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 전설적인 여정은 지금까지도 ‘호주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일화로 회자됩니다.
- 아처는 이듬해 열린 2회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멜번컵 최초의 2연패를 달성하게 됩니다. 이로써 아처는 멜번컵에서 두 번 이상 우승한 다섯 마리의 말 중 하나이자, 2연패에 성공한 네 마리의 말 중 첫 번째 주인공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 이렇게 1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멜버른컵은 숱한 드라마와 기록을 남겨왔죠. 그중에서도 경마 역사에 길이 남을 대표적인 순간들,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요?
- 먼저, 멜번컵뿐만 아니라 경마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마키베 디바(Makybe Diva)’가 있습니다. 마키베 디바는 3년 연속 멜버른컵에서 우승한 유일한 경주마입니다.
- 2003년, 2004년, 2005년 멜버른컵에서 우승하며 전설적인 존재가 됐는데요. 특히 마지막 우승 뒤, 조련사 리 프리드먼은 "다시는 이런 말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위대함을 강조했습니다.
- 멜번컵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죠. 바로 ‘우승컵의 왕(The Cups King)’, 바트 커밍스입니다. 멜버른컵에서 무려 통산 12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죠. 지금도 경마계의 전설로 회자되는데요.
- 그렇습니다. 바트 커밍스는 1965년, ‘라이트 핑거스(Light Fingers)’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08년 ‘뷰드(Viewed)’로 12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멜번컵 역사상 가장 성공한 조교사로 남았습니다.
- 그의 통산 우승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
- 특히 바트 커밍스는 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내심으로 유명했는데요. “말을 명령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말할 만큼 말과의 교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 그 철학은 단순히 기술을 넘어, 경마가 인간과 말의 신뢰의 예술임을 보여주었던 인물이었습니다.
- 전설로 남은 아버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과 손자도 조교사로 활동하며 가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그의 영향력은 기록을 넘어 ‘경마의 정신’으로 남았다고 할까요. 2015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가 국가장(State Funeral)으로 추모식을 열기도 했죠.
- 그렇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바트 커밍스'라는 이름의 경주가 열리고 있는데요. 이 대회는 멜번컵의 주요 예선전이기도 합니다.
- 또 멜번컵이 열리는 플레밍턴 경마장에는 그의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플레밍톤 경마장에는 호주 경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주마 두 마리의 동상이 있습니다.
- 이곳에는 호주 경마사에서 가장 위대한 경주마 두 마리의 동상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요. 바로, 멜번컵을 3년 연속 제패한 ‘마키베 디바’,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 시절 국민의 희망이 되었던 ‘파 랩’입니다. 당시 파 랩의 눈부신 질주는 힘겨운 시기를 버티던 호주인들에게 큰 위로와 자부심을 안겨주며, 단순한 경주마를 넘어 ‘국민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그저 말이 달리는 단순한 경주 대회가 아니라, 호주의 정체성과 일상 속에 깊이 스며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된 멜번컵. 그 장구한 역사 속에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있죠. 멜번컵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여성 기수, 바로 미셸 페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 그렇습니다. 2015년 멜번컵에서 미셸 페인은 경주마 '프린스 오브 펜잔스'와 함께 15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기수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 당시 '프린스 오브 펜잔스'의 우승 확률은 100대 1이라는 낮은 수치로, 그만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었습니다.
- 우승 직후, 미셸은 자신에게 ‘여성 기수는 힘이 약하다’며 자신을 평가절하던 관계자들을 향해 "썩 꺼져버려"(get stuffed)라고 통쾌한 한마디를 남겨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이후 많은 여성들에게 편견을 깨는 용기와 영감을 주는 상징적인 말이 되었습니다.
- 호주 사회에서 성평등과 도전의 상징이 된 미셸 페인의 우승 실화는 〈Ride Like a Girl〉이라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세대와 성별을 넘어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는데요. 한국에서는 로 개봉이 됐었죠.
- 맞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우승 실화지만 실제로는 승리가 아닌 ‘인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성 위주의 경마세계에서 실력과 열정을 끊임없이 부정당했던 한 여성이 승리를 거머쥐기까지 인내하고, 또 인내한 이야기입니다.
- 미셸은 7살 때 이미 "멜버른컵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역대 멜번컵 우승자와 경기마 이름을 줄줄 외우며 침대보다 마구간에서 잠드는 걸 좋아했던 꼬마 미셸을 위해, 경마 기수였던 아버지와 아홉 명의 형제자매 모두경마와 관련된 일을 하며 그녀의 꿈을 든든하게 응원했습니다.
- 스파르타 선생님인 아버지 '패디'가 알려준 우승의 비결은 ‘누구보다 강하고 빠르게’가 아니라 기적의 틈을 찾을 때까지 “자신만의 질주를 하는 것!” 이었습니다.
- 영화에는 특히 미셸 페인의 오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스티비 페인이 직접 출연해 그 감동을 배가 시켰습니다.
- “자신만의 질주를 하는 것” 이 우승의 비결이었군요. 말 위에서의 3분이, 오랜 편견과 선입견을 무너뜨린 순간이 된 셈이네요. 그리고 이제, 다시 한번 그 전통의 축제가 돌아옵니다. 토요일부터 멜번컵 위크가 시작되죠?
- ‘멜번컵 위크’는 단순한 경주를 넘어 일주일간 이어지는 축제입니다. 정통 흑백 드레스 코드로 패션을 즐기는 더비 데이(Derby Day)를 시작으로, 본 경기일인 화요일 멜번컵 데이(Melbourne Cup Day), 목요일은 여성의 우아함을 기념하는 레이디스 데이로 멜번컵 카니발에서 모자 패션으로 유명한 오크스 데이(Oaks Day)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족 단위로 즐기는 피날레, 스테이크스 데이(Stakes Day)까지 이어집니다. 올해 멜번컵 상금 규모는 총 1000만 호주달러로, 우승마에게는 450만 호주달러가 돌아갑니다.
- 그야말로 ‘패션과 전통, 스포츠와 문화가 함께 달리는 일주일’이네요.
- 참고로 일반 시민들도 10달러 내외의 소액 베팅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하죠?
-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스윕(Sweep)’ 문화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 지역 모임에서 함께 경주마 이름을 뽑고 우승을 맞히며 즐기는 방식이죠.
- 경주가 끝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웃음과 환호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게 바로 멜번컵이 ‘호주를 멈추게 하는 경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끝으로, 160년 넘게 이어진 경주의 이면에는 동물 복지에 대한 고민도 점점 커지고 있죠.
- 맞습니다. 최근 몇 년간 경주 중 부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말들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승리보다 생명’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주마의 건강 관리와 훈련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 “말은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을 읽어야, 함께 달릴 수 있다.” 전설적 조교사 바트 커밍스의 말처럼, 165년의 전통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건, 결국 인간과 말 사이의 ‘신뢰’와 ‘존중’ 아닐까요?
- 그렇습니다. 멜번컵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그 유산과 이야기로 호주의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문화로 세상을 읽는 컬처인, 오늘은 전 국민이 즐기는 호주 봄 축제, 멜번컵의 전설과 그 뒷이야기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 고맙습니다.